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막 15:42-47
제목: 이런 청년, 멋진 미래
찬송: 574장
목표: 요셉 같은 멋진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이 되게 한다.
오늘 설교제목은 ‘이런 청년, 멋진 미래’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아리마대 요셉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성경에 요셉이란 이름이 여럿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요셉이 있습니다. 다윗 시대에 찬송하는 직무를 맡았던 아삽의 아들 요셉이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의 아버지가 요셉입니다. 예수님의 형제 요셉이 있습니다. 바나바의 이름도 요셉입니다. 본문의 아리마대 요셉이 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에 대해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부자이고 예수님의 제자로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을 자기 무덤에 모신 사람으로 소개합니다.(마 27:57,60) 누가는 공회 의원이며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로 소개합니다.(눅 23:50) 마가는 존경 받는 공회원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아리마대 요셉의 청년시절은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습을 유추하며 이런 청년이 되면 멋진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멋진 미래를 꿈꾸는 청년은
1. 용기 있는 청년(43절, 상)
43절 상반절,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아무도 시신을 모실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혹시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 드러낸다면 피해를 입을 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3년 동안 따르던 12명의 제자들마저 모두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모시고 와서 장사지낼 사람이 없었습니다. 빌라도 앞에 가서 용기있게 시신을 달라고 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일반형을 받아 죽은 시신을 가족이 요구할 수 있었지만 정치범이나 반국가 범죄로 사형된 시신에 대해서는 이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신을 요구하는 사람은 공범자로 오해받을 소지가 많았기 때문에 가족조차 시신 거두기를 꺼려했습니다.
요셉은 당시 산헤드린 공의회의 회원이었습니다. 당시 최고 의결기관이었던 산헤드린공회는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사형에 해당된다고 정죄했습니다. 그런 공의회 회원인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는 행위는 자신이 소속된 산헤드린에 대한 배신행위로 여겨질 수 있었습니다. 그가 그동안 쌓았던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한꺼번에 잃을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로마 당국과 산헤드린의 오해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시신을 요구하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자신이 쌓아온 지위와 명예는 물론 생명까지 한순간에 빼앗길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사실 요셉은 그동안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다 도망가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장사지낼 사람이 없을 때 빌라도를 찾아가 당돌히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당돌히’라는 단어는 ‘무서워하지 않고’ 라는 뜻입니다. 용기 있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그동안 자신을 예수님의 제자로 드러내지 못했지만 자신이 꼭 필요할 때 예수님의 제자임을 밝혔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임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았던 과거를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그동안 익명의 신자였지만 이제는 공개적인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서 드러낸 것입니다. 자신의 권세와 명예, 부와 생명까지 버릴 각오로 용기 있게 빌라도를 찾아가 시체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활동하며 몸을 사리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드러내어 예수님의 제자임을 공개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 척 하면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외면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엄청난 갈등을 했을 것입니다. 가족도 걱정되었을 것입니다. 안락한 삶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요셉은 이런 갈등을 겪은 후에 용기 있게 행동했습니다. 아마도 이 사실이 산헤드린공회에 알려졌을 것이고 이후에 많은 불이익을 당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매번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세상과 타협하며 지낼 수 있습니다. 드러내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요셉처럼 자기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용기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예화)사랑의 편지에 실린 글입니다.
이 참판 댁 어린 노비 반석평은 글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참판 댁 어린 아들이 글 선생을 모셔와 공부하는 시간이 되면 몰래 툇마루에 걸터앉아 따라 읽거나 뜻을 외우곤 했습니다. 이 참판은 석평의 실력을 알아채고는 자식이 없는 양반집의 양아들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과거에 급제하게 되면 너의 신분을 숨겨야 하니 앞으로 우리 집안과는 연락하거나 왕래하지 말아야 한다.”
이후 반석평은 과거에 급제하였고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되는 형조판서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 참판 집안은 조금씩 가세가 기울었고 그의 아들은 몰락한 양반이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반석평은 참판의 아들을 찾아갔습니다. 참판 댁 아들은 이러면 신분이 들통 날 것이라며 찾지 말라고 했으나 반석평은 참판의 은혜를 갚는 길이라며 그에게 주인의 예를 다했습니다.
