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그리스도인

하마사 2015. 11. 23. 14:24

본문: 3:1~4

제목: 그리스도인

목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새사람이 되게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으로 기독교인, 성도, 하나님의 백성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단어는 초대교회 당시 수리아 안디옥교회 성도들에게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1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을 때 주위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보고 그리스도인이라 부른 것입니다. 처음에는 경멸의 뜻과 멸시의 뉘앙스로 사용되었습니다. 바울이 아그립바왕에게 전도할 때에 아그립바가 바울을 향해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할 때도 경멸하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점차 영광스럽고 복된 이름으로 쓰였습니다. 베드로는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 4:16) 권면하면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강조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영광스러운 이름보다는 경멸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것을 볼 때 안타깝습니다. 그리스도인, 기독교인, 성도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골로새교인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표현을 빌리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중생한 사람,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사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된 사람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이 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1. 그리스도와 함께 중생한 사람입니다.(1~2)

1~2,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성경에 몇 명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사람으로는 회당장 야이로의 열두 살 된 딸, 관에 들려가다가 살아난 나인성 과부의 아들, 죽은 지 나흘 되어 무덤에서 살아난 나사로, 3층에서 떨어져 죽었다가 살아난 유두고입니다. 이들은 육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이 살아난 이후의 삶의 모습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하지만 기록이 없으니 알 수 없습니다.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육체가 죽었다가 살아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난 새사람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은 중생한 사람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이미 죽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영원히 형벌 가운데 놓인 사람이었습니다. 육신적으로 살아있을지라도 하나님과는 단절된 생활을 했습니다. 죄를 짓고 죄 가운데 살다가 지옥에 가야만했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해도 인간의 힘으로 극복 할 수 없었습니다. 선행과 덕행을 많이 쌓아도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죄를 짓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가 막힌 담을 허물었습니다.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예수님이 살리셨습니다. 은혜로 살려주셨습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은혜를 입었습니다. 진노의 대상이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자녀의 권세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얻고 모든 정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보호를 받으며 마지막에는 천국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즉 중생했으면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위의 것이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중생했으면 그리스도를 찾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땅의 것을 버려야 합니다.

