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교회의 설교(오리겐, 크리소스톰)
Ⅰ. 서론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단지 과거의 사건을 탐구하는 것으로 만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과거 특정한 장소와 시간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필 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와 장소로 연결되는 연결점을 찾기 위해서도 역사를 읽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날 인간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 읽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의 교훈이라고 한다. 결국 현재에서 지나간 역사를 회고하는 것은 과거로부터의 교훈을 덧입어 현재의 나의 자리를 살피기 위함이요, 까마득한 과거의 날개짓에 실려오는 미래의 전망을 통찰하기 위해서이다. 설교의 역사를 고찰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지적했던 대로 역사의 발전이란 미개한 문명이 고등한 문화에로의 진보나 진화가 아니라 내면에 흐르고 있는 거대한 물줄기의 도도한 흐름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설교의 발전의 역사 역시 그 당시의 상황 속에서 선포되었고 이어져왔던 설교 사역의 당위성과 지속성을 고찰하는 데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논문은 바로 그런 관점에서 쓰여졌다. 오리겐과 크리소스톰이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설교했으며, 왜 그렇게 설교해야만 했는지, 또 그들의 설교가 오늘 설교자로 부름받은 우리들에게 어떤 무언의 지침을 설파하고 있는지를 깨달음으로써 ‘오늘 지금 여기’에서 설교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자 함이다.
Ⅱ. 본론
1. 오리겐(185-253년경)
1) 시대적 배경
3세기 그리스도교의 특징적인 점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모든 민족에게 지속적으로 확산되는 상황과 더불어 일어난 그리스도교적인 자의식의 성장이다. 이러한 교회적이고 신학적인 자의식은 두 명의 위대한 신학자에게서 특별히 각인된 인상으로 나타난다. 즉 동방에서는 어거스틴 이전 고대교회의 위대한 신학자인 오리겐이고, 서방에서는 카르타고의 감독인 키프리안(Cyprian)이다.1)
오리겐의 삶과 영향을 통하여 콘스탄틴 이전 시대의 신학 발전은 정점에 이르렀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그리스적 사상 그리고 경험은 이 신학자에게서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가 세운 신학적인 질문들에 의하여 미래를 위한 융화가 이루어졌다.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인 플로틴(Plotin,205-270)과 함께 오리겐은 자기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인물이었다.2) 그가 살았던 2-3세기는 박해와 평온이 공존하면서 흘러갔다. 2세기의 심각한 박해가 지나간 후 3세기의 전반부는 비교적 조용한 시기였으나 3세기 중반에 이르러 데키우스 황제 때인 250년경에 제국 전체적인 그리스도인 박해가 일어났다. 그리고 257년에서 258년 사이 발레리안 황제의 치하에서 두 번째 심한 박해가 일어났는데 오리겐은 254년 데키우스 황제의 계속되는 그리스도인 박해 때에 가이사랴에서 순교하였다.3)
2) 설교방법론
오리겐은 설교를 성경에 대한 연구와 해석의 관점에서 많이 접근하였기 때문에 그의 성경해석에 대한 약점 역시 발견된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성경해석은 알레고리적(allegorical)이었다. 이것이 그가 만들어낸 독창적인 성경해석이었는가 하는 점에서는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클라이드 팬트나 윌리엄 핀슨 같은 사람은 이 의견에 대해 반대한다. 그들은 오리겐의 설교가 있기 훨씬 전에 알레고리화하는 것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스승 클레멘스는 자신의 저작에서 이러한 알레고리의 예들을 보여 주고 있고 순교자 유스티누스에게서도,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교 철학자요 역사가 였던 필로에게서도 알레고리는 보여지기 때문에 오리겐을 어떤 의미로서도 알레고리의 창시자로 명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알레고리를 상당한 정도로 대중화한 죄과를 범하고 있고 그의 본을 따라 세심한 주해를 하였던 많은 설교가들 또한 그의 환상적인 알레고리적인 해석들을 더욱 충실히 따랐기 때문에 바로 이 점이 그의 설교에 대한 기여에 가려져 있는 그의 과오라는 점도 이들은 지적하고 있다.4)
오리겐에 따르면 인간이 몸, 혼, 영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성경도 삼중적 의미 즉 문법적, 도덕적,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의미라는 것이다. 커(Kerr)는 이러한 오리겐의 알레고리의 많은 예들을 인용하고 있다.5)
......아브라함의 여행에 있어서 일은 시각, 욕망, 분별을 상징한다. 창세기에 있어서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를 가리킨다. 요셉의 색동옷은 그의 다양한 지식을 의미한다......부정한 고기에 관한 법칙들은 검약을 가르치고자 의도되었다.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는 정결한 물들은 착실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명상하는 정통 신앙인을 나타낸다. 욥이 “어미의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다 함은 악행으로부터의 그의 순수함을 의미한다. 보리떡과 기적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타내고 물고기는 희랍철학을 의미한다.
