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계 7:1-17 찬송: 215장
제목: 흰옷 입은 사람이 받는 은혜
목표:
성경공부를 하면서 어떤 분이 질문을 하셨습니다. 꿈에 흰 옷 입은 사람을 보았는데 좋은 꿈이냐고 말입니다. 색깔로 때로는 사람의 성품과 성향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천사를 그릴 때 흰색대신 검은색으로 그린다면 이상한 사람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서 ‘하나님의 진노 또는 심판’을 상징하는 바람을 붙잡아 땅이나 바다에나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고 있는데,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와서 네 천사를 향하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기까지 해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 인 맞은 수가 상징적인 숫자인 144,000명인데 9절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이며 흰 옷을 입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마다 각기 12,000명에 해당되는 수입니다.
그 수가 채워지기까지 하나님이 심판을 유보시키시고 계시는데, 벧후 3:9절의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말씀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자 보좌를 둘러 있던 모든 천사가 함께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경에서 ‘흰 옷’은 정결과 승리를 상징하는 옷으로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아 구속받았음을 나타냅니다. ‘종려 가지'는 일반적으로 승리나 기쁨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입성하실 때 환영하러 모인 군중들이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호산나‘하며 예수님을 맞이한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요 12:13).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흰 옷을 입은 허다한 무리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구속하심에 대해 기쁨으로 찬양할 것입니다.
6장에서 여섯째 인 재앙으로 극심한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하나님이 이마에 인을 친 사람들, 즉 144000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로 등장하는 흰 옷 입은 사람들이 누릴 은혜와 축복을 기록하면서 위로와 소망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흰 옷을 입은 자들은 어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입은 사람들입니까?
1. 구원의 은혜입니다(14)
14절,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큰 환난'은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있을 말세의 대환난을 가리키는데 그 환난에서 구원함을 받아 나오는 사람들이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서 깨끗함을 입고 구속함을 받은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4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맞은 144,000명을 의미합니다. 종말에 큰 환난이 임하지만 이마에 인을 맞은 흰 옷 입은 하나님의 종들은 환난을 면하는 은혜를 입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144,000명을 해석하는데 주의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이단들은 이 숫자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144,000으로 제한하여 자기들의 교리를 따르는 사람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러나 이 숫자는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로,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완성된 교회를 의미합니다(롬2:28, 29;9:6, 7).
144,000에 대한 상징적 숫자 해석은 (3x4)=12인데, 12의 제곱 곱하기 10의 세제곱을 하면 144,000입니다. 3은 하나님의 수(성부, 성자, 성령)이며, 4는 땅의 수(동서남북)로서 곱한 수가 완전수인 12이며, 이 12의 제곱과 충만수 10의 세제곱이 곱해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즉 144,000명은 제한된 작은 숫자가 아니라 완전수와 충만수가 곱해진 굉장히 큰 숫자라는 사실입니다. 아담부터 시작하여 144,000명으로 구원받는 사람들의 숫자가 제한된다면 이미 천국문은 닫혀버려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고 맙니다. 전도하면 한 자리가 줄기 때문에 전도도 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받아 큰 환난에서 구원받는 사람임을 믿고 감사하며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배의 은혜입니다(15).
15절,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담대함은 오직 어린양의 속죄의 피로 깨끗함을 받은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권리입니다(히 10:19). 누가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되어진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예수를 믿지않아 죄사함 받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이르면 산과 바위틈에 숨어 하나님을 피하려하지만 성도는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인데 하나님을 친히 섬기고 찬양하며 예배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은혜이겠습니까?
그들은 성전에서 밤낮없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새 예루살렘 성에는 밤과 낮의 구분이 없기 때문입니다(21:25;22:5). ‘밤낮'은 쉼이 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상태를 나타냅니다(20:10). 흰 옷을 입은 구속받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배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 이미 우리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은혜를 입고 살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예배하는 은혜를 입은 우리들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얼마나 큰 은혜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와 감사로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보살핌의 은혜입니다(16-17).
16-17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저희의 목자가 되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보살피다'는 의미의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문자적으로 ‘그들을 보살피실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속받을 자들에게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실 것이며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라는 의미는 구속 받은 자들을 고통과 아픔으로 부터 해방시켜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21:4). 이것은 장차 구속받은 사람들이 누릴 영원하며 절대적인 기쁨과 평강의 축복을 나타냅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배고픔과 가난과 궁핍함과 멸시를 당하였을지라도 말세의 대환난과 최종적인 대종말 뒤에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 모든 고통에서 떠나 풍요와 진정한 안식가운데 거하게 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것을 증거함으로 인해 받는 세상의 박해가 하늘나라에서는 다시 있지 않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의 은혜, 예배의 은혜, 보살핌의 은혜를 받는 흰 옷 입은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세에 필요한 신앙3요소 (0) | 2006.10.17 |
---|---|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복 (0) | 2006.10.17 |
사랑하는 자들을 위한 권면 (0) | 2006.10.17 |
하나님의 자녀 (0) | 2006.10.17 |
찬송하는 일에 골몰합시다 (0) | 2006.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