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행 17:32~34
제목: 선교의 성공과 실패
바울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안디옥교회를 통해 세계선교의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1차, 2차, 3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다니면서 수없이 많은 고난과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었습니다.
본문은 2차 선교여행 중에 아덴에서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덴은 지금의 아테네로 당시 철학의 도시, 학문의 도시였습니다. 서양철학의 발상지였습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장터에서도 날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한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쾌락을 중시하는 에피쿠로스학자와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스토아철학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덴 사람들은 관망하거나 배척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설교를 조롱과 비웃음으로 일축해 버리면서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지만 몇 사람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였던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실패한 선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과 장터 상인과 행인, 철학자들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몇 사람만이 관심을 보였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을 위한 선교도 중요하지만 몇 사람을 위한 선교도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수 천 명의 무리들을 향해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지만 수가성의 한 여인을 위해서 일부로 사마리아로 가기까지 하셨습니다.
선교를 통해 나타나는 반응 또한 다양합니다. 반응에 일희일비해서는 선교할 수 없습니다. 단기간의 열매보다는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선교의 성공과 실패는 반응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선교의 반응은
1. 조롱(32절 상반절)
32절 상반절,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심판과 죽은 자의 부활 사상에 대한 바울의 증거를 들은 아덴 사람들은 조롱했습니다. 조롱했다는 표현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치부해버렸습니다. 영혼 불명사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적인 사상에 빠져 있어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육체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전하는 바울의 설교를 비웃었습니다.
시편 42:3절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시인을 조롱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될 정도로 속상해 하였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고난당할 때 불신자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합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다가 조롱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선교는 조롱받지 않는 선교입니까? 조롱받지 않는 곳은 선교지가 아닐 수 있습니다. 아덴에서 복음을 전할 때 조롱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그곳이 선교지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선교를 위해서는 조롱을 각오한 선교여야 합니다.
(예화)한국 최초의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
토마스 선교사는 영국 런던대 뉴칼리지를 졸업한 뒤 목사안수를 받고 그해 런던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됐습니다. 3년 뒤 그는 선교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27세 때인 1866년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다가 대동강변에서 순교했습니다.
조롱 정도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왔던 조선 땅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했으니 실패한 선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놀랍게 성장했습니다. 그의 순교의 피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위한 조롱과 멸시, 순교는 실패한 선교처럼 보일지라도 그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선교의 반응은
2. 소극적 관심(32절 하반절~33절)
32절 하반절~33절,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바울의 설교를 대부분의 청중들은 거부했지만, 어떤 사람은 소극적인 관심을 가졌습니다. 바울의 말을 다시 듣겠다고 했습니다. 한 번의 복음전파로 열매가 맺히기를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마디 말을 듣고도 복음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했을 때 하루에 삼 천 명이 믿고 세례를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울사도 역시 베드로 못지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덴에서는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지만 열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어떤 사람은 소극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물론 공손한 거절의 표현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조롱하는 사람에 비해서는 희망적이었습니다. 공손하게 거절을 당하는 것도 그나마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카자흐스탄 선교를 갔을 때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복음을 위한 접촉점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들어줄 사람만 있어도 용기가 생겼습니다.
바울사도는 아덴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지만 냉소적인 반응과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실망했습니다. 위대한 설교자이며 선교사이고 성령의 사람이며 목회자인 바울사도가 복음을 전했지만 부정적인 반응이었습니다. 바울사도는 실망하여 아레오바고 광장을 떠났습니다.
선교현장에는 이런 일들이 허다합니다.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마른땅과 같아서 씨앗이 떨어지지만 싹을 틔우지 못하고 말라버립니다. 소극적인 관심을 보여도 결국 복음이 발아하지 못하고 말라죽어버립니다. 열매 없이 쓸쓸이 떠나는 실패한 선교처럼 보였습니다.
선교의 반응은
3. 가까이 함(34절)
34절,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바울은 더 이상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연설하거나 전도할 수 없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계속 연설할 수 있는 자유와 권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곳을 떠났습니다. 실패한 선교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한명의 결신자도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몇 사람은 바울을 가까이 하며 따랐습니다. 소수의 사람은 바울과 아주 가깝게 지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바울사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들 중에 대표적인 두 사람이 아레오바고 관리였던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인이었습니다. 디오누시오는 아레오바고 법정의 판사였습니다.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디오누시오가 최초의 아덴 감독이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거나 예배를 드렸다거나 또는 일꾼을 세웠다는 언급이 없지만 아덴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져 자랄 수 있는 토양이 준비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교의 성공과 실패는 결코 신자의 수가 많고 적음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선교의 열매가 풍성하지 않았지만 아덴지역에 복음의 씨를 심은 것이 중요했습니다. 조롱하는 반응과 소극적인 반응으로 바울사도가 실망하여 떠났지만 그 땅에 복음을 들고 들어갔고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했다는 것이 선교의 성공입니다. 씨앗을 심은 것이 선교의 성공입니다. 싹이 트고 열매 맺게 하는 것은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교회는 미전도종족 선교라는 사명을 부여받아 해마다 해외선교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조롱과 멸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실패한 선교처럼 보일 때 관심을 가지는 사람과 가까이 다가와 복음을 영접하는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선교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이 판단하실 부분입니다. 사람이 볼 때는 실패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계획아래 진행되는 선교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교는 성공뿐인 선교임을 믿고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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