오리겐이 이러한 알레고리에 연루되었던 이유는 이 알레고리적인 방법이 이미 그 당시에 상용되고 있었던 사고의 방법이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또 한가지는 유형론을 통하여 증명된다. 그는 구약성서 안에서 신약성서의 내용의 “유형들”, 즉 예표들 및 그리스도의 상징들을 찾아냈다. 그가 구약의 율법과 규정들을 복음서의 신앙과 윤리에 조화시키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 그는 점진적 계시에 대한 개념을 지니지 못하였던 상태였으며 그 당시에 성경은 통일적인 권위를 지닌 것으로 간주되고 있었기 때문에 오리겐은 불확실하고 난해한 성경 구절 내에서 신비적인, 즉 영적인 의미를 발견함으로 하나의 단일체로서의 성경의 전체 구조를 구출해 보고자 하였다는 것이다.6)
그의 이런 사고에 영향을 미쳤던 것은 그 당시의 철학의 영향하에 그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시대의 철학은 고전적 플라톤주의와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주의 사이의 과도 단계, 즉 중간적 플라톤 주의였다. 이런 철학적 환경은 오리겐의 신학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7)
3) 오리겐의 설교의 분석을 통한 그의 설교신학 이해
오리겐은 <첫 번째 설교>의 서두에서 ‘아가서’에 대한 서론을 평이하게 서술하지 않고 모세의 거룩한 곳들 가운데 거룩한 곳, 안식일들 가운데서 안식일이 있듯이 솔로몬의 노래들 가운데 노래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바로 그것이 ‘아가’라고 말함으로써 일종의 변증의 수사학적 기교를 동원하고 있다. 그리고 부정과 반복, 연쇄법이 한층 강화되어 무엇을 강조하려고 하는 지가 분명해지고 청중의 관심이 집중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출애굽기, 신명기, 여호수아, 열왕기, 이사야로 이어지는 ‘노래’를 점진적으로 연결시키고 있으며 마지막 노래로서 아가서를 언급한다. 그런데 이 아가서를 매우 신약의 입장에서 언급한다. 즉 아가서에 나오는 신랑을 ‘그리스도’로, 신부를 ‘흠과 구김살이 없는 교회’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또 이 본문에서 등장하는 네 명(부류)의 인물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신랑, 신부, 신부와 함께 한 처녀들, 신랑과 함께 한 친구들을 소개하면서 “여러분은 이 모든 등장인물의 의미를 모색하지 않고 본문을 보아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등장인물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이것이 현대설교학적으로 네러티브 프리칭(narrative preaching)에서 강조되고 있는 ‘등장인물의 성격과 묘사’에 연관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고 다만 이것은 그가 성경의 영적 의미의 파악을 중요시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실제로 이 설교에서 “만일 이 말씀들이 영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면 이 말씀들은 단순한 이야기들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이 말씀들이 감추어진 신비를 지닌 바 없다면 그것들이 하나님에게 무가치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성경의 영적 의미를 분간할 수 있는, 또는 그럴 수 없다 하여도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은 혈과 육을 따라 살지 않기 위하여 그의 최선의 투쟁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성경의 영적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의 금욕주의적인 경향은 설교에도 나타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종류의 음식은 육적이고 또 다른 것은 영적이며, 어떤 음료는 육적이고 또 다른 음료는 영적이듯이 사단으로부터 오는 육에 대한 사랑이 있고 영에 속하는 또 다른 사랑이 있습니다.
