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며칠같은 칠년의 사랑

하마사 2011. 8. 19. 21:00

본문: 창 29:14-20

찬송: 495장

제목: 며칠같은 칠년의 사랑

목표: 칠년을 며칠같이 봉사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으로 살게 한다.

 

 

사랑에 대해서 요즘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내가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사랑해야 할 대상이지만 사랑의 마음 대신에 미운 마음이 들 때면 고통스럽습니다.

똑같은 시간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시간과 싫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시간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모두가 예수님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아픔을 치료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착한 일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종교적 기득권을 가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미워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때의 시간은 어떠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좋아했던 사람들과 함께 계실 때와 동일한 시간으로 느끼셨을까?

편애를 하면 안 되는 줄을 알면서도 편애할 때가 있습니다. 자식들도 그렇습니다. 같은 자식이라도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자식과 불순종하는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의 농도가 달라지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요구하는 사랑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최고의 사랑입니다. 성경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결국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주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을 본받아 우리도 사랑하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노력하지 않고도 저절로 이런 사랑이 마음속에 생겨나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우리가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미운 사람도 있고 괜히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한다는 환상과 모두를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선으로 대접했는데 악으로 갚는 사람도 있고 나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성경속에서 자기의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한 사람과 함께 살면서도 칠년을 며칠같이 즐겁게 살 수 있었던 야곱을 통해 그 비결을 배워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6하 원칙에 따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누가-야곱이

2)언제-형 에서를 피해서 도망해 있을 때

3)어디서-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4)무엇을-7년 동안의 봉사를

5)어떻게-며칠같이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은

6)왜-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으면서 칠 년을 하루같이 즐겁게 봉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연애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공식을 저 자신에게 적용해보았습니다. 제가 이 교회에서 10년 동안 사역을 하면서 며칠 같이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정말 10년을 며칠같이 기쁘고 즐겁게 사역했느냐고 질문한다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왜라는 질문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가정에서 가족들을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던 그 마음으로 사랑하고 계십니까? 교회에서 교회식구들을 그 사랑으로 사랑하고 계십니까?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상사와 동료들과 후배들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솔직히 저는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목사인 제가 이런 사랑을 못하면서 어떻게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목사의 아픔이고 슬픔입니다.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하는 것이 목사의 고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목사이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을 통해 저와 여러분들이 함께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7년을 며칠같이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 때문입니다.

며칠 같은 칠년을 보냈던 야곱의 사랑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첫 번째 교훈은

 

1. 사랑의 대상입니다(16-18).

 

16-18절, “라반이 두 딸이 있으니 형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년을 봉사하리이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자 형 에서가 원한을 품고 아버지 이삭이 죽으면 야곱을 해치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어머니 리브가가 이 사실을 알고 야곱을 하란으로 피신시켰습니다. 에서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며칠 동안 피신시키려하다가 20년이 되어버렸습니다. 야곱은 고향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받고 외삼촌 집까지 왔습니다. 라반의 집에 한 달 있으면서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여 라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라반은 야곱과 임금협상을 했습니다. 야곱은 둘째 딸 라헬을 아내로 주는 조건으로 7년 동안 무임금으로 봉사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7년 동안 무임금으로 봉사하겠다는 열정적인 사랑이 대단합니다.

7년 동안의 임금을 오늘날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가 될까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이윤성 의원이 8월 9일 ‘우리나라 300인 이상 근무 기업의 평균 연봉이 4,000만원에 못 미친다’고 말한 것을 기준으로 하면 당시 라반의 목축업규모를 중소기업으로 가정할 때 야곱의 연봉을 약 3000만원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 7년이면 2억 100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2억원 이상 투자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을 돈으로 환산하면 안되지만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실제로는 14년이 되었습니다. 첫 날 밤에 라헬이 아닌 언니 레아를 맞이했으므로 라헬을 위하여 7년을 더 봉사하였기 때문입니다. 임금인상을 고려할 때 오늘날 5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부자들에게 5억원은 큰 돈이 아닐지 몰라도 한 푼 없던 야곱에게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앞으로 자신이 모을 재산 전부를 드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 대하여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후에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이십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 사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육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번역하셨으니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 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창 31:41~42)