당시 골로새 교회는 여러 이단들의 공격으로 신앙이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바울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하나님 우편에 앉아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그리스도를 찾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적극적으로는 새사람 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소극적으로는 죄악 된 옛 생활 방식을 버리라는 명령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후부터 천국 시민권자가 됩니다. 발은 땅을 딛고 살지만 머리는 하늘에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나그네입니다. 성경은 인생에 대하여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림자, 하루살이, 품꾼,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 잠깐 자는 것, 티끌과 먼지, , 질그릇, 진흙, 안개 같은 인생 등으로 비유했습니다. 인생은 짧고 보잘 것 없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의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일시적이고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그리스도인의 시선은 땅이 아니라 항상 본향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찾고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성품을 본받아야 합니다. 12절부터 15절에 기록된 것처럼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서, 사랑, 평강, 감사, 찬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찾으라열정적으로 구하라는 뜻입니다. 지속적으로 간절히 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모스 5: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찾으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선지자 850명과 대결할 때 바알 선지자들이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을 찾았습니다. 나중에는 칼과 창으로 자기들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 불렀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가 하나님을 찾았을 때 불로 응답해주셨습니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마르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살길이 열립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50:15) 환난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이 건져주십니다. 살게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위기에 직면합니까? 건강의 위기, 가정의 위기, 물질의 위기, 인간관계의 위기 등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며 살아가야합니다. 그 때가 하나님을 찾아야 할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리스도와 함께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위의 것을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찾을 때 만날 수 있습니다. 옛사람의 생각과 습관을 버리고 새사람으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를 찾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찾으려면 먼저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할 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각하지 말라는 애착심을 갖지 말라는 뜻입니다. 땅의 것은 위의 것과 대조되는 것으로 5절에 나오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입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던 것처럼 땅의 것을 버리고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세례는 중생의 표시입니다. 죄로 인해 죽었던 옛사람이 죽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새사람이 되는 징표입니다. 신분의 변화를 뜻합니다. 마귀의 종이 하나님의 자녀로, 죄인이 의인으로 신분이 변화된 것입니다.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의식입니다. 세례의식이 구원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 받을 때 고백하는 믿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은 차별이 없습니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중생하기 위해서 인종이나 민족, 신분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면 중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중생한 사람입니다. 중생한 사람은 땅의 것보다 위의 것을 찾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찾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땅의 것보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찾으며 사는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2.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사람입니다.(3)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 함께 중생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과거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중생한 후에 현재 그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있습니다. 예수님과 연합된 관계이기 때문에 생명과 영광을 함께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늘의 원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이미 죽었다고 과거형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이 옛 본성이 탐하는 땅의 것에 집착하고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음과 동시에 죄와 세상에 대해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은 어떠한 죄의 유혹에도 반응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포도나무 비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고 아버지는 농부이며 그리스도인은 가지라고 했습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생명을 유지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떠난 그리스도인은 열매는 물론 영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가지의 사명은 나무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붙어있어야만 수분과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나무에 붙어 있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예수님과의 영적 사귐을 지속적으로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의 사귐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것과 기도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줄기에서 단절된 포도나무 가지는 밖에 던져져서 말라버리게 되듯이 예수님 없는 사람들의 영적 상태도 이와 같습니다. 성공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여도 예수님 없이 살고 있다면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나무에 붙어 있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가 있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예수님이 책망하셨듯이 잎이 무성하고 견실한 가지라 할지라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가지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농부가 잘라버립니다.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표면적 그리스도인 즉 행함이 없는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음을 자랑하면서 행함이 없는 사람들은 잎만 무성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그리스도인은 심령이 새롭게 된 새사람입니다. 새사람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사로잡힌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옛사람은 땅에 있는 지체로서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부끄러운 말과 거짓말을 하는 옛사람을 벗어버릴 때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초대교회에서 아주 유명한 깡패출신 김익두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다음 맨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김익두는 죽었다.”

사람들은 깡패 김익두가 죽었다는 부고장을 받고는 모두들 기뻐했습니다. 평소에 얼마나 못된 일을 많이 저질렀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많은 시장 한복판에 그 죽었다던 김익두가 나타났습니다. 목사가 된 그의 손에는 시커먼 성경책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놀라기도 했지만 어떤 사람은 그를 시험해 보려고 지나가는 김익두 목사님에게 물 한 통을 뒤집어 씌었습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물을 툭툭 털고는 물 끼 얹은 사람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옛날 김익두가 죽었다는 그 사실을 기뻐해라. 살았다면 요절이 났을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그리스도인은 옛사람의 죄와 허물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물론 허물을 벗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픔을 감내한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허물을 벗어야 새로워질 수 있고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아프더라도 옛사람의 허물을 벗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세상이 새로워지길 기다리기 전에 내가 먼저 허물을 벗고 새로워지면 세상이 새롭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그리스도인은 옛사람의 일을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신 것은 과거의 허물을 덮어주시고 사랑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신화시대부터 13세기까지 역사를 정리한 ‘18사략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위후에게 죽변이라는 사람을 장군으로 기용하면 좋겠다고 추천했습니다. 자사의 추천을 받은 위후는 죽변의 과거 일을 들먹이며 등용을 거부했습니다. 죽변이 이전에 달걀 두 개를 훔친 적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자사는 위후에게 이렇게 권면하여 죽변이 중용되게 도왔습니다.