그는 방대한 성경의 지식을 동원하여 그의 설교에 힘을 불어넣는다. 그는 적시적소에 신구약을 오가며 성경을 인용하고 있다.(특별히 오리겐은 바울 서신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우리가 그대의 향료의 향기를 좇아 달려갈 것입니다.”라는 말씀은 바울의 “내가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는 말씀과 “경주를 하는 사람은 여럿이나 상을 받는 이는 하나라”는 말씀과도 일치합니다.
구약과 신약을 아우르는 그의 인용은 현란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 인용은 단순한 인용이나 증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의 문법적 의미까지 꿰뚫고 있는 상태에서 나오는 강력한 무기이다. “그로 하여금 그의 입맞춤으로 내게 입맞추게 하소서”라는 본문에서 “입맞추게 하소서”가 원문에서는 기원이 아니라 “입맞추게 하라”는 명령의 형태임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설교에서 성경의 한 구절 구절을 선택하여 차근차근 해석해 나가는 강해설교의 유형을 여기에서 만난다. 본문의 성경구절을 먼저 해석하는 방식을 택하지만 필요하다면 다른 성경구절을 인용하고 인용한 “말씀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라고 말한 다음에 다시 그 말씀을 좀 더 쉽고 해석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므로 설교의 전체적인 진행이 물흐듯이 매우 자연스러운 느낌을 받는다.
그는 또 자신의 경험까지 이야기하며 자기 삶의 노출을 통하여 회중의 신뢰를 획득하려고 하는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그리고 설교의 마지막을 성도와 교회에게 종말론적으로 부어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위로로 끝맺음으로써 종말론적인 공동체인 교회로 하여금 소망을 갖게 한다.
4) 설교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성
오리겐이 설교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특정 성경 본문에 대한 논의로서의 설교의 형태를 수립한 첫 번째 설교가라는 점이다. 이러한 그의 설교는 그 본문을 설명하고 적용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설교였다. 또한 그는 설교를 위한 본문의 역사적, 문법적 의의에 대한 세심한 주해의 중요성을 강조한 첫 설교가였다는 데 있다.8) 다시 말하면 성경을 가장 중요한 텍스트로 사용함으로써 성경 그 자체에 집중하고 관심한 설교자였다.