자기를 속이고 품값을 열 번이나 변경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섭섭하고 미운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20년 동안 참고 인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하는 라헬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라헬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통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돈의 액수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라헬이 곁에 없이 14년 동안을 일하라고 했으면 아마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라반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고 임금을 착취해도 사랑하는 라헬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견디고 이길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살이가 얼마나 힘드십니까? 경쟁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며칠 전 일간신문에 미국 코넬대 연구를 통해 나쁜 남자가 착한 남자보다 연봉을 더 많이 받는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믿음 안에서 착하게 살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힘든 세상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우리 뿐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은 더욱 힘든 경쟁사회에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옛날보다 경제적으로 살기는 굉장히 좋아졌지만 마음은 더 각박하고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주변에 사람들로 넘쳐나지만 외로움과 고독감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야곱이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함께 살던 고향 브엘세바에서 살던 때와 비교하면 하란에서의 생활은 너무나 힘들고 고된 생활이었습니다.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친척집이라 할지라도 외삼촌과 사촌들의 눈칫밥이 없었겠습니까? 객지생활입니다. 저도 자취할 때 서러움을 겪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생과 둘이서 구의동에서 월세방을 얻어 자취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어머님이 시골에서 만들어주신 천국장을 끓여서 먹었습니다. 천국장을 먹고 있는데 집주인 할아버지가 오셔서 냄세난다고 하시면서 앞으로는 청국장을 먹지 말라고 야단을 쳐서 월세방의 설움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타향살이가 이렇게 서럽고 힘든 것입니다. 친척집이라 한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수년이 되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 타향살이의 설움과 외로움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애인 라헬이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7년을 수일같이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환경과 대우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좋아서가 아닙니다. 환경은 열악하고 몸과 마음은 지치고 힘들어도 라헬을 사랑했기에 7년을 며칠처럼 지낼 수 있었습니다. 모든 환경과 여건이 좋아야만 즐겁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연봉을 많이 받고 미래가 보장되어야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런 기준이라면 야곱은 7년이 며칠이 아니라 수 십 년처럼 느껴져야만 했을 것입니다.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거짓말하는 라반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함께 하시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힘든 기다림이었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라헬은 자기의 모든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고도 아깝지 않은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라헬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7년의 세월이 며칠처럼 지나갔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사랑의 대상을 만나서 힘든 세월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하심의 결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다리지 못하는 이유, 힘들고 지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고도 아깝지 않은 사랑의 대상이 곁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교회에서 사역한지 10년째가 되어갑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 있었던 20년의 반도 되지 않았지만 힘들고 지칠 때가 있었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한지 19년이 되어가지만 즐겁고 기뻐서 며칠처럼 지나가지는 않았습니다.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로 인해 마음 상하고 분이 생기고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원인은 저에게 있었습니다. 환경이나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문제였습니다.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겠다고 결단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을 선택했던 그 열정과 사랑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사람이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 한분이라면 교회의 환경이 어떠한들 10년을 며칠처럼 사역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대상이 하나님이라면 하나님께 내 가정과 자녀들도 맡길 수 있고 19년의 가정생활이 며칠처럼 지나갔을 것입니다.

근본문제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누구를 사랑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주변사람이나 환경을 바라보면 앞으로 다가올 세월을 며칠 같이 살 수 없습니다. 야곱은 라반이나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사랑하는 라헬을 생각하면서 며칠 같은 칠년을 보내었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면서 앞으로 펼쳐질 오늘과 내일의 삶을 며칠 같은 세월로 채워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며칠 같은 7년을 보냈던 야곱의 사랑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두 번째 교훈은

 

2. 사랑의 기간입니다(20).

