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후 5:17~21
제목: 그리스도인
찬송: 436장
목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다.
인도의 독립운동가 간디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좋아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예수님과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지만 예수님과 다른 모습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크리스천, 혹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립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은 사도행전 11장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행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리스도인이란 기독교인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뜻합니다. 스데반집사의 순교로 인해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흩어졌습니다. 그들이 안디옥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했을 때 믿는 사람들이 증가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했습니다. 바나바는 다소에 있던 바울을 불러 안디옥교회에서 함께 사역했습니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처음 들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타인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들음으로써 참으로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사람임을 인정받게 되고 그로 인하여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교회의 설립에 대한 정당성을 간접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본문의 표현을 빌리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과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입니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있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열매를 맺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결국 말라 죽어버립니다. 그리스도인은 나무되신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있는 가지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즉 그리스도인은
1. 새로운 피조물(17절)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변화를 경험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감격에 찬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의인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죄인이 의인되는 신분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의인으로 인정하시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밖에 있던 이전의 모습은 지나갔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종과 성을 초월하여 누구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몸을 입고 살고 있으므로 육체의 욕망과 죄에 굴복당할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활 방식과 사고방식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을 엡 4:24절에서는 새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의 은혜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롭게 창조된 새 사람이 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선한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으심을 받은 존재임을 믿어야 합니다. 엡 2:10절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신 목적을 말씀합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과거에 예수님을 모르고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던 이전의 모습은 벗어버리고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롭게 태어났음을 믿어야 합니다. 과거의 모습은 떨쳐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욕심을 버리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났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생각의 변화
사람이 바뀌었다고 할 때 생각의 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기의 잘못된 사상과 이념을 고집하는 사람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습니다. 껍질은 바뀔지 몰라도 내면이 변하지 않은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변했다고 할 때 먼저 그의 생각의 변화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밖에 있을 때의 가치관과 생각을 그대로 고집하며 산다면 그리스도인처럼 보일지 몰라도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적 가치관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따라 살 때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예화)비전향장기수 이인모씨
이인모(1917~2007)씨는 종군기자 출신으로, 조선인민군 언론인이었습니다. 그는 함경남도 풍산군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종군기자로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34년 동안 감옥에서 복역했습니다.
그는 복역기간 중 한국으로의 전향을 거부하여 비전향장기수가 되었는데, 1993년 귀국을 희망하여 최초로 북한으로 송환되었습니다. 몸은 한국에 있었지만 북한의 사상을 버리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면서도 과거의 육신적 생각, 죄악된 생각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삶의 가치관이 이전과 똑같습니다. 죄인의 습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생각이 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각으로 변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삶을 만들어갑니다. 생각이 말이 되어 나오고, 말이 씨가 되어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2)언어의 변화
새로운 피조물은 언어가 변해야 합니다. 생각이 변하면 언어가 변하게 됩니다. 악한 말을 하던 사람이 선한 말을 하면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말이 변하게 됩니다.
은혜로운 말, 덕을 세우는 말, 격려의 말, 칭찬의 말, 긍정적인 말은 화평을 가져옵니다. 물고기는 항상 주둥이로 낚입니다. 그러므로 입을 열 때와 닫을 때를 잘 구분해야 합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자라고 했습니다(약 3:2). 오죽하면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도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달라고 기도했겠습니까? 우리는 입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분으로 심문 받으면서도 자신을 위한 변명도 변호도 않으셨습니다. 요셉과 다윗은 얼마나 억울하고 기막힌 일을 많이 당했습니까? 그래도 입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입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번 명절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가족, 친척, 친구, 이웃들을 만나 많은 대화를 할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의 말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처럼 말해서는 안됩니다. 생명을 살리는 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하여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임을 말로 증명해보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행동의 변화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해라, 운명이 된다.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고 했습니다. 대처 전 총리가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라고 합니다.
생각이 이토록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생각이 행동을 결정합니다. 행동 이전에 방향을 결정합니다. 약한 생각을 하면 약한 방향으로, 강한 생각을 하면 강한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갑니다. 또한 생각하는 대로 말이 됩니다. 말은 행동이 되고 결국 운명까지 바뀔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화)그리스도인의 와이파이 지역
스마트폰을 사용하면 월별로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이 있습니다. 하지만 와이파이 지역에서는 데이터가 차감되지 않으면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와이파이란 무선데이터 전송시스템으로 근거리 무선망입니다.
집과 사무실은 와이파이 지역이라 데이터를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쓸 수 있습니다. 거의 매월 절반 이하도 사용하지 않고 요금을 낼 때가 많습니다.