그의 성경중심의 설교는 기독교 교회를 위한 표준을 제시해 준다. 그는 최초의 위대한 성경 주석가였다. 그의 생애는 성경을 해석하는 과제에 바쳐졌다.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의 그의 업적은 그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성경을 다룰 수 있는 보조적 연장들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두드러진다. 그는 자신이 설교한 다양한 본문들의 비교 연구를 위하여 자신의 비범한 기억력과 성경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에 의존하였다.9) 이러한 성경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덕분으로 그는 단일한 특정 성경 구절에 근거한 계속적 이야기로서의 설교의 형태를 수립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오리겐의 사역이 있은 후에 설교는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에 입각한 특수 강론으로서 고정되었고 성경 전체에 대한 일련의 설교들이 작성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것 자체는 설교의 미래의 발달에 있어서 큰 공헌이 되었다.10)
2. 크리소스톰(347-407)
1) 시대적 배경
설교의 역사에서 4세기는 주목받을 만하다. 이 시대에 바실, 두명의 그레고리, 크리소스톰 등 위대한 설교가가 탄생했다. 4세기에 설교가 절정에 다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다아간(Edwin C. Dargan)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수사학의 발전이다. 교회가 더욱 세력이 커지고 사회 속에 자리를 굳혀가면서 교회와 관련된 모든 것, 특히 예배가 존중받고 위엄을 갖추게 되었다. 그 예배의 일부로서의 설교는 독자성을 인정받고 있었으며, 예배가 더욱 정교하고 화려하게 되고 예배드리는 것이 더 빈번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예배에 참석하게 되면서 설교는 더욱 형식과 위엄을 갖추게 되었다. 이처럼 설교의 수사학적 발전은 교회의 전반적인 발전 속의 일부로서 이루어졌다.11)
둘째, 설교 자체 내에 있는 생명력과 운동력을 들 수 있다. 단순한 설명이나 교훈적 대화가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들을 제시하고 청중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던 시대는 지나가고 기독교 설교술은 그 자체의 발전의 법칙에 따라 최상급의 세속적 웅변술이 누리고 있던 수준에까지 발전하게 되었다.12) 다아간은 설교의 내적인 발전과 관련하여 오리겐과 크리소스톰을 연결하여 설명해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학파와 신흥의 안디옥 학파의 주도하에 성경의 해석과 적용이 설교의 주된 요소가 되었고 , 특히 오리겐의 모범적 가르침은 논리정연한 논술에 적합한 것이 되었는데 이러한 주해 설교의 성장이 4세기의 크리소스톰과 다른 설교자들의 내용에 스며있다.”13)는 것이다.
셋째, 교리의 확립이다. 설교와 교리의 관련성은 너무나 밀접하고 중대하기 때문에 교리의 토론과 확립은 설교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4,5세기에 있었던 기독교의 기본적 진리들에 대한 지적 호기심의 자극과 그에 대한 예리한 토론, 그리고 공인된 전통교리의 한계내에서의 권위있는 결론등은 설교의 내용과 형태 양면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이다.14)
넷째, 성직의 풍토를 지적할 수 있다. 그리스도 교사들과 설교가들에게 개방된 교육의 혜택들은 그리스도인의 지적 수준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설교가들이 충분한 교육의 혜택을 통하여 배출되었다.15)
다아간은 4세기의 설교를 정의하기를 “4세기의 설교는 체계성이 없는 초기의 교훈적 설교와, 치밀한 논리 구성과 세밀한 분석을 특징으로 하는 스콜라 학파와 후대의 청교도의 중간”16)이라고 했다. 이 시기의 말씀(Logos), 즉 설교는 성경적 동인(motive)과 논조, 그리고 초기 설교의 친밀감을 충분히 지니고 있고, 스콜라적 설교의 지루한 분석과 세분을 피하면서 고전적 연설 형태에 더욱 근접한 것이었다.17)
2) 설교방법론
크리소스톰은 수사학적인 기교가 뛰어났다. 그는 공감이 풍부했으며 언어의 구사력과 묘사력이 뛰어났다. 그의 설교문의 어느 페이지에서도 어떤 인유나 예증이 없이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예증의 현대적인 기술들이 알려져 있지 않던 그 시대에도 최고의 수준의 비교와 직유들이 그의 설교문에 널려 있다.18)
그는 또 임기응변에 뛰어나서 성경 본문의 각 어구에 관한 검토를 회중의 반응에 따라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했는데 이것은 그의 청중에 대한 민감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그는 복합적인 관념이나 어려운 말을 피하고 누구나 알아듣기 쉽도록 자연스럽게 말했다.19)
3) 크리소스톰의 설교의 분석을 통한 그의 설교신학 이해