 

20절,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예화>국민일보 겨자씨, 2011/3/22

2006년 1월 2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톨먼스빌 광산이 무너졌습니다. 13명의 광부가 지하 78m의 갱 속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유독가스와 산소 부족으로 위독했습니다. 그때 한 광부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매고 있는 산소통 안의 산소는 곧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몇 시간 후에는 우리 모두 죽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갖고 있는 산소를 한 사람에게 몰아줍시다.” 그들은 자신의 산소통을 어린아이가 둘 있는 스물일곱 살 젊은 광부 랜달 맥로이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자네는 아직 젊네. 자네가 우리의 몫까지 살아주게나.”

12명의 광부는 매몰된 지 이틀 후,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맥로이만 살아났습니다. 죽은 광부 중 한 사람인 마틴의 메모지도 발견되었습니다.

“아빠는 힘들지 않아. 나의 가족들아, 사랑한다. 하나님 곁에서 너희를 위해 기도하마.”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해야 진짜 사랑입니다. 혼자 살아남은 랜달 맥로이라는 젊은 광부는 12명의 목숨까지 대신해서 죽을 때까지 열심히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죽는다고 사랑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천국에서도 기도하겠다는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헤어진다할지라도 사랑은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지속될 수 있다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라헬을 위하여 7년을 열심히 일하고 결혼식을 하였는데 첫날밤을 치르고 아침에 보았더니 사랑하는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라반에 대한 배신감으로 라헬을 포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라반이 다시 제안합니다. 결혼식 기간 7일이 끝나면 라헬을 주겠고 라헬을 위해 칠년을 더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제안을 받아들여 라헬을 위해 7년을 더 봉사하였습니다.

사랑은 이루어질 때 까지 해야 진정한 사랑입니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랑이라면 반쪽 사랑입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포기하는 사랑도 아름답지만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중간에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중간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라헬은 7년 아니라 70년이라도 기다리며 꼭 이루고 싶은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렇게 이룬 라헬과의 사랑이었기에 야곱은 라헬이 낳은 요셉과 베냐민에게 더 큰 애착을 가지고 사랑했습니다. 야곱은 어렵게 성취한 라헬과의 사랑을 자식에게까지 이어갔습니다. 요셉과 베냐민을 편애하여 어려움도 당했지만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의 연장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야곱은 라헬에 대한 사랑을 평생토록 간직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사랑을 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자신을 평생토록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가 이런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가족이 이런 사람입니까? 여러분이 교제하는 친구가 이런 사람입니까? 정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하는 분이 계셔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신랑과 친구 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시련과 역경의 순간에도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으실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어 던지기까지 사랑해주신 참 신랑 되시고 진실한 친구 되시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진실한 사랑일수록 사랑의 기간이 길어집니다. 오늘날의 사랑은 기간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만큼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결혼하고 쉽게 헤어집니다. 물론 어려운 사정과 복잡한 문제가 있지만 서로간의 진실한 사랑이라면 끝까지 함께 해야 합니다.

<예화>불행한 사랑

얼마 전에 장례를 치른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듣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알고 지내는 어떤 전도사님에게 들은 이야기였습니다. 평생을 남편과 함께 살면서도 남편이 퇴직하면 자기가 첫 사랑하던 남자에게로 가겠다고 하다가 실제로 남편이 퇴직하자 헤어지고 첫 사랑의 남자에게로 돌아가 살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황혼이혼이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를 보았지만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동화 속에나 나올듯한 이야기였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부부의 삶입니까? 첫사랑의 사람과 살지 못하고 그리워하다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몸만 부부로 살았던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얼마나 아프고 처절한 사랑입니까? 누군가 끝까지 기다려주지 못했거나 용기가 부족해서 생긴 일일 것입니다. 첫 사랑의 남자는 행복할지 몰라도 너무나 아프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사랑은 사랑하지 않고도 껍데기만 함께 사는 부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익이 없을 때는 쉽게 헤어지기도 합니다. 얼마나 지속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혼여행을 함께 갔다가 올 때는 따로 오는 부부들이 있다고 합니다. 세상의 사랑은 이처럼 쉽게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천국까지 이어지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삶의 조건과 환경이 달라져도 끝까지 변함없이 지속되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라헬같이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사랑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이 확신을 가지고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며칠 같은 칠년을 보냈던 야곱의 사랑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세 번 째 교훈은

 

3. 사랑의 수고입니다.

