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美판매량 GM·포드 이어 3위… 점유율 10.9%
80·90년대 "1회용 車" - "붙어있는 건 다 떨어진다" 코미디 토크쇼 단골 메뉴
품질경영으로 본격 변신 - 鄭회장, 차문 20차례 '쾅쾅'… 문제 생기자 "다시 만들라"
美언론 "사람이 개를 물었다" - 지진 탓 일본車 주춤한 새 판매 폭증… 도요타 제쳐
1998년 10월 30일 밤 11시. 미국 CBS방송의 코미디 토크쇼인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서 진행자인 데이비드 레터맨은 "우주에서 장난칠 수 있는 것 10가지가 무엇일까"라는 문제를 냈다. 10가지 답변 중 하나가 "우주선 계기반에 현대차 로고를 붙여라"였다. 우주비행사가 고장 잘 나는 현대차 로고를 보고 지구로 귀환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깜짝 놀라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조롱의 대상이었다. 1986년 미국에 처음 수출된 엑셀에는 '일회용 차', '붙어 있는 건 다 떨어지는 차'라는 별명이 붙었다. 미국 언론은 현대(Hyundai)의 영문 이니셜에 빗대 '값이 싸면서도 운전할 수 있는 차는 없다는 걸 당신이 이해해주기 바란다(Hope You Understand Nothing's Driveable And Inexpensive)'라고 비아냥대기까지 했다.
그런 현대·기아차가 5월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꿈의 시장 점유율'이라고 하는 10%를 돌파할 것이 확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인 트루카는 25일(현지시각) "현대·기아차의 5월 미국 판매량이 11만5434대로, 10.9% 시장 점유율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했다. 트루카는 이어 "현대기아차가 일본 도요타를 제치고 처음으로 미국 시장에서 GM과 포드에 이어 3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기아차가 미국 시장 진출 25년 만에 벤츠·BMW·도요타를 제치고 수입 자동차 브랜드로서는 1위를 차지했다는 말이다.
현대·기아차가 미국 소비자들의 조롱거리에서 수입차 브랜드 1위로 대변신을 이룬 과정에는 집요하리만치 '품질'에 중점을 둔 정몽구 회장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정 회장은 1999년 취임 이후 줄기차게 '품질'이라는 단일 메시지로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한 달에 두 번씩 품질회의를 주재했고, 조금이라도 품질에 만족스럽지 않으면 아예 신차 출시를 연기시켰다.
대표적인 예가 중형차 오피러스다. 정 회장은 2003년 8월 기아차 오피러스 수출을 앞두고 남양연구소를 방문해 직접 오피러스를 몰고 주행시험장을 돌았다. 이때 차에서 미세한 소음이 나자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의례적인 의전용 행사로 가졌던 주행시험이 갑자기 비상 상황을 불러왔다. 결국 품질본부는 미리 예고까지 한 출시 일정을 40여일이나 늦추고 저소음 엔진으로 바꾼 뒤에야 미국 시장에 오피러스를 출시했다.
1999년 말에는 울산 공장을 갑자기 방문해 조립이 끝난 승합차의 슬라이딩 도어를 20여 차례 힘껏 여닫고, 결국 문이 슬라이딩 레일에서 이탈하자 "처음부터 다시 만들라"고 지시한 적도 있었다.
10여년간 지속된 '품질 제일' 메시지는 결국에 변화를 가져왔다. 2004년 미국 자동차 조사기관인 JD파워의 신차품질조사에서 현대차는 사상 처음으로 도요타를 제치고 4위에 올랐다. 이 결과에 당시 미국 언론은 "사람이 개를 물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사람이 개를 문 것'이 아니었다. 현대차 아반떼가 2008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모든 자동차 브랜드를 제치고 최우수 소형차로 선정된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확 바뀐 디자인도 현대차의 질주를 가속하게 만들었다. 현대·기아차는 2006년 독일 아우디 자동차 출신의 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 전 차종에 수려한 디자인을 도입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미국 시장 3위는 '시한부 3위' '불안한 3위'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 대지진 이후 생산라인을 아직 정상가동하지 못하는 도요타와 닛산 등이 하반기 풀 가동하며 반격에 나서면 언제든지 4~5위로 처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산업연구원 이항구 박사는 "현대·기아차는 앞으로 글로벌 경영 시스템 구축,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선진적 노사관계 정립 등을 이뤄내야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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