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롬 4:1-25 찬송: 344장
제목: 아브라함의 믿음
목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게 한다.
오늘 본문은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유대인들이 말하듯이 율법이나 할례를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임을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속의 위대한 인물들 중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이야기하면서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 아니요 믿음이 의롭게 하셨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 얼마나 경건하게 살았느냐? 하는 행위가 아니라 5절 말씀처럼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되게 한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을 의롭게 한 믿음이 어떤 믿음입니까?
1. 확신하는 믿음입니다(17, 21절).
17절,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21절,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해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으로 확신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이삭의 출생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나이 들어 신체적으로 더 이상 출산능력이 없었지만 하나님은 불가능한 환경가운데서도 신실하게 약속을 이행하셔서 이삭이란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셨고 아브라함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약속이 전혀 현실에 맞지 않았으므로 믿음을 갖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지만, 오히려 아브라함은 순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어떤 의심이나 절망도 그의 마음에 파고 들 빈틈을 주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우리는 조금의 틈이라도 있으면 믿는 자를 넘어지게 하려는 마귀의 궤계를 확신하는 믿음으로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들의 삶 속에 어려움과 시련이 있다할지라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확신한다면 불가능이 가능케 될 줄 믿습니다.
2. 말씀중심의 믿음입니다(18절).
18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창 12:4절에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도록 요구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목적지도 알지 못하면서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 인간적인 모든 상식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하는 믿음의 도박을 행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창 15:5절에서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무수하게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 그대로 믿었습니다. 아들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소망도 끊어진 상태에서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무수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붙잡는 것이 곧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말씀중심의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하시는데,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즉시 순종하여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길을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불합리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지만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중심의 믿음은 때로는 불합리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말씀이라 할지라도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우리들도 살 소망마저 끊어지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거나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불합리하게 생각된다 할지라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끝까지 붙잡는 말씀중심의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3. 한결같은 믿음입니다(19-20절).
19-20절,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될 것과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받은 때는 육체적으로 생식능력이 완전히 사라진 99세가 아니었습니까?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아브라함이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육체는 죽은 것 같이 무력할망정 그의 믿음은 결코 무력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굳게 믿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약해지지 않는 이것이 바로 진정한 믿음입니다.
삶의 풍랑이 일 때 우리의 믿음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능력의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며 말씀을 붙잡았던 믿음이 작아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아브라함의 믿음은 약해지지 않고 견고하여졌습니다.
우리들도 아브라함처럼 확신하는 믿음, 말씀중심의 믿음, 한결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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