크리소스톰은 그의 <여섯 번째 설교>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포기하고 전차 경주나 연극 구경을 간 그 당시 일부의 교인들의 잘못된 모습을 지적하는 곳에서부터 운을 뗀다. 이것은 그의 설교가 삶의 상황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뒤에서도 밝혀지겠지만 설교가 ‘논(논)함’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삶의 자리에까지 깊이 관여함을 의미한다. 그는 일차적으로 성경말씀의 의미를 해석하고 나서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서 가능할까? 라는 방법론까지 제시하면서 본문의 석의에 그치지 않고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삶에 적용을 추구한다. 예를 들면 그는 앞부분에서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뒷부분에서 “그러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라고 그 방법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는 오리겐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주장이나 논지에 정확히 연결되는 성경본문을 적절한 때에 정확하게 인용하면서 말씀의 깊이와 측면을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다. 그는 살전 4:13의 본문을 가지고 <친구들의 죽음에 대한 과도한 슬픔>이라는 제목으로 죽음과 부활의 문제를 설교하고 있다. 이 설교는 지금 사용되어져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주 잘된 한 편의 장례식 설교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박해와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부활에 대한 소망을 고취시키는 설교이다. 그는 이 설교의 처음 부분에서 그가 전에 설교한 적이 있었던 복음서의 나사로의 비유와 연계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성경의 깊이 숨겨진 의미를 탐구하여 해석해 준다. 살전 4:13-14를 설명하면서 “왜 바울이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죽음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우리에 대해서는 잠이라는 말을 썼는가?” 라고 질문하면서 그 대답으로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할 때는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죽음이라는 말을 썼고, 우리에 관해서 말할 때는 위로의 뜻을 전하기 위해 잠이라는 말을 썼던 것입니다. 즉, 부활이 분명히 일어난 경우에는 그는 명백하게 죽음이라고 하고, 부활이 아직 희망 사항일 경우에는 잠이라는 말을 써서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의 귀중한 소망을 존중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또 의문문을 통하여 강한 긍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웅변적인 분위기는 매우 감정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 밖에도 대조법과 댓구법을 통하여 강조하는 대목이 돋보이고 은유법과 같은 비유를 통하여 불확실한 것을 확실한 것으로 이해시키려고 한다. 예를 들면 자기의 설교를 듣지 못한 자들이 지금 이 현장에 없어도 자신의 설교사역은 헛것이 아님을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하여 말한다. 그것은 ‘의사가 환자 본인에게만 아니라 환자 곁에 있는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그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이 환자 곁에 있는 사람들의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또 죽음의 의미를 헌집을 무너뜨리고 새집을 짓는 것, 낡은 동상을 녹여서 새로운 동상을 만드는 것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는 또 시적이면서도 시각적인 이미지를 동원하여 설교의 언어들이 살아 움직이게 하고 청중의 눈앞에서 마치 보이는 것과 같이 언어에 생생함을 부여한다. 그는 <여섯 번째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영혼이 죄악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을 옷과 색깔의 메타포를 이용하여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새로 세례를 받은 분들에게는 그들을 불결하게 할 수 있는 오점이 그들에게 생기지 않도록 그들의 영광이 항상 피어 있게 하고 그들의 영혼의 아름다움을 항상 지켜보도록 권합니다. 여러분은 눈부시게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시장 안을 걸어갈 때 진흙이 튀어 그의 옷의 화려함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무척 조심하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그의 옷에 진흙이 묻는다고 해서 그의 영혼에 해가 될 것이 없는 데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옷은 좀이 먹어 망가질 수도 있고 세월에 의해 해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옷은 더러워질 때 물로 빨면 쉽게 깨끗해집니다. 그러나 영혼의 경우에는 ........어떤 오점을 얻으면 그 영혼 위에 커다란 수치와 무거운 짐과 더러운 악취가 내려 앉게 마련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대로 그는 많은 질문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친구들의 죽음에 대한 과도한 슬픔>이라는 설교에서 죽음의 의미와 그 사람들이 죽음에 반응하는 모습들을 질문으로 던지고 거기에 대답하는 문답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청중의 고민이 쉽게 해결되도록 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부패를 겪고 흙으로 돌아간다고 여러분은 말하겠지요? 사랑하는 청중 여러분, 그러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당신은 그(죽은이)와의 교제를 잃게 된 것을 애석해하고 그래서 슬퍼하고 탄식합니까?
