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항상 힘쓰라

하마사 2015. 7. 19. 14:46

본문: 딤후 4:1~5

제목: 항상 힘쓰라

찬송: 330장

목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게 한다.

 

 

테니스를 잘치고 싶어 고수 목사님께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알려주시는 비결 중에 첫 번째가 힘을 빼라는 것이었습니다. 힘을 주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힘을 빼고 쳐야 잘 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힘을 써야 할 데가 있고 힘을 빼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엉뚱한 데 힘을 썼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힘은 써야 할 곳에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힘을 써야 할 곳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

본문은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에베소교회에 파송하여 목회를 하게 한 후에 편지로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목회자로서 힘써야 할 것과 그렇지 말아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물론 목회자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도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했습니다.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

지혜로운 사람은 힘을 써야 할 곳에 힘을 쓰고, 힘을 빼야 할 곳에 힘을 빼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어리석은 사람은 힘을 빼야 할 때 힘을 쓰고, 힘을 써야 할 때 힘을 쓰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힘써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1. 말씀전파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2절)

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바울은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전파하라’고 엄히 명령하고 있습니다. 명령의 엄중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입니다. 또한 재림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때가 악하여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전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명령하지 않으면 말씀을 전할 수 없는 환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귀가 가려워서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 하고 듣기 싫은 소리는 들으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관심을 두기보다 귀를 즐겁게 하는 감각적인 이야기와 허탄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세대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오래 참아야 하고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는 ‘네가 말씀을 전하고 싶든지 그렇지 않든지’라는 의미로 군인이 언제, 어떠한 상황 아래서도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또한 ‘힘쓰라’는 투기장이나 운동경기에서 전력투구하는 것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매우 고된 노역을 경주해야 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끈질기게 권고하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준비를 갖추고 심한 반대에 부딪힐지라도 항상 끊임없이 말씀을 전하라는 뜻입니다.

(예화)

아들이 2박 3일 동안 군대에서 첫 휴가를 왔다가 복귀했습니다. 부대로 복귀할 때가 되니 들어가기 싫다고 했습니다. 부대에 복귀하면 힘든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귀하기 싫어하면서도 들어갔는데, 문제는 버스를 잘못타서 귀대시간에 늦었다는 것입니다.(웃음) 벌점을 받아 다음 휴가에 지장이 있을까 걱정을 했습니다. 아직도 걱정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웃음) 어떻든 군인이기에 좋으나 싫으나 귀대하여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의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싶든지 그렇지 않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오래 참음과 전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오래 참으심을 본받아 죄인들이 복음을 거부할지라도 인내함으로 잘 가르쳐서 전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죄를 뼈저리게 각성시키고 책망하되 사랑으로 권면하라고 했습니다.

전도와 선교가 쉬웠다면 명령형으로 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때를 얻을 때만, 복음을 영접하는 사람에게만 전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꼭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에 들으려는 사람이 없어도 항상 힘써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카자흐스탄 단기개척선교팀이 월요일에 교회를 출발하여 카자흐스탄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는 2007년 7월 23일부터 30일까지 67명이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5순에 속하여 8명이 토카레브카 지역을 선교했습니다. 약 6시간의 비행 후에 알마티공항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15시간을 달려 가라간다은혜교회에 도착했습니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개척교회를 탐방했습니다. 토파르교회, 아바이교회, 악타스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선교지 탐방 후에 토카레브카 지역으로 이동하여 오후 늦게 누린스크 마을에서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에 짐을 풀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김건균장로님과 집 마당 잡초제거부터 시작했습니다.

며칠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가장 큰 문제는 재래식 화장실이었습니다. 8명의 순원 중에 4명이 여성이었습니다. 식사는 잘 하면서 화장실을 가지 않았습니다. 참는 것이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도 참았지만 더 이상은 힘들었습니다. 화장실에 갔는데 도저히 용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할머니께 이야기를 했더니 인분을 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 벌로 학교 재래식화장실 청소를 해본 경험은 있었지만 인분을 직접 퍼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작업을 하려 했더니 할머니가 다른 방법을 일러주었습니다. 땅을 파고 새로운 화장실을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땅을 파고 새로운 화장실을 만들어 임시로 급한 일을 해결했습니다. 또 마당에 있는 펌프에서 물이 나왔지만 허드렛물로 쓰고 식수는 마을 공동우물에서 길어왔습니다. 그것도 일이었습니다. 낮에는 마을로 전도를 나갔고 청년들은 어린이사역을 했습니다.

