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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위의 전설' 파퀴아오

하마사 2016. 4. 11. 15:18

[불가능해 보였던 8체급 석권 '링 위의 전설' 파퀴아오, 마지막 경기 이기고 은퇴]

- 필리핀 내전도 멈추게했던 사나이
그의 경기에 조국 필리핀 환호… 최선 다한 은퇴戰에 갈채 쏟아져

작년 수입 1845억원, 호날두 2배
이제 사각의 링 떠나 정치의 링에… 내달 필리핀 상원의원 선거 도전

'복싱의 성지(聖地)'라 불렸던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는 최근엔 종합격투기(UFC)로 더 유명한 곳이 됐다. 복싱의 인기는 시들해졌고, 팬들은 팔꿈치 안면 가격까지 허용되는 종합격투기 유혈극에 더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10일 열린 세계복싱기구(WBO) 웰터급 매치는 스포츠 팬들에게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의 '원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린 경기였다. 1만4000여 명이 들어찬 경기장에서 '이것이 진정한 복싱이다'라고 전 세계를 향해 외친 이는 '복싱의 살아있는 전설' 매니 파퀴아오(38·필리핀)였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만 복싱 레전드 파퀴아오(오른쪽)는 은퇴전에서도 박수가 절로 나오게 하는 명승부 끝에 승리했다. 파퀴아오가 10일 열린 은퇴전에서 브래들리의 턱에 왼손 펀치를 날리는 모습.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만 복싱 레전드 파퀴아오(오른쪽)는 은퇴전에서도 박수가 절로 나오게 하는 명승부 끝에 승리했다. 파퀴아오가 10일 열린 은퇴전에서 브래들리의 턱에 왼손 펀치를 날리는 모습. /USA투데이 연합뉴스

파퀴아오와 티머시 브래들리(33·미국)의 이날 대결은 복싱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세기의 대결'이었다. 앞선 두 차례의 대결에서 1승 1패를 기록한 두 선수가 최종 승자를 가리는 경기인 데다, 파퀴아오의 은퇴 무대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열린 경기였지만, 관중은 미국 국적의 브래들리가 아닌 "매니"를 계속 외쳤다. 팬들의 응원에 답하듯 파퀴아오는 5세 어린 브래들리를 향해 전매특허인 전진 스텝에 이은 연타를 쉴 새 없이 날렸다.

10일 은퇴전을 마친 파퀴아오가 아내와 찍은 사진. 그는 “아내는 어떤 고난이 있어도 내 곁에 있었다. 하느님께 영광을”이란 글을 붙였다.                

10일 은퇴전을 마친 파퀴아오가 아내와 찍은 사진.

그는 “아내는 어떤 고난이 있어도 내 곁에 있었다. 하느님께 영광을”이란 글을 붙였다. /파퀴아오 트위터

 

시간끌기용 클린치는 12라운드 경기 내내 거의 볼 수 없었다. 파퀴아오는 439번의 펀치 가운데 122개를 적중시켰고, 7라운드와 9라운드에는 잇따라 브래들리를 다운시켰다. 경기 결과는 심판 전원일치 파퀴아오의 판정승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미국 폭스스포츠는 "파퀴아오가 은퇴를 다시 생각해야 할 정도로 멋진 경기를 선보였다"고 보도했다. 마지막 12라운드 시작 공이 울리자 파퀴아오와 포옹을 나눈 브래들리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경기 내내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고 평했다.

파퀴아오의 전설은 1998년 WBC(세계복싱평의회) 플라이급(50.80㎏) 챔피언이 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IBF 주니어페더급(55.34㎏), WBC 수퍼페더급(58.97㎏), 라이트급(61.23㎏) 등에서 챔피언 벨트를 수집하던 파퀴아오는 2010년 수퍼웰터급(69.85㎏) 타이틀을 따내며 사상 처음으로 8체급을 석권한 복서로 역사에 기록됐다. 12년 동안 약 20㎏을 불려가며 자신보다 5~10㎝ 큰 상대들을 때려눕히며 거둔 기록이었다.

성적은 곧 돈으로 연결됐고, 파퀴아오는 지난해 1845억원을 벌어들이며 미국 포브스 선정 수입이 가장 많은 운동선수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작년 수입만 따지면 수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거의 두 배다. 파퀴아오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린 선수는 작년 그에게 패배를 안긴 미국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3460억원)뿐이었다.
숫자로 본 파퀴아오 정리 표

파퀴아오의 경기가 열리면 그의 조국 필리핀에서 정부군과 반군이 휴전을 선포하고, 여야가 정쟁을 멈춘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필리핀에선 이번에도 '난리'가 났다. 로이터는 "극장과 공원, 심지어 군부대까지 필리핀 전체가 파퀴아오의 경기를 지켜보며 환호했다"고 보도했다. 파퀴아오가 승리하자, 필리핀 대통령실은 "그가 필리핀인들을 다시금 자랑스럽게 만들었다"는 논평을 내놨다. 필리핀 재선 하원 의원인 파퀴아오는 경기에 앞서 "이 매치 이후 정치 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파퀴아오는 오는 5월 필리핀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전 세계 스포츠 팬들은 18년간 복싱계를 지배한 레전드의 퇴장을 이야깃거리로 삼았지만, 은퇴 경기 후 파퀴아오가 남긴 말은 간단했다. "복싱 팬들께 감사드립니다(Thank you boxing fans)."

 

-조선일보, 2016/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