설교/설교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자세

하마사 2006. 10. 17. 15:13
 

본문: 고전 8 :1-13                  찬송: 218장

제목: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자세

목표: 


본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한 태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린도에서는 공적이건 사적이건 사람들이 사교상 모일 때는 주로 신전에서 회합을 가졌는데 이 때 그들은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누구라도 이러한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회적으로 고립이 되었으며 그 결과 생계의 위협까지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욱이 그 때 시장이나 상점에서 팔던 대부분의 고기들은 이미 제물로 바쳐졌던 것들이었습니다. 고린도 신전의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몫으로 떨어졌던 제물용 고기를 처분하지 못하면 그것을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따라서 시장에서 판매되는 고기가 깨끗한 것인지 아니면 이미 제물로 사용되었던 것인지를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린도교회에는 우상을 섬기다가 개종하여 아직 믿음이 충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우상의 제물을 대할 때마다 양심에 거리낌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식있는 사람들이 ‘우상의 제물은 결코 우리에게 해를 줄 수 없다’는 주장은 초신자들의 양심을 괴롭히는 것인 만큼 ‘설혹 우상의 제물이 자신들에게는 무해하더라도 형제들에게 해가 되면 먹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하였습니다.

바울의 충고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지식은 교만하게 합니다(1-2절).

1-2절,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헬라문명의 중심지였던 고린도의 교인들은 그들의 지혜를 매우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세상적 지혜로 인하여 교만해져서 참지혜인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지식을 갖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식은 교회의 분쟁을 유발시키는 주요 요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얼마나 분쟁이 심했던 교회입니까?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지만 그 지식이 오히려 교만하게 만들어 파당을 만들고 서로가 옳다고 싸우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우상제물에 대하여 서로의 지식을 내세우며 먹어도 좋다고 하는 사람들과 먹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다투고 있었습니다. 지식은 이처럼 자기의 주장을 강하게 만들고 자기가 옳다고 인정받기위해 사용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세상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은 지극히 미약한 것이며 또한 알고 있는 것조차 올바른 지식인지 잘못된 지식인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어떤 지식이 있다고 하여 교만하는 것은 우스운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지식의 추구는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지식은 겸손한 자세로 늘 배우려는 마음상태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사랑으로 이끌어가는 지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1절 후반절).

1절 후반절,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바울은 사랑이 결여된 지식은 헛된 것이라고 합니다. 즉 덕을 세우는 사랑이 결여된 지식은 다른 사람들의 입장과 상황을 무시하게 하며 결국은 교만으로 가득차게 하지만, 사랑은 자랑하지 않고(고전 13:4, 5) 타인을 향한 봉사와 섬김을 하게 하여 ‘덕을 세우게’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회문제와 교회문제와 가정문제는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의 결핍으로 파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 분쟁과 싸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반면에 사랑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기에 위로가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사람들의 덕을 세워가는 힘이 있습니다.


3. 자유는 타인을 배려해야합니다(9절).

9절,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바울은 자유가 있다할지라도 그 자유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자유라면 그것은 제한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강한 사람의 행동이 약한 사람의 길을 가로막을 권리가 없으며 한 사람에게 옳은 것이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도 옳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어떤 때는 절제와 근신이 자유보다 더 나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의 자유는 타인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해주며 자유롭게 할 때 가치있는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권면하기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갈 5:13) 고 했습니다.

성도가 그리스도안에서 누리는 자유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며, 또한 방종의 수단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믿음이 강한 자의 사소한 행동 하나는 믿음이 연약한 자로 하여금 실족하게 하거나 시험에 빠지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행실이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늘 신앙 안에서 점검하며 신앙의 자유를 남용하지 않고 절제할 수 있는 미덕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란 반드시 기독교적 책임의식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자신에게 유익하고 편리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고 이웃에게 덕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기꺼이 절제할 줄 아는 자세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지식은 교만하게 하는 것임을 알고 겸손해야 하며, 사랑으로 덕을 세우고, 자유를 누리되 항상 타인을 배려하는 책임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축복  (0) 2006.10.17
제일은 사랑입니다.  (0) 2006.10.17
아브라함의 믿음  (0) 2006.10.17
기억되는 성도  (0) 2006.10.17
신앙인의 삶의 자세  (0) 200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