8년 전에 시작된 사역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잘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카자흐스탄의 상황이 과거와는 너무나 바뀌어 복음 전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가라간다 은혜교회와의 연계사역이 끊어져 독자적인 선교가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말씀을 전파하는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의 때에 놀라운 하나님의 선교역사가 펼쳐지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2. 직무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5절)

5절,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직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니안’은 목회사역을 포함한 ‘여러 가지 봉사’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주님께서 주신 설교와 교육을 포함한 봉사의 직무를 다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디모데전후서는 목회서신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목회자 디모데에게 교훈을 주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와 같은 목회자 뿐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직무를 감당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직무를 사명이란 의미로 해석해도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봉사의 사명입니다. 목회자는 목회자에게 맡겨주신 직무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며 항상 힘써야 합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 일곱 집사를 세운 목적이 있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간에 구제문제로 인해 갈등이 생겼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구제에서 제외되자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사도들이 구제문제까지 챙기다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전하는 사역에 소홀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구제문제를 담당할 수 있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 명을 집사로 세웠습니다. 대신 사도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직무는 역할에 따라 다릅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직무에 충실하게 힘써야 합니다. 자기의 직무를 소홀히 할 때 교회에 갈등이 생기고 불협화음이 발생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를 떠날 때 마가 문제로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결국 바울과 바나바가 갈등을 겪으며 갈라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가가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감당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것마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지만 바울과 바나바의 아름다웠던 협력사역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로서 1차 선교여행 때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까지 동행했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2차 선교여행 때 마가와 함께 가자는 바나바의 제안을 바울이 거절한 이유는 1차 여행 당시 마가요한이 중도에서 포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선교에 대한 소명의식이 부족하고 용기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가 요한이 도움이 못되리라 판단했을 것입니다.

바울을 위해 헌신적으로 애썼던 바나바의 관대함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동행자 문제로 언쟁 끝에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마가 요한은 훗날 바울의 사역에 유익한 사람으로 바울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는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직무를 다하라는 뜻은 직무에 힘쓰라는 의미입니다. 운동경기를 보면 승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를 보면 최선을 다하다가 때로는 부상을 입기도 합니다. 몸을 돌보지 않고 몸싸움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순결하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내적, 외적인 적들과의 영적인 싸움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또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철저히 자기부인이 필요합니다.

(예화)

‘링겔만 효과’는 독일의 심리학자 링겔만이 수행했던 유명한 줄다리기 실험에서 유래된 이론입니다. 링겔만은 참가자들에게 줄다리기를 시켰는데, 참가자들이 각자 얼마나 세게 줄을 당기는지 측정할 수 있는 장치가 달려있었습니다. 집단 전체가 줄을 당길 때의 힘과 개인이 혼자 줄을 당길 때의 힘을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대부분의 사람이 이론적으로 1:1→100%, 2:2→200%, 3:3→300%의 힘이 발휘되리라 생각을 하지만 실제 실험결과는 달랐습니다.1:1로 줄다리기를 하면 100% 힘을 발휘하지만, 2:2→93%, 3:3→85%, 8:8→49%의 힘만 발휘되는 것으로 실험결과 밝혀졌습니다.

‘링겔만 효과’란, 참여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개인당 공헌도는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개인이 집단에 속해 있을 때에는 자신의 힘을 최대로 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충 단체 속에 묻혀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직무를 태만히 하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중에도 이런 사람이 없습니까?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대충하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자신의 힘을 쓰지 않다가 개인의 이익이 직결되면 물불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 말입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에서 함께 열심을 내는 것은 쉽습니다. 분위기 때문이라도 열심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일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혼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어려웠습니다. 3절과 4절을 보면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을 충족시켜줄 거짓교사들을 원했습니다. 복음을 들으려하지 않았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외면하고 귀를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랐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 항상 힘쓰는 것은 더욱 힘들었습니다.

