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참된 교회의 일꾼

하마사 2006. 10. 17. 06:26
 

본문: 골 1:21-29                   찬송: 350장

제목: 참된 교회의 일꾼

목표: 바른 교회의 일꾼으로 살게한다.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면 오리엔테이션이라고 합니다. 회사소개를 비롯하여 신입사원으로 가져야 할 자세 등을 교육합니다. 교회의 일군이 되기 위해서도 바른 일군의 자세를 알아야 합니다.

일꾼이란 무슨 일을 하느냐? 와 누구를 위하여 일하느냐? 에 따라 높아도 지고 낮아도 집니다. 어차피 사람은 한 평생을 삽니다. 누구를 위하여 살고, 무엇을 위해 사느냐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산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교회의 일꾼은 ‘복음의 일꾼(23절)’, ‘새 언약의 일꾼’과 같은 의미로 복음을 위해 세움받은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특별히 교회의 일꾼이라 함은 하나님의 사명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인내와 수고가 따르는 직분임을 감안할 때 바울의 청지기로서의 소명의식과 각오를 내다볼 수 있습니다.

바른 일꾼의 태도가 무엇입니까? 


1. 성도들을 위해 고난도 기뻐해야 합니다(24절).

24절,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사도는 골로새교회 교인들을 위해 여러 가지 괴로움을 기쁨으로 당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고난은 골로새교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받은 것으로 이루 형언할 수 없이 크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여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고난을 기뻐할 수 있었던 까닭은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바울은 자신이 고난 받는 것은 복음전파 사명 때문이며, 복음을 위해 받은 사명 곧 교회의 일꾼으로 부름받은 목적은 지금까지 감추었던 하나님의 비밀을 성도들에게 나타내보이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비밀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섭리입니다. 유대인들에게만 계시되었던 복음이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되어 구원의 반열에서 제외되었던 이방인들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힘들고 어려운 전도여행 중에서도 안디옥 교회 이방 출신 성도들의 할례문제를 위해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였고, 고린도교인들의 결혼문제, 우상숭배문제 등을 위해 고린도를 방문하였으며,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헌금을 모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와같이 바울은 성도들의 영육간의 문제를 돕기 위해 수고하고 때로는 비난을 당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감당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안에서 성도들은 한 몸이며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로서 함께 지어져 가야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주안에서 하나된 주위 성도들의 고난은 이제 나의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꾼은 성도들의 영육간의 고난을 기쁨으로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2. 교회를 위해 고난을 참아야 합니다(24절).

24절,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교회가 당하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처럼 대속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다만 교회의 성장과 성숙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고 말한 것은 비록 그리스도 자신이 직접 당하신 고난은 완결되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몸된 교회가 받을 고난에 동참하며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기꺼이 받겠다는 결의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는 교회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강건케 하고 부흥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런데 이같이 교회를 강건케 세우는 일은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서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정성과 재물과 시간을 바치고, 봉사하며 세상이 주는 고난을 감당할 때 비로소 주님의 몸된 교회를 바르게 세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교회의 일꾼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교회를 위하여 받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해 고난을 당할 때 주님의 몸된 교회는 바르게 세워지고 더욱 강건하고 부흥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가야 합니다(25절).

25절, “내가 교회 일꾼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바울은 평생 하나님의 일을 위해 일하며 많은 교회를 세우고, 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바울이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이루고자 하는 그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날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에 따라 일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올바른 교회의 일꾼들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르며 그 말씀만을 이루고자 하는 태도를 가짐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루다’는 말은 ‘채우다’, ‘완성하다’는 의미이지만 바울의 복음사역과 관련하여 ‘전달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게 함으로서 성경의 모든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바울을 교회의 일꾼으로 세우셨다는 말씀입니다.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로마에 성바오로성당을 짓고 있을 때 감독하는 분이 거기를 방문했을 때 일군들이 열심히 돌을 다듬고 있었습니다. 그중의 한사람에게 감독이 물었습니다. “당신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아, 보면 몰라요. 돌 다듬고 있잖아요?” 하고 대답합니다. 감독은 또 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아, 뭘 하긴 뭘 해요? 돈벌죠, 돈 벌어야 살잖아요.” 다시 다른 한 사람에게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니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요?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똑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한 사람은 돌 다듬고 있고, 한 사람은 돈 벌고 있고, 또 한 사람은 거룩한 하나님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런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내가 봉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됩니까? 일의 성격과 일하는 기쁨, 행복, 전혀 비교가 안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교회의 일꾼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바른 교회의 일꾼은 성도들을 위해 고난도 기뻐해야합니다. 교회를 위해 고난을 참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런 교회일꾼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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