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본질/교육

"얘들아 올라와" 아래로 내려간 선생님들

하마사 2014. 5. 22. 09:31

"선생님들 덕에… 우리 애들이 마지막 순간 무서워하진 않았을 것"

-희생된 학생의 학부모

5층 선실 교사들 3·4층서 발견… 14명중 3명만 생존
시민들 "세월호 사건 통해 교사들을 다시 보게 됐다"

선생님들 방은 갑판과 가까워 탈출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자신의 구명조끼 벗어주며 최후 순간까지 제자들 구조

세월호 침몰 현황.
단원고 전수영(25·국어) 교사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세월호 3층 식당과 주방 사이였다. 전 교사의 선실은 5층이었다. 배가 기울어진 순간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면, 그는 아마도 구조됐을 것이다. 같은 층에 있던 선원들이 그랬듯. 하지만 전 교사는 본인의 선실에서 나와 4층, 그리고 3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머니와 남자 친구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아이들한테 구명조끼를 입혀야 해요" "구명조끼 없어. 미안해 사랑해"라는 말이었다. 전 교사는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 승객 중 단원고 선생님들은 생존율이 가장 낮았다. 단원고 학생들이 23%, 서비스직 승무원들이 36%, 일반 승객이 69%였고, 선장 등 선박직 선원은 100%였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14명 중 3명, 생존율 21%였다. 실종됐던 선생님들의 시신이 하나하나 수습되면서, 그 이유가 밝혀지고 있다. 여교사인 김초원·이지혜·최혜정 선생님은 모두 4층에서 발견됐다. 이들의 선실은 원래 5층이었다. 4층에 방이 있던 남자 선생님 6명은 전원 숨지거나 실종됐다. 같은 층의 학생들은 10명 중 2명꼴로 생존했지만 유독 선생님들만 한 명도 구조되지 못한 것이다. 해경 관계자는 "선생님들의 방은 갑판과 가까워 상대적으로 탈출이 쉬웠지만 아이들을 구하려고 아래로 내려갔거나 선실 깊숙히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생존한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구조된 이애련(52·수학) 교사도 5층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이 교사는 사고 당시 4층에서 아이들을 구하고 있었다. 세월호에서 구조된 단원고 여학생들은 "이애련 선생님이 아이들하고 객실에 있다가 안 열리는 문을 여는 순간 밖으로 떨어져 갑판을 통해 구조됐다"고 증언했다. "닫혀서 꼼짝 않는 문을 열려고 애를 쓰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열린 문틈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세월호 선원들은 승객을 버렸지만, 교사들은 아이들과 끝까지 함께했다. 삶과 죽음은 그들의 선택이 아니었다.

단원고 학생들이 기억하는 선생님들의 마지막 모습은 '선생님다움'이었다. 구명조끼가 없는 제자들에겐 망설임 없이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 주었고, 침몰하는 배 안에서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던 제자들을 탈출구로 먼저 내보냈다.

(왼쪽부터)故전수영 선생님, 故남윤철 선생님, 故최혜정 선생님, 故김초원 선생님.
(왼쪽부터)故전수영 선생님, 故남윤철 선생님, 故최혜정 선생님, 故김초원 선생님.
지난달 18일 세월호 4층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2학년 3반 담임 고(故) 김초원(26·화학) 교사. 김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55)씨는 '아이들이 이렇게 된 건 딸 교육 잘못한 내 탓'이란 생각에 3반 아이들 빈소 20여 곳을 모두 돌았다. 학부모들에게 멱살을 잡혀도 좋다는 각오였지만 정작 그곳에선 "감사하다"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희생 학생의 부모들은 "선생님이 끝까지 우리 아이를 구하려다가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선생님 덕에 우리 아이들이 무서움 속에서 죽지는 않았을 거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버지 김씨는 "빈소에 들어가니까 학부모들이 나를 끌어안고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울더라"고 했다. 김씨는 "'김 선생님의 숙소는 5층이었지만 아이들을 구하려고 4층에 내려왔다 변을 당하셨다'는 얘기를 들으며 '우리 딸이 혼자 살려고 하지는 않았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2학년 7반 담임 이지혜(31·국어), 2반 담임 전수영 교사도 배가 급격히 기울고 있던 오전 10시 15분쯤 4층 객실로 내려갔다. 3반의 한 생존 학생은 "물이 들어차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선생님들이 내려와 '갑판 위로 대피하라'며 계단을 가리켰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지난 3일 4층에서, 전 교사는 지난 19일 3층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두 교사 모두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있었다.

2학년 9반 담임 최혜정(25·영어) 교사는 학생들에게