.......그럼 당신은 내가 한낱 인간인데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묻겠지요?
그의 설교에서는 질문이 매우 중요하고 유용하게 사용되는데 그것은 그 질문이 청중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청중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아니 지금 나의 고민과 슬픔을 듣기라고 한 것처럼 청중들의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의구심과 하소연을 질문으로 던지고 거기에 대답해주는 형식을 취한다. 이러한 방식은 청중들의 눈과 귀를 자신의 설교 속으로 흡인하여 설교에 집중하게 한다. 이 문답의 형식은 청중들의 마음속에서 긍정과 부정의 혼돈을 겪으면서 일어나기 때문에 결국에는 스스로 설교자에게 동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 설교의 마지막이 지금의 축도와 같은 형태로 끝나는 것이 또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그 당시의 설교가 바울서신의 형태를 따랐을 수도 있겠고 예배학적으로 설교후 기도가 생기기 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됐든 설교의 결구가 이런 형태로 되어 있음으로 해서 그것은 세상 속으로 파송받는 자의 결단을 촉구하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4) 설교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성
우선 그의 설교의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들을 지적해 보자. 우선 그의 설교는 매우 현대적( 또는 동시대적) 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의 설교문들을 읽다보면 그의 글들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가를 잊어버릴 정도로 매우 현대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다. 이 설교문들은 오늘날까지도 생동적이고 흥미롭다.20) 그러므로 설교는 언제나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어야 한다. 설교자는 설교자 자신을 포함한 회중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와 유리되어 설교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설교의 연구에서는 언제나 왜 이 설교가 이 시대에 이렇게 선포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설교는 그 시대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 어떤 사람에게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성경이 그러하고 위대한 문학작품 역시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에게 다가가서 감동을 일으킨다. 모름지기 설교도 거기까지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크리소스톰은 그 시대에만 유통되는 영적 흐름의 설교만 한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대인들에게도 그의 주장과 호흡이 느껴질 수 있는 현대적인 설교를 한 것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설교는 개별과 보편을 모두 함의하여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또 한가지 크리소스톰의 설교의 장점은 성서의 진리를 실재하는 상황에 잘 적응시키는 재능에 있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맥을 잘 짚었고 세상사를 잘 알았다. 그는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불법, 부정과 압제, 경박한 생활과 성도덕의 문란, 빈부의 문제, 우상 숭배의 문제 등등)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문제의 정곡을 찔렀고 그것으로 인하여 직책을 잃었고 결국엔 그의 목숨까지도 잃었지만 그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21) 설교자는 성경을 중요시하지만 그 성경 속에 매몰되지도 않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헤엄치다가도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쉴 수도 있어야 한다. 청중들이 안고 있는 문제, 그 시대가 처해있는 문제들에 대해 관심하고 그것들에 대하여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크리소스톰은 사회적인 설교가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Ⅲ. 결론
- 이 시대를 향한 교훈 (우리는 오늘날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가?)
