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바로 그런 사람

하마사 2011. 7. 10. 20:49

본문: 딤후 4:9~15

찬송: 303장

제목: 바로 그런 사람

목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찾으시는 사람이 되게 한다.

 

 

 

 

세계적인 암전문의이면서 신앙인인 원종수박사가 작사 작곡한 ‘바로 그런 사람’이란 찬양이 있습니다.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사람이 나 되길 원해요.

하나님이 찾으시며 인정하시는 바로 그런 사람.

하나님을 너무 그리다 꿈속에서라도 보길 원해요.

나의 간절함 오직 주님만으로 만족하며 살기 원해요.

바로 그런 사람 주님께서 기뻐하시니 그런 사람 되길 원해요.

바로 그런 사람 주님 뜻을 이뤄가기에 주님께서 찾으시기에

바로 그런 사람 되기를 원해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 익숙한 이름이 있는가하면 모르는 이름도 있습니다. 그런데 익숙한 이름 중에는 훌륭한 인물로 남은 이름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부끄러운 일을 하여 알려진 이름도 있습니다. 성경에 이름이 기록되는 은혜를 입기는 했지만 어떻게 기록되느냐가 중요합니다.

바울사도의 동역자들 중에는 바울에게 유익을 주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에 중간에 배신하고 떠나간 사람이나 바울의 복음사역에 해를 끼쳤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청년회 헌신예배로 드리는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시렵니까?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찾으시는 바로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유익한 사람(9, 11하)

 

9절, “너는 속히 내게로 오라.”

11절 하반절,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9절에서 “너는 속히 내게로 오라”고 할 때 ‘너’는 디모데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사도에게 믿음의 아들이었습니다. 바울사도는 디모데에게 속히 로마로 오라고 하면서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두었던 겉옷과 가죽종이에 쓴 책을 함께 가져오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말년에 로마감옥에서 인간적인 고독감과 외로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감옥에 투옥되어 있을 때 주변의 사람들이 바울사도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저버리고 바울 곁을 떠나기도 하고 사역을 위해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함께 있어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음침하고 축축한 로마의 감옥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겉옷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위로해 주셨으며 힘이 되셨지만 그에게도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옷과 외로움을 달래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바울사도는 디모데에게 인간적인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이런 바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익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사도와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부탁할 일이 있고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유익을 주며 살아야 합니다.

 

마가 또한 바울사도에게 유익한 사람이었습니다. 마가는 예루살렘 출신으로 바울의 1차 전도여행 중간에 바울 일행을 떠나 개인적으로 행동했던 불명예스러운 전력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2차 전도여행 때 마가와의 동행을 거부했으며 이로 인해 바나바와 싸우고 결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돌이키고 마가는 바울이 일차로 로마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바울 곁에 함께 있었습니다. 또한 베드로와 함께 로마에서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한 때는 바울에게 고통을 주었지만 후에는 바울사도에게 꼭 필요한 신실한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마가는 나중에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된 경우입니다. 처음에는 바울사도에게 고통을 주었던 인물이었지만 복음 안에서 변화되어 바울사도에게 필요한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사도 자신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변화되어 복음에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썩 유익하게 살지 못했어도 괜찮습니다. 교회에, 이웃에, 가정에,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유익한 사람으로 바뀌면 됩니다.

 

디모데에게 겉옷과 책을 가져오라고 부탁한 바울은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자신에게 끼친 해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를 조심하고 경계하라고 권면합니다. 알렉산더는 바울과 교회에 말과 행동으로 치명적인 해를 입혔던 인물이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지만 학자들은 바울이 무죄를 주장할 때 바울의 말을 정면 반박하여 바울의 재판에 나쁜 영향을 미치려 했거나 전도를 방해하고 적대했던 사람으로 추정합니다.

누구에게 유익을 주느냐가 중요합니다. 디모데와 마가는 생명을 살리는 복음사역과 이를 위해 힘쓰는 바울사도에게 유익한 사람이었습니다. 반대로 알렉산더는 바울을 반대하는 적대자들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살든 유익을 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 유익을 줄 것인지 그 대상이 중요합니다. 디모데와 마가처럼 하나님과 교회에 유익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구리장색 알렉산더처럼 복음의 대적자들에게 유익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이 좋습니다. 그러나 어떤 성공이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얼마나 빨리 성공하느냐 보다 어떤 방향으로 성공하고 유익을 주며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유명한 사람보다 유익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하나님과 교회에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국가와 사회에 유익한 사람, 이웃에 유익한 사람, 가정에 유익한 사람, 공동체에 유익한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찾으시는 바로 그런 사람은

 

 

2. 의리있는 사람(11상)

 

11절 상반절,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의리라고 하면 조직폭력배들이 강조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어감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리’는 사전적인 의미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찬송을 받기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에도 의리가 있어야 합니다. 의리가 있는 사람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누가는 훌륭한 의사이면서도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할 만큼 역량있는 신학자였고 문필가였습니다. 그는 이미 바울의 2차와 3차 전도여행에 동행했으며 죄수의 몸으로 끌려가는 로마까지 함께 갔습니다. 끝까지 바울과 함께 했던 의리의 사람이었습니다.