한데, 언젠가 10일이 되기 전에 데이터를 소진하여 초과요금을 많이 낸 적이 있었습니다. 딸이 집에서 동영상을 보았는데 와이파이를 켜지 않고 사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며 그리스도인에게도 와이파이 지역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는 사용시간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허락된 와이파이 지역을 벗어나면 막대한 손해가 따를 수 있습니다.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와이파이 지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와이파이 지역을 표시해줍니다. 자기 위치를 매순간 점검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화)삭개오
그리스도인이 된 후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말하고 행동
새로운 피조물은 생각이 변해야 합니다. 언어가 변해야 합니다. 행동이 변해야 합니다. 이번 명절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임을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2. 화목의 직분자(18-19절)
18~19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화목하다’란 표현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의 범죄로 하나님과의 사이가 멀어져 원수와 같은 적대 관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죄의 문제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인간의 반역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원수지간으로 지내는 것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무서운 일입니까? 사람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의를 행하고 자기수양을 하는 등의 노력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화목은 인간의 그 어떤 노력으로도 이룰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과의 원수 된 문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해결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둘 사이를 가로 막았던 담이 무너지고 적대감정이 해소되었습니다. 이 엄청난 화해의 작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인간이 할 수 없었기에 오직 하나님에 의한 주도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는 전적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백성이 범죄했을 때 제사장을 통해 소와 양을 제물로 삼아 화목제사를 드렸습니다. 화목제사는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고 하나님과 영원히 화목하게 살 수 있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롬 5:1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자.”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을 뿐 아니라 전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주셨습니다.
따라서 누구라도 하나님과 화해했다면 그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은 자로서 이웃과 화목해야 하고 아직 화목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죄인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이 이 복음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다고 했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자는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입을 다물고 있다면 세상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길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리스도의 화목의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의 직분자로 부름을 받았다면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예화)화해의 성탄절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때 있었던 실화입니다. 프랑스 북부 독일군 점령지역, 100m도 안 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독일, 프랑스, 영국이 마주 보며 전투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대치중인 독일군. 프랑스군. 영국군은 각각의 참호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독일군 진지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잔잔히 울려 퍼집니다. 이에 감동 받은 영국군 진지의 파머 신부가 옆에 있는 백파이프를 들고 반주로 화답합니다. 독일군 참호에서 백파이프 캐롤 연주를 들은 테너 출신의 스프링크가 참호 밖으로 나와 백파이프의 연주를 따라 캐롤을 불렀습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프랑스군들도 모두 스스로 총을 내려놓는 비무장 상태가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기적이 벌어진 것입니다. 대치중인 3개국의 군인들이 비무장 상태로 대치 지역 한가운데에 모여들자, 영국의 파머 신부가 크리스마스 미사를 인도했습니다. 3개국 지휘관들이 최초로 얼굴을 맞대고, 하루 동안의 휴전을 결정했습니다. 서로 모여서 대화를 나눈 병사들은 국가 대항 축구를 했습니다.
이후에 다시 총부리를 겨누며 전쟁을 했지만 이 날의 특별한 크리스마스는 역사에 오래오래 기억되고 있습니다.
명절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이가 좋은 사람도 만나고 서먹한 사람도 만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관계가 나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화목의 직분자입니다. 작은 화해를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마음에 응어리진 상처와 무기들을 해제하고 참호 밖으로 나가는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 이런 행동이 어우러져 적과 아군이 하나 되는 화목의 장이 펼쳐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목케 하셨듯이 화목의 직분자로 쓰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3. 그리스도의 사신(20절)
20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리스도의 사신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서한을 들고 파송하는 곳으로 가서 그리스도의 뜻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우호적인 나라를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극진한 환대를 받습니다. 반대로 적대국을 가야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수치를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화)암몬왕 하눈과 다윗의 사절단
역대상 19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암몬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아들 하눈이 왕이 되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나하스가 전에 다윗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것을 기억하고 조문사절단을 보냈습니다. 하눈은 다윗이 나라를 정탐할 목적으로 사절단을 보냈다고 주장하는 방백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절단의 수염을 깎고 옷을 볼기 중간까지 잘라 돌려보냈습니다. 결국 그것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수염은 명예와 권위의 상징이었으며 수염을 기르는 것은 자유인의 권리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사신들이 수염을 깎인 것은 최대의 수치였습니다.
또한 의복을 볼기 중간까지 잘랐다는 말은 그들의 수치가 드러나도록 잘랐음을 의미합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속에 내의를 입지 아니했으므로 그들의 옷을 엉덩이 윗부분까지 잘랐다는 것은 벌거벗겨 놓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잔인한 행위였습니다.
이처럼 사신은 환대를 받기도 하지만 수치와 모욕을 당하기도 합니다. 다윗의 뜻을 전달하러 갔다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대신하는 직책입니다. 환대를 받는 것은 예수님이 환대를 받는 것이고 모욕과 수치를 당하면 예수님이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는 본래 명망이 높은 가문에서 태어나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유대 사회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로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세상에서 자랑할 만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 복음 전파를 위해 일생을 헌신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음을 확신하고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세계를 누비며 그리스도의 사신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신의 권위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당파와 시기, 질투로 인해 분열되어 있고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된 고린도 교인들에게 오직 하나님과의 화목을 통해 바르게 회복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신은 언행을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사신이 잘못하면 파송한 나라와 왕이 욕을 먹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사신이고 대사입니다.
주중 중국대사와 통일부 장관을 지냈던 김하중 장로님이 쓴 ‘하나님의 대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정부를 대표한 대사이기도 했지만, 하나님나라의 파송을 받은 ‘하나님의 대사’라고 고백했습니다.
김하중 장로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대사이고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우리의 언행이 하나님을 알리고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화목의 직분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명절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옛 사람이 아닌 생각과 언어와 행동이 변화된 새로운 사람임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화목의 직분자로 다툼과 갈등이 있는 공동체를 화목케 하는 직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예수님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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