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꿈치 들고 뛸 준비 안 하면 세계 1등 기업도 몰락하기 마련
主力산업 선도형 전략 계속하되 의료바이오·에너지환경·안전·
지능서비스·항공우주 산업에선 선진국 겨눈 '추격자 전략' 써라
- 이광형 KAIST 미래전략대학원장
세계를 호령하던 기업들이 쇠락했던 스토리가 회자되고 있다. 소니, 노키아, 모토롤라, 닌텐도 등의 화려한 이름들이다. 이들은 이제 '1등의 함정'에 빠져서 몰락한 전형적인 사례 연구 대상이 되어버렸다. 자신들의 성공 신화(神話)에 눈이 가려 주변 환경 변화를 무시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들의 제국(帝國)을 건설했던 이 기업들은 세상이 자신들 중심으로 돌아갈 줄 알았으나 진짜 세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공은 자신들이 서 있는 곳으로 올 줄 알고 뒤꿈치를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공이 멀리 날아가면 그 공은 상대방이 잘못 친 것이라 치부했다.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이 심상치 않다. 6대 주력 산업 중에서 석유화학·휴대폰·조선·제철 산업이 중국에 거의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그나마 반도체와 자동차가 근소한 차이로 앞서가고 있어서 다행이다.
중국과의 경쟁은 대체로 제조원가 절감의 새로운 혁신이 요구되는 싸움이다. 세상에 아무도 해보지 않은 기술혁신을 이루어내야 하는 '선도형(先導型·First Mover) 전략'이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가 정보통신기술(ICT)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이를 주력 산업에 접목시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전략을 적용하면 된다.
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성공해본 예도 거의 없다. 여기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뒤꿈치를 들고 다른 것도 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앞에 오는 공만 치려고 하지 말고 멀리 오는 공도 보라는 말이다.
산업은 현재 우리가 잘하는 6대 주력 산업이 전부가 아니다. 눈을 잠시 멀리 두면 아직도 많은 산업이 있다. 미국이나 유럽·일본이 잘하고 있지만 우리가 아직 관심을 많이 두지 않고 있던 산업들이다. 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서는 이런 산업을 '메시아(MESIA)'라고 부른다. 의료바이오(Medical-Bio), 에너지환경(Energy-Environment), 안전(Safety), 지능서비스(Intelligent Service), 항공우주(Aerospace) 산업의 영문 앞글자를 따 만든 말이다.
의료바이오산업은 병원에서 사용하는 장비나 시약(試藥)·약품들을 말하는데 매우 값이 비싼 제품들이다. 에너지환경산업은 인류가 피할 수 없는 화석에너지 고갈과 환경문제를 해결해주며 갈수록 중요시될 산업이다. 안전산업은 사회안전을 위한 시설과 재난 대비 장비에서 국방과 사이버 보안까지 포함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지능서비스는 고급화된 서비스산업으로서 소프트웨어 기술 발전과 함께 가는 산업이다. 항공우주산업은 중소형 항공기와 무인기, 우주 정보 산업으로 한국이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 분야다.
'메시아'는 모두가 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미국 등 선진국이 잘하고 있고 우리가 그동안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있던 산업들이다. 그리고 다품종소량생산 제품이 많다. 우리가 이 산업에 뛰어든다면 미국 등 선진국과 경쟁해야 한다. 이때 우리는 그들이 쌓아놓은 것을 따라가는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을 쓰면 된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성공해 왔던 전략이고 자신 있는 전략이다. 그리고 중국이나 인도와 싸우는 것보다 선진국들과 싸우는 것이 더 유리하다. 우리는 선진국들과 싸워 이긴 경험과 노하우, 성공 스토리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주력 산업들은 모두 미국과 일본 등과 싸워서 뺏어 온 것들이다.
우리가 성공해왔던 추격자 전략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우리가 잘하던 추격자 전략이 유효한 분야를 찾아서 그 전략을 적용하면 승산이 있다. 그것이 바로 '메시아' 분야다. 결국 '투 트랙(Two track)' 전략으로 가자는 것이다. 기존의 주력 산업은 선도형 전략을 써서 계속 앞서가고, 신산업은 추격자 전략으로 선진국과 경쟁한다. 또 그동안 잘하던 대량생산 방식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다품종소량생산에도 고부가가치 제품이 많다. 뒤꿈치를 땅에 붙이고 있으면 하던 것만 보이지만 뒤꿈치를 들고 뛰면 멀리 가는 공도 낚아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