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는 '레 미제라블'을 내놓은 후 이 책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그는 궁리 끝에 '?'라고만 쓴 전보를 출판사에 보냈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답장을 보고 위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답장에는 '!'라고 돼 있었다. 작은 문장부호 하나에 얼마나 깊은 뜻이 담겨 있는지 알려주는 일화다.(문학수첩 '먹고, 쏘고, 튄다')
▶19세기 미국은 관세법에 쉼표 하나를 잘못 찍는 바람에 200만달러를 손해 봤다고 한다. "모든 외국산 과일나무(All foreign fruit plants)는 면세"라고 할 것을 "모든 외국산 과일과 나무(All foreign fruit, plants)는 면세"라고 한 탓이었다.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는 자기가 쓴 대본을 갖고 배우들이 멋대로 대사 연습을 하면 "내가 표시해 놓은 마침표와 쉼표가 살아나지 않는다"며 화를 냈다.
▶뉴욕타임스는 1999년 '지난 1000년의 최고(最高)'를 선정했다. 최고의 지도자, 최고의 부동산 거래, 최고의 피아노곡 등 각 분야 최고 50개 가운데 '최고의 문장부호(符號)'로 뽑힌 것이 마침표였다. 점 하나로 문장을 마무리하는 걸 생각해낸 이는 르네상스 때 베네치아의 한 인쇄공이었다. 타임스는 "어떤 쇠붙이도 적절한 위치에 표시된 마침표처럼 우리의 가슴을 찌를 수는 없다"며 "마침표가 없으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영영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문장부호를 "기차(문장)가 탈선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따라가야 하는 철로 같은 것"이라고 했다. 20년 전 나온 미국 시카고대 출판부의 글쓰기 교범은 쉼표에 관한 규정만도 59개나 된다. 그러나 다 옛날 얘기다. 인터넷 시대 글쓰기에서 문장부호는 자판(字板)을 몇 번 더 두드리게 하는 귀찮은 존재로 비칠 뿐이다. 우리 휴대폰 글쓰기에선 띄어쓰기와 함께 마침표·쉼표가 아예 사라지고 있다.
▶엊그제 문화체육관광부가 문장부호 규정을 대폭 손질한 맞춤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종래 '3·1운동'이라고 해야만 했던 것을 '3.1운동'이라고 써도 되도록 했다. 말줄임표(……)는 가운데나 아래 세 점(…, ...)씩만 찍어도 된다. 낫표(「 」)나 화살괄호(〈 〉) 대신 따옴표(' ')도 쓸 수 있게 된다. 모두 자판 두드리는 절차를 하나라도 줄이려는 언중(言衆)의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다. 그러다 보니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 정답이 여러 개다. 맞춤법의 '원칙'과 '통일'이란 말이 무색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인터넷 시대니까.
-조선일보 만물상, 201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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