오리겐과 크리소스톰의 설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그들이 모두 성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설교했다는 점이다. 적절한 성경의 인용과 문자 밑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으로서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에 천착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그것은 그 시대에 여러 가지 주석을 참고할 수 없었기에 성경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화위복의 진리를 깨우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성경 속에서 말하고 성경을 통해서 설교하고 성경 속에서 살아가기를 원했던 그들의 열정은 오늘의 설교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얼마나 많이 성경 본문과 상관없는 설교를 듣고 또 하고 있는가? 그러나 그들이 성경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고 해서 성경 속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들은 성경 속에서 흠뻑 비를 맞았지만 성경 속에서부터 그들의 삶의 자리로 걸어나왔다. 오리겐은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정의롭게 되기를 위해서 설교했고 크리소스톰 역시 해석된 성경의 의미들이 삶 속에서 적용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우리는 두 설교자의 거장들을 통하여 Text와 Context가 설교에서 왜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특별히 크리소스톰의 설교에서 우리는 몇 세기의 긴 간격을 뛰어넘어 우리에게로 전해오는 '현대적인 것'(modernity)을 접하고 놀라게 된다. 우리가 그 시대 속에서 그 시대의 청중들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크리소스톰과 같이 어떤 시대에 읽혀져도 그 설교가 현재적으로 들리게 해야 한다. 그것은 성경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그들의 설교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어떤 억지도, 그렇다고 보여주려고 꾸미려하는 어떤 기교도 없다. 그들의 삶이 자연스럽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설교는 청중들의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구석구석 미치는 시냈물과 같이 그렇게 청중들의 마음과 문제에로 파고 들어간다. 1970년대를 거치면서 많은 설교학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설교방법론들이 제기되었다고는 하나 설교가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이야기로서의 설교는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야기 설교로서의 그 자연스러움은 오리겐과 크리소스톰에게서도 발견되는 그 자연스러움에로의 복귀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설교에서는 (특히 크리소스톰의 설교) 현대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대의 새로운 설교의 움직임들이 이미 배태되어 있다. 은유와 메타포, 언어의 사용과 풍부한 상상력, 이야기, 청중에 대한 배려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 설교자의 인격과 삶, 말씀과 상황 등등은 설교의 형태가 확립되고 강화되는 그 순간에 어쩌면 잉태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역사의 흥망성쇠 속에서 설교의 부침(부침)이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일하시고 말씀의 사역을 부여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낀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대양의 밑바닥에서도 거대한 조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꽁꽁 얼어붙은 얼음장 속에서도 봄을 깨우는 연약한 몸놀림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 거대한 시간의 간격 사이에서도 우리는 교류할 수 있다. 그것은 설교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설교의 역사를 통하여 오리겐과 크리소스톰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고 우리는 그들의 설교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공유와 보편’에 접속할 수 있다.
*조금 더 보충하여 완성본은 월요일 발제시간에 드리겠습니다.
1) Wolfgang Sommer & Detlef Klahr, Kirchengeschichtliches Repetitorium, 백용기 / 홍지훈 공역, 『교회사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8), pp.49-50
2) 위의책, p. 49
3) 위의책, pp. 50-51
4)클라이드 E. 팬트 & Jr. 윌리엄 M. 핀슨, Jr., 20 Ceturies Of Great Preaching An Encyclopedia of Preaching, Vol. 1 (BIBLICAL to SAVONAROLA A.D 27-1498) (Waco, Texas: Word Books, 1971), 맹용길 역, 『세계명설교대전집 제 1권 성서의 설교에서 사보나롤라까지 A.D 27-1498』(서울: 성서연구사, 1986), p.84
5) Hugh Thomson Kerr, Preaching in the Early Church, 위의책 p. 84-85에서 재인용
6) 팬트 & 핀슨, 앞의책, p. 85
7) Raymund Kottje / Bernd Moeller, Oekumenische Kirchengeschichite, Band Ⅰ, Alte Kirche und Ostkirche (durchgesehene Auflage: 1983), 이신건 역, 『에큐메니칼 교회사1 -고대교회와 동방교회』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5), p.168
8) 팬트 & 핀슨, 앞의책, p. 81
9) 위의책, p. 83.
10) 위의책, p. 86
11) Edwin Charles Dargan, A History of Preaching, vol.1, 김남준 역, 『설교의 역사(Ⅰ)』(서울:솔로몬, 1995), pp. 92-93
12) 위의책, p. 96
13) 위의책, p. 96
14) 위의책, p. 97
15) 위의책, p. 97
16) 위의책, p. 101
17) 위의책, p. 101
18) 팬트 & 핀슨, 앞의책. p. 116
19) 위의책, p.117
20) 위의책, p. 115
21) 위의책, P. 11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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