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벧후 3:8-14 찬송: 539장, 449장, 214장
제목: 사랑하는 자들을 위한 권면
목표: 하나님을 사랑받는 사람들로 말씀을 의지하여 살게한다.
8절과 14절에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들을 향해 말하면서 권면하면서 세 마디의 명령어를 쓰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명령형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우리들도 그 권면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잊지 말라(8-10)
8-10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이란 찬송을 쓴 존 뉴톤은 임종시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기억력이 거의 다 쇠했다. 그러나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두 가지는 나는 큰 죄인이고 그리스도는 큰 구주라는 사실이다."
약속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약속이 늦어진다고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의 날이 분명히 있음을 믿고 그 약속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의 날에 대한 약속이 늦어지는 것은 회개할 사람이 아직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사모하라(11-13).
11-13절,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하나님의 날 즉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사모하되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사모해야 합니다. 심판의 날은 하늘은 불타 없어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버리지만 우리는 주님이 약속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되리라 믿습니다.
<예화> 큰 바위 얼굴
어느 시골 동네 맞은편 산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는 자연석인데도 멀리서 보면 아주 인자하면서도 위엄이 있어 보이는 사람의 얼굴처럼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내려오는 한 이야기로 "저 돌과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우리 동네에 오게 되면 우리 동네가 큰 축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한 번은 공부 많이 한 훌륭한 사람이 지나가는데 바로 그가 저 바위와 같은 얼굴을 한 훌륭한 분이라고 하여 동리 사람들이 다 나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돌 얼굴처럼 생기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실망하고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에 권세있는 사람이 지나가는데 바로 그분이 우리가 기다리는 돌 얼굴과 같은 사람이라는 소문이 퍼져서 그 동네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고 또 모여들었지만 자세히 보니 그도 역시 돌 얼굴과 같지 않았습니다.
이러기를 여러 번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서산에 해가 질 무렵 앞산 붉은 햇빛이 비치는데 그 바위 얼굴은 홍안 소년처럼 보였습니다.
들에서 일을 하다가 괭이를 메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년 농부를 보고 옆에 있던 사람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그 농부의 얼굴 모습이 저 바위 얼굴과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네에 들어서며 외쳤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던 분이 여기 계십니다!"
그러나 처음엔 동네 사람들이 별로 반응이 없었습니다. 하도 여러 번 속아서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두 사람씩 나왔다가 이 중년 농부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자기들이 찾는 바위 모습의 얼굴을 한 사람이 바로 자기 동네에서 자란 분인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중년 농부는 어릴 때부터 아침저녁 앞산의 바위를 바라보면서 "내가 저 바위와 같은 인자하고 위엄 있는 얼굴의 소유자가 되었으면" 하고 언제나 바라보고 흠모하는 가운데 그 얼굴의 모습으로 닮아 갔다고 합니다.
늘 바라보면 닮아갑니다. 바라보는 것은 사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성품을 사모하는 것, 주님의 인격을 사모하는 것, 주님의 생활을 사모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사모하면 주님을 닮아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3. 힘쓰라(14)
14절,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표준새번역>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신앙생활은 공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기다리며 인내합니다.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힘쓰고 애씁니다. 주님이 오실 때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하나님 앞에 서도록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나요?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종신형을 살게 됩니다. 그 속에서 그는 많은 사연을 겪으면서 작은 망치를 구하게 됩니다. 영화를 보는 그 누구도 그 작은 망치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주인공은 감쪽같이 탈옥을 하죠. 영화를 보던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 합니다. '어떻게 나갔을까?' 근데 감옥의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사진을 뜯어내보니 커다란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은 아주 깊은 지하까지 뚫려서 그곳을 통해 주인공은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멍 앞에는 간수를 비웃듯이 닳아빠진 작은 망치하나가 놓여 있었지요. 그 죄수는 10년 동안 그 작은 망치로 구멍을 팠던 것입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동안 미루어오던 일들이 있으십니까? 달성하지 못할 까봐 겁내하던 것들이 있으십니까? 오늘부터 작은 망치를 듭시다. 그리고 벽을 긁기 시작합시다. 그 죄수는 어떤 날은 단 1미리도 파지 못한 날도 있었을 겁니다. 어떤 때는 몇 달씩 파지 못한 날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멈추지만 않는다면, 겁내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소망하는 것들을 반드시 이룰 수 있습니다.
kbs tv에서 나온 ‘사하라 250km 대장정’이란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인상 깊은 내용이었습니다. 사하라 사막을 걸어가는 어떤 여인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너무 힘들지만 고통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check point만 바라보고 가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고통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막길이라도 쉬어갈 수 있는 중간지점이 있고 오아시스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사도가 우리에게 명령하듯 권면하는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약속을 잊지 말아야 하고,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고,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복 (0) | 2006.10.17 |
---|---|
흰 옷 입은 사람이 받는 은혜 (0) | 2006.10.17 |
하나님의 자녀 (0) | 2006.10.17 |
찬송하는 일에 골몰합시다 (0) | 2006.10.17 |
마지막 권면 (0) | 2006.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