사람을 쓰고 기용하는 일은 목수가 나무를 다루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가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을 때 나쁜 점은 잘라내고 좋은 점을 살리면 좋은 재목으로 쓸 수 있습니다. 나무에게 약간의 흠이 있다고 전체를 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달걀 두 개의 일로 사람 전체를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과 결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약점을 감싸주셨습니다. 죄와 허물을 덮어주시고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그리스도인답게 은혜의 영양분을 공급받아 옛사람의 일을 벗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으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3.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된 사람입니다.(4)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예수님의 재림 때에 그리스도인의 영광스러운 변화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도의 낮은 몸을 영광의 몸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현재는 약할지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을 사람들입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어려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소망, 천국에 대한 소망, 현재보다는 내일이 좋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지난 19일 저녁에 야구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에서 일본과의 준결승전이 있었습니다. 8회까지 한국선수들은 일본 투수 오타니선수에게 고전하며 1점도 얻지 못했습니다. 무려 11개의 삼진을 당하면서 1차전에 이어 영봉패를 눈앞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9회초 마지막 공격에서 4점을 뽑아내며 4:3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김인식감독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이런 결과도 나온다는 걸 오늘 다시 느끼게 됐다며 소감을 피력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소망을 잃지 않으면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소망은 기다림입니다. 소망이 있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소망가운데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기다리다가 지쳐 낙망하지만 소망을 가진 사람은 끝까지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습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만나 찬송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400년 동안 선지자도 없고 하나님의 계시도 없던 시대에 살았습니다. 경건한 사람들마저도 메시야가 오리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세속에 물든 생활을 했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의 모습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시므온은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소망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 영화롭게 만드실 것이라는 소망을 간직했기에 그는 메시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시므온보다 소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습니다. 아무 때나 교회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소망을 품고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영광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던 시므온처럼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기다림의 사람들입니다. 영광을 기대하며 소망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만났듯이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날 것을 믿습니다. 이미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광된 그리스도인입니다. 영광된 그리스도인으로 살다가 주님 재림하실 때 더욱 영광된 몸으로 변화하여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될 사람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 때까지는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거제도 공곶이를 수선화 꽃밭으로 만든 강명식(84)·지상악(80) 부부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감귤 농사를 위해 5년 동안 땅을 개간하여 감귤나무 2000주를 심었는데 그해에 한파가 몰아쳐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절망했던 그는 어느 날 부산에서 볼일을 보고 버스 터미널로 가다가 종묘상 앞에 놓인 수선화를 보았습니다. 버스비를 빼면 딱 두 뿌리를 살 돈밖에 없었습니다.

구입하면서도 고작 두 뿌리를 심어봐야 무슨 도움이 되겠나하고 한심스럽게 여겼는데, 귓전에 언젠가는 때가 올 것이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집에 와서 심었지만 수선화는 한 뿌리로 3개쯤 번식하니까 10년이 지나도 눈에 잘 띄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반찬도 안 되고 돈도 안 된다고 잔소리했지만 그때마다 언젠가 때가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30년쯤 지나니까 이 섬이 다 수선화 꽃밭이 됐습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공곶이 수선화가 전해졌습니다. 꽃이 한창일 때는 차가 밀리고 사람들이 몇 를 걸어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영광된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제도 공곶이 자갈밭에 두 뿌리를 심고 때를 기다려 수선화 꽃밭으로 만든 인내와 기다림처럼 주님과 함께 영광된 그리스도인으로 설 때까지 소망가운데 인내해야 합니다. 반드시 영광의 때가 올 것입니다.

 

론 웨인(76)은 스티브 잡스(Jobs)·스티브 워즈니악(Wozniak)과 함께 애플기업을 창업한 사람입니다. 애플의 첫 로고와 시스템 운용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그 대가로 웨인은 애플의 주식 10%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웨인은 11일 만에 애플을 그만두었는데 10% 주식을 반납하며 받은 돈은 800달러(97만원)였습니다. 현재 애플 주식의 10%700억 달러에 달합니다. 원화로는 70조가 넘는 금액입니다. 만약 애플사가 이런 성공을 거두리라는 확신이 있었다면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70조원보다 더 영광스러운 영원한 천국과 면류관을 확신하며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바울사도의 고백입니다.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입니까?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의 것을 찾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으면서 예수님과 함께 누릴 영광을 소망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중생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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