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에 가족들이 모였다.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고, 자녀들에게 세배를 받았다.
세배 후에 아버님이 자녀들에게 덕담을 하셨다.
'속아주며 살라'는 말씀과 '후덕하게 살라'는 요지의 말씀이셨다.
아버님의 덕담을 정리하여 고이 간직했다가 언젠가 나도 후손들에게 들려주려 한다.
정리하면 이렇다.
속아주며 살아야 한다.
알면서도 모른 척 속아줄 때 가정이 평안하다.
각박하게 살지 말고 손해 보면서 후덕하게 살아야 한다.
선조들의 후덕함으로 오늘날 후손들이 이만큼 살고 있다.
증조할아버님은 인심이 후하셔서 당시에 거지들이 오면 꼭 식사를 대접해 보내셨다.
때로 식구들 음식만 준비했을 때 거지가 오면, 본인이 드셔야 할 식사를 대접하셨다.
언젠가 할아버지의 어진 마음도 말씀하셨다.
옛날 고향에서 장날이 되면 여러 곡물과 돈이 될 물건들을 내다 팔았다.
장작을 지고 가서 장에 내다팔기도 했다.
동네사람 중에 어린 사람이 장날에 장작을 지게에 지고 가다가 할아버님을 만났다.
할아버님은 그 사람의 지게를 번갈아지면서 영주장까지 도와주셨다.
먼 훗날 그분이 그 때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단다.
아버님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물질적인 손해를 여러 번 당하셨다.
어머님은 그런 아버님을 귀가 얇아서 그렇다고 하셨다.
남들에게 좋은 일 하시고 우리가족을 고생시키신다고 어린 시절 불만을 가지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아버님이 마음에 지니신 생활철학의 결과물이었다.
따지고 살면 끝이 없다.
자기 것 다 챙기려면 손해 보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 어리숙하게 살면 정말 남는 것이 없을 것 같다.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가는 세상이라고 할 정도다.
세상인심이 각박해졌다.
노숙자들은 있어도 밥 얻어먹으러 다니는 거지들은 없다.
글쎄, 요즘 식사 때 찾아오는 거지가 있으면 어떻게 대할까?
세상이 많이 변했다.
그 때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어도 그 정신과 마음은 간직하며 살 수 있다.
속아주며 살고, 후덕하게 살아야 한다.
증조부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님의 너그러운 마음이 오늘 우리 가문의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음을 알았다.
좋은 전통을 잘 이어야 할 가문의 장자인데...
작은 것조차 속아주지 않고 또박또박 따지면서 살려한다.
후덕하게 베풀기보다 아까워하는 마음이 있으니?
아직 한참을 더 살면서 마음을 넓혀야 하겠다.
가문의 아름다운 전통을 계계승승해야 할 장자의 사명도 녹녹치 않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