얼마 후 그는 임금 앞에 나서서 자신의 과거를 알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노비로 돌아가 이 참판 집안을 섬기게 하고 그의 아들에게 관직을 주어 가세를 회복케 하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임금과 중신들은 반석평의 도리를 높이 평가해 더 이상 그의 죄를 묻지 않았고 참판의 아들에게는 관직을 내렸습니다.
요셉과 반석평은 필요할 때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때로는 희생을 요구합니다.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행동에 제약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왕따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갈등을 겪어야 합니다.
드러내지 않고 사는 것이 편합니다. 6일 동안 학교와 직장에서 불신자처럼 살다가 주일 교회에 와서 그리스도인 청년처럼 살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지혜로운 청년일지도 모릅니다. 박쥐처럼 사는 것이지요. 박쥐는 포유류 중에서 유일하게 날개가 있어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쥐로 행동하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 행세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새처럼, 세상에서는 쥐처럼 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 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예수님을 위해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사는 용기 있는 청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위해 손해와 희생을 각오하는 용기 있는 청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청년은 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래를 보장해 주십니다. 보장하지 않으셔도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청년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청년입니다. 이런 용기 있는 사람이었기에 요셉은 존경받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멋진 미래를 꿈꾸는 청년은
2. 인정받는 청년(43절 중)
43절 중반절,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그는 유대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의 회원이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은 유대 사회에서 최고의 상류층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회의원에 해당되는 신분이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들 중에서도 매우 명망이 높고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부자이고 예수님의 제자로 그리고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권력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자였습니다. 인격적으로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권력과 부와 명예를 동시에 소유한 사람은 교만할 수 있지만 그는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공회원이었습니다. 또한 신앙적으로는 예수님의 제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어디 하나 흠 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있는 어디서든 인정을 받았습니다.
(예화)
야곱의 아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있을 때 주인 보디발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를 가정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했습니다. 보디발 아내의 모함을 받아 감옥에 있을 때도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고 제반 사무를 처리하게 했습니다.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 역시 바로가 인장반지를 빼어 주고 애굽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어디를 가든 인정을 받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종으로 있을 때나 죄수로 있을 때나 있는 자리에서 인정을 받았던 요셉 앞에 멋진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70명의 가족들을 기근에서 구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인정을 받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학생은 학교에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직장인은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성도는 교회에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청년은 청년부에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앞으로 여름사역을 갈 때 지역교회와 주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도 신나는 일입니다. 제가 직장생활 할 때 저를 인정해주신 과장님 때문에 신나게 일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내가 책임질 테니 소신껏 일해라”고 하셨던 과장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충성스럽게 일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평가방법은 사람의 평가방법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 해도 하나님의 평가에서는 후한 점수를 못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화)모세
민수기 12장에 모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것을 가지고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을 넘어 가장 가까운 가족이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분산되었고 가족들까지 영적지도자를 공격했습니다. 물론 모세가 이방여인을 아내로 취한 것은 선민의 지도자로서 본이 되지 못하는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충고한 것이 아니라 비방하고 대적하는 것은 모세를 세우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모세와 미리암과 아론 세 명을 회막으로 불러 모세를 비방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인정하시면서 첫 번째로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했다고 말씀합니다.(3절) 온유함이란 모세가 고난의 세월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낮아져서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체득한 성품이었습니다. 실제로 모세는 미리암과 아론의 비방에 대해 직접 반응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에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인정해주셨습니다.