 

(예화)부모님의 농사이야기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의 일화입니다. 일도 협력하여 함께 하면 재미도 있고 능률도 높아집니다. 아버님이 농사일을 하실 때는 꼭 어머님을 부르셔서 함께 하려 했습니다. 혼자서 하면 재미가 없고 표시도 잘 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아버님을 닮아선지 아내와 함께 일하는 것이 좋습니다.(웃음)

직무를 감당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힘을 모아 사명을 감당하면 덜 힘들고 재미도 있습니다. 반대로 사명을 등한히 하는 분위기에서 혼자서 일을 해야 한다면 힘이 빠지게 됩니다.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감당해야 할 직무가 있습니다. 각자의 은사에 따라 힘쓰면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주어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때도 있습니다. 그 때에도 항상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각자에게 맡겨주신 직무가 있습니다.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라고 맡겨주신 직분입니다. 목회자는 목회자의 자리에서, 성도는 성도의 자리에서 맡겨주신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 항상 힘써야 합니다. 함께 열심히 사명을 감당할 때 시너지효과가 생깁니다.

 

(예화)

성막을 만들 때 브살렐은 목공이나 금속과 관련한 대부분의 일을 주도하였고 가장 중요한 법궤를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오홀리압은 베를 짜고 수를 놓고 의복을 제작하는 등 섬유관련일의 전문가였습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각각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서로 협력하며 성막과 성막기구를 만드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각자의 직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직무를 감당할 때 고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때로는 욕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오래 참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을 내세우고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모든 일에 신중하게 절제하며 항상 직무에 힘써야 합니다.

 

3. 기도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엡 6:18)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롬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기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문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기 위해 깨어있어야 합니다. 기도하기를 항상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기도하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가 설령 하나님의 뜻과 다른 기도를 드린다고 할지라도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기도해주시기 때문에 일단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롬 8:26-27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는 십자가를 지기 원치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지시겠다는 기도입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내 뜻과 아버지의 뜻이 충돌하면 자기 뜻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에 모든 것을 맞출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전파나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카자흐스탄 단기개척선교팀이 출발하기 전에 매주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전도를 나가기 전에 기도하고 나갑니다. 영적 전쟁을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말씀을 전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은 기도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각자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이끌어내는 가장 큰 능력은 기도입니다.

사무엘은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백성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삼상 12:23) 현역시절에 항상 기도에 힘썼던 사무엘은 은퇴 후에도 기도를 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예화)

또한 느헤미야도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유다지파에 속했던 하가랴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바벨론이 망하고 페르시아의 왕이었던 아닥사스다의 신임을 받아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왕이 즉위한지 20년에 수산궁이라는 궁전에 살고 있던 11, 12월경에 느헤미야의 형제 중에 하나니라는 사람이 유다에 갔다가 돌아와 유다의 형편을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유다사람이 큰 환란과 능욕을 당하고 있었으며 예루살렘성은 파괴되고 성문은 불에 탔다는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슬퍼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여 마침내 왕의 허락을 받아 유다총독의 신분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52일만에 성벽을 재건하고 사회 정치적 개혁을 이루어 가는 내용을 기록한 것이 느헤미야서입니다.

그 중에 1장은 예루살렘의 파괴된 성벽과 동족들의 어려운 상황을 전해 듣고 슬퍼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느헤미야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느헤미야는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상당한 시일동안 백성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슬픔에 잠겨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궁에서 부러울 것 없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가장 위대한 제국 페르시아 왕의 신임을 받는 술 맡은 관원으로서 소수민족에 불과한 자기 동족들의 아픔을 외면하며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족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처럼 생각하며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생명을 내어 걸고 절박하게 하나님의 응답을 바라며 기도했습니다.

또한 그는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 틈나는 대로 하나님께 매어 달려 기도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그의 얼굴에 수색이 가득하여 왕이 묻게 될 정도였습니다. 금식하며 밤낮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회개하며 말씀을 붙잡고 4개월 동안 끈질기게 기도했던 느헤미야는 마침내 아닥사스다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항상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항상 힘써야 할 것을 등한히 하는 것은 없습니까? 혹시 힘쓰지 말아야 할 것에 엉뚱한 힘을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를 돌아보면 힘쓰지 않아도 되는 일에 힘을 쓰는 것이 있습니다. 절제가 필요합니다. 목사로 항상 힘써야 할 것을 등한히 하는 것이 있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항상 힘써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을 항상 힘써야 할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항상 힘써야 할 것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전파에 항상 힘을 쓰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맡겨주신 직무에 항상 힘을 쓰고 있습니까? 기도에 항상 힘을 쓰고 있습니까?

말씀전파, 직무, 기도에 항상 힘쓰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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