 

20절,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야곱은 라헬을 위해 칠년 동안 라반에게 봉사하였습니다. 양 떼를 돌보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후에 야곱이 라반 몰래 도망하다가 쫓아온 라반에게 자기가 어떻게 일했는지 하소연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릎 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 31:40)

 

낮에는 더위를 무릎 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낼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목동의 생활을 감당했습니다. 칠년을 수 일 같이 여겼다고 하여 놀면서 지낸 것이 아닙니다. 7년 동안 라헬과의 결혼만을 생각하면서 그냥 세월만 보낸 것이 아닙니다. 라반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절대 손해를 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칠년 동안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열심히 일했습니다. 라반이 열 번이나 품값을 변경하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라헬을 위한 수고라 생각하고 인내하며 이겨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수고와 희생을 동반한 사랑이었습니다.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와 똑 같은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모욕과 수치를 견디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수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가족을 사랑하면 가족을 위한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사랑에는 반드시 수고가 필요합니다. 바울사도가 데살로니가교회에 편지를 하면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칭찬하며 감사했습니다. 사랑에는 수고와 희생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수고하지 않고 희생하지 않는다면 참 사랑이 아닙니다.

 

<예화>

전신 마비 장애를 이기고 9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는 ‘연세대 호킹’ 신형진(28·컴퓨터과학과)씨를 도와 함께 학교를 다닌 어머니 이원옥(65·오른쪽)씨가 금년 2월 28일 연세대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아들 신형진씨는 태어난 뒤 7개월 때부터 온몸의 근육이 마르는 '척추성 근위축증'으로 목 아래가 마비됐지만 2002학년도 정시 특별전형으로 연세대에 합격했습니다. 어머니는 한 학기 2~3개 과목을 듣는 아들을 데리고 거의 매일 학교에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이용할 휠체어와 가방을 넣기 위해 승용차를 9인승 승합차로 바꿨습니다. 이 차를 몰고 아침마다 서울 개포동 집에서 학교까지 통학시키면서 아들이 수업 들을 때는 늘 복도에서 기다리면서 계속 기도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학교 다니는 것을 행복해하니까 나는 힘든 걸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9년 동안 학교에 데리고 다니면서도 힘든 것을 몰랐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사랑의 수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겠습니까? 인내하며 참아낸 시간들이 무척이나 길었을 것입니다. 아들이 좋아하고 행복해하니까 그런 수고들을 인내하며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수고와 희생이 없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야곱이 며칠 같은 칠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수고하는 사랑을 했기 때문입니다. 수고를 하면서도 힘든 것을 이겨냈습니다. 사랑하는 라헬을 위한 것이라면 기쁘게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면서 힘이 드십니까? 가족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고 빨래를 하면서 힘이 들고 짜증나십니까? 가족들을 위해서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 고통스럽습니까? 자녀들을 위해 수고하면서 헛수고처럼 느껴지십니까? 친구나 이웃들을 위해 수고하면서 보람이 없습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사랑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말입니다. 사랑은 수고를 하면서 짜증내지 않습니다. 푸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수고를 동반합니다. 수고하고 희생해야 진짜 사랑입니다.

 

야곱은 힘들고 외로운 환경을 잘 극복하며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라헬과의 사랑으로 7년을 며칠처럼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랑은 라헬이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고 죽은 이후에 라헬의 분신인 자녀들까지 사랑했습니다.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수고하면서도 힘들다 내색하지 않고 기쁘게 감당하며 사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끝까지 사랑합시다. 수고하며 사랑합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주신 가족, 이웃, 자연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암담하고 절망스러운 환경까지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길 수 있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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