또한 그의 충성을 인정해주셨습니다.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7절) 모세는 충성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항상 성실하고 충성되게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모세와는 직접 대면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대면하다는 말은 ‘입과 입을 맞대고’란 뜻입니다. 하나님과 입을 맞대고 대화할 정도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부와 권력과 명예를 가진 존경받는 공회원이었습니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격적인 존경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신앙적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있는 자리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하여 인정을 받았기에 멋진 미래를 보장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요셉과 같은 멋진 미래를 꿈꾸십니까? 오늘 있는 자리에서 인정을 받으십시오. 먼저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십시오. 다음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으십시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고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요셉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 여러분과도 함께 하심을 믿고 한걸음씩 착실히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멋진 미래를 꿈꾸는 청년은
3. 준비하는 청년(43절 하, 46절)
43절 하반절,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6절,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예화)네델란드 팀 크롤 골키퍼
한국이 16강에서 탈락하여 아쉬웠지만 브라질 월드컵이 많은 재미를 안겨주었습니다. 예상했던 팀들이 4강에 올랐지만 의외의 결과도 있었습니다. 브라질이 독일에게 1:7로 패한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그 중에 네델란드와 코스타리카의 8강전 경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0:0 무승부로 전후반과 연장전이 끝나고 승부차기로 승부를 가려야 했습니다. 네델란드 감독은 연장전이 끝나기 직전 승부차기를 대비하여 골기퍼를 교체했습니다. 팀 크롤은 월드컵에 단 1분도 출전하지 못했던 선수였지만 승부차기를 대비하여 집중적으로 훈련했습니다. 준비된 그에게 기회가 왔을 때 코스타리카 선수들의 킥을 두 번씩이나 막아 팀을 4강에 진출시키는 수훈선수가 되었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날을 위해 7주 동안 열심히 훈련해왔습니다. 꿈이 이루어져 매우 기쁩니다.” 그가 승부차기를 위해 7주 동안 집중적으로 준비하고 훈련한 결과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임을 알려주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매우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를 기다리며 예수님을 숨어서 따르던 제자였습니다. 산헤드린의 회원으로 존경을 받았지만 내면에는 예수님을 통해 임하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지 않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것이 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믿음생활을 잘 하다가 돈과 권력이 생기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멀리하기가 쉽습니다. 다윗 같은 훌륭한 왕도 목동이었을 때는 하나님을 잘 섬겼으나 왕이 되어 권세가 생겼을 때 무서운 죄를 지었습니다. 솔로몬도 처음에는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했지만 말년에는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부와 권세는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막 10:25)고 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들어가는 것이 이처럼 어려운데 부자이면서 권력과 명예를 동시에 가진 요셉은 더 어려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또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죽으면 묻힐 무덤을 미리 준비했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지만 그 끝이 있음을 알고 죽음을 준비했습니다. 죽음 이후에 천국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죽음이후에 심판이 있음을 믿고 사는 사람은 함부로 살지 않고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예화)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았던 종들이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열심히 일하여 이익을 남겼습니다. 주인이 돌아와 두 종들을 칭찬하였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3) 두 명의 종은 주인이 돌아올 것을 믿고 준비하였기에 칭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주인이 돌아올 것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한 달란트를 땅에 그대로 묻어 두었습니다. 주인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주인이 돌아오지 않기를 원했을지 모릅니다. 그는 주인에게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과 함께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는 무서운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준비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장면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꿈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십시오.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실력을 쌓고 선하고 의로운 인격을 연마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경건의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가 아무리 물질주의로 빠질지라도 그 물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부자가 되거나 명예와 권세를 갖는 것 자체를 싫어하시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해지고 힘과 명예를 갖는 것을 원하십니다. 문제는 그런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아리마대 요셉 같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부와 권세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모든 부와 권세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부와 명예와 힘을 사모하며 정당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잘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잘 될 때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된 후가 중요합니다. 요셉처럼 자신의 부와 능력을 예수님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였습니다. 영향력이 있는 산헤드린공회원이었기 때문에 빌라도가 그의 요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준비했던 무덤을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드렸습니다. 이처럼 자신이 준비한 부와 권력과 명예를 자신의 이익보다 예수님을 위해 사용한다면 얼마나 멋진 사람입니까?
요셉은 평소에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며 준비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게 나무를 벨 시간이 여덟 시간 주어진다면, 그 중 여섯 시간은 도끼를 가는데 쓰겠다.” 무딘 날 도끼로 여덟 시간 일하는 것보다 날선 도끼로 두 시간 일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뜻입니다.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말입니다.
요셉은 평상시에 마음과 믿음이 준비되었기에 상황이 주어졌을 때 실제로 그렇게 행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렇게 되면 요셉처럼 하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신앙의 도끼날을 갈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경건의 도끼날을 갈아야 실제로 나무를 베는 순간이 올 때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과 성도 여러분! 요셉 같이 세상적으로,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존경받기를 원하십니까? 용기 있는 사람, 인정받는 사람, 준비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청년, 하나님께서 멋진 미래를 보장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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