 

데마는 바울사도의 동역자였지만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사도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그는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회심한 후에 바울사도의 사역에 동참하여 헌신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바울이 3차에 걸친 전도여행 후에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벨릭스와 베스도 그리고 아그립바 앞에서 2년간 재판을 마치고 가이사에게 심문을 받기 위해 로마로 호송되어 투옥된 1차 로마 투옥 때에도 데마는 바울사도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의 2차 로마 투옥시기에 바울사도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돌아갔습니다. 열정과 헌신도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 세상으로 돌아간 것을 보면 인내심이 부족하고 복음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견고하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 함께 하는 것은 쉽습니다. 사람들은 이익이 있을 때 모여듭니다. 그러나 고난과 시련이 찾아올 때 이익을 바라고 왔던 사람들은 미련없이 떠납니다. 의리를 쉽게 저버립니다. 대통령의 임기 말에 레임덕 현상이 나타납니다. 현재의 권력이 저물어 가면 새로운 권력을 찾아 부나비처럼 옮겨다니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권력의 속성입니다.

 

‘의리의 사나이’, ‘돌쇠’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사람이 5공화국의 권세가였던 장세동씨입니다. 전두환대통령의 충복으로 5공청문회에 출석하여 전대통령을 적극 변호하여 의리의 사나이로 부각되었습니다. 그가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상관을 위해 끝까지 충성하고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고 국민들은 동정심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자기를 인정해주는 상관을 위해 희생을 각오하고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는데 하물며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을 위해 의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사무엘하 23장에는 다윗의 용사들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들 중에 다윗의 세 용사였던 요셉밧세벳, 엘르아살, 삼마가 했던 의리있는 행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세 용사가 아둘람 굴에 있던 다윗을 찾아갔을 때 다윗은 산성 요새에 있었고 블레셋 군대의 진은 베들레헴에 있었습니다. 다윗이 세 용사에게 베들레헴의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고 간절한 소원을 말했습니다. 세 용사는 블레셋 진을 뚫고 나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길어가지고 와서 다윗에게 바쳤습니다. 목숨을 내어놓고 우물물을 길어오는 충성심과 의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드리면서 말했습니다. 이 물은 목숨을 걸고 다녀온 세 용사의 피라고 하면서 마시지 않았습니다. 세 용사도 의리가 있었지만 다윗도 의리가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신앙적인 의리가 있는 사람이 순교할 수 있습니다.

1944년 만 47세의 나이로 평양감옥에서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님이 쓰신 ‘일사각오’라는 제목의 글을 소개합니다.

 

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은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도 다 쏟으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나 위하여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을 무서워 하리요.

나는 일사의 각오와 다짐이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람은 살아도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인답게 죽어야 합니다.

죽음이 두려워서 예수를 버리지 맙시다.

풀의 꽃같이 시들어 떨어질 목숨을 아끼다가 지옥에 떨어질까 두렵습니다.

더럽게 무릎을 꿇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고 또 죽어

주님을 향한 각오와 다짐과 정절을 지켜나갑시다.

다만 나에게는 일사각오의 결의가 있을 뿐입니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시퍼렇고

백합화도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에 드려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세례 요한도 스데반도 청장년의 때에 뜨거운 피를 흘려 주님을 향한 그의 다짐을 지켜 나갔습니다.

 

주님을 위해 신앙의 절개와 의리를 지킨 순교자의 결의가 배어있는 글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가 왜 세상 사람들에게 개독교라는 말을 듣습니까?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고 주님과의 의리를 저버리고 살기 때문입니다. ‘甘呑苦吐’(감탄고토)라는 말이 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으로 ‘신의를 돌보지 않고 자기의 이익만을 꾀한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믿는 것이 이익이 되면 신자처럼 행동하고 손해가 되면 불신자처럼 행동하는 카멜레온과 같은 신앙인들 때문입니다. 낮에는 그리스도인처럼 살고 밤에는 불신자처럼 산다면 의리있는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순교란 주님을 위해 자기의 이익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시간의 손해, 물질의 손해, 인간관계의 손해, 이미지의 손상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성도 여러분! 주님을 위해 순교는 못해도 주님을 배신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순교는 못해도 주님을 욕 먹이지는 말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한방울까지 쏟아주신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을 위해 손해를 각오하고 의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찾으시는 바로 그런 사람은

 

 

3. 인정받는 사람(12)

 

12절,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두기고는 바울이 특별히 신뢰하고 인정하던 동역자였습니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에 동행하였고 마게도냐와 아가야지방에서 연보한 구제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방문한 여섯 사람 중 한 사람이었으며 바울이 로마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골로새교회와 에베소교회에 각각 바울의 편지를 전달하였고 바울이 그레데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도를 보고자 하였을 때 바울의 사신으로 갔던 인물이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바울과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바울이 부탁한 일들을 진실하게 잘 감당하였습니다.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전도여행을 하면서 모금한 구제헌금을 예루살렘까지 가져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돈 관리를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습니다. 또한 로마감옥에서 바울이 심혈을 기울여 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에베소교회와 골로새교회에 전달하는 중요한 사명을 맡길만한 진실한 일군이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로 가서 그곳에서 목회하던 디모데를 보고자하는 바울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가 로마에 있는 자기에게 와 있는 동안에 에베소교회를 돌보는 일을 두기고에게 맡기기를 원했습니다.

이처럼 두기고는 바울의 신임을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사도가 두기고를 에베소교회에 보내면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엡 6:21~22)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두기고를 보내는 목적은 자기에 관한 사정을 알리려는 것과 더불어 성도들을 위로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바울이 감옥에 투옥된 사실을 알고 용기를 잃고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두기고를 파송하여 에베소교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 중요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두기고였습니다. 바울과 에베소교인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들을 위로하기위해 보냈는데 위로보다도 분란을 일으키고 어려움을 야기한다면 어떻게 보내겠습니까? 두기고는 이 두 가지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울사도에게 인정받았습니다.

 

그림도 인정받는 화가가 그리면 값어치가 달라집니다. 저희 교구에 김명곤집사님이 미술개인전을 열어서 인사동에 있는 아트센터에 간적이 있습니다. 그 때 집사님의 작품 중에 2백만원에서 2,700만원까지 가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작은 작품은 삼만원에서 큰 작품은 수십만원 정도의 재료비가 든다고 했습니다. 누가 그리느냐에 따라 재료비보다 수십배에서 수백배의 값어치가 달라집니다.

7월 4일자 일간신문에 실린 내용입니다.

지난 수백년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자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1958년 경매에서 단돈 45파운드(약 7만7000원)에 팔렸던 그림 '살바토르 문디'(세계의 구세주)가 최근 전문가들 분석결과 다빈치가 그린 작품으로 판명됐습니다. 이 작품이 경매에 부쳐질 경우 최고 2억달러(약 2134억원)를 호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최근에 미국에서 발간된 월간 아트뉴스 매거진이 보도했습니다.

똑같은 그림인데 제자가 그렸다고 했을 때는 8만원 정도에 거래되었지만 세계적으로인정받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다고 했을 때는 2,771,428배의 값어치가 달라졌습니다. 그림은 변한 것이 없지만 화가에 따라 상상할 수 없는 값어치의 차이가 생겼습니다.

오늘 모인 여러분들은 똑같은 광성교회의 청년이고 성도들입니다. 청년회 헌신예배를 똑같이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면 가치가 달라집니다. 45파운드 인생이 아니라 다빈치의 2억 달러보다 더 가치있는 하나님의 걸작품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달 6월 30일에 미국의 펜타곤 앞 광장에서 게이츠 미국방장관의 퇴임식이 있었습니다. 오바마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참석하여 그의 퇴임식을 아쉬움으로 축하했습니다. 그는 공화당 사람이지만 민주당도 신뢰하여 당을 초월하여 인정받은 국방장관이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국방장관직은 내 생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퇴임하더라도 내 마음은 영원히 우리 젊은 전사들과 함께할 것이다. 아직도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장병들과,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장병들 모두와 함께…"라고 했습니다. 그는 전날 미군 병사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도 "나의 여생 동안 날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을 생각하며 기도하겠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인정받는 사람의 퇴임식은 이렇듯이 아름답습니다.

 

7월 7일 새벽에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평창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남아공의 더반에서 날아온 기쁨의 소식을 접하고 감격했습니다. 저는 더구나 강원도 사람이기 때문에 더 감격스러웠습니다. 두 번의 실패이후에 세 번째 도전에서 멋진 승리를 이루어냈습니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대통령을 비롯한 유치위 관계자들은 국민들로부터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땀과 노력이 IOC위원들의 인정을 받았고 결실을 맺었습니다. 63명의 IOC위원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하여 최다득표로 승리를 했습니다.

인정받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일입니다. 인정받기 위해 사람들은 노력합니다. 학생은 선생님과 교수님께 인정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직장인들은 직장상사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사업하는 분들은 고객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럼 성도들은 누구에게 인정받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합니다. 주의 종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두기고는 바울사도에게 인정을 받아 특사로 에베소교회에 파송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광성교회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교회를 잘 섬기라고 하나님이 인정하여서 보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지금 얼마나 하나님께 인정받고 계십니까? 동계올림픽 유치위원들이 IOC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듯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계십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노력과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생활이 요구됩니다. 먼저 결단하고 한발을 내디디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살전 5:24절입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미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자녀를 삼으셨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찾으시는 바로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찾으시는 바로 그런 사람은 유익한 사람, 의리있는 사람,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청년들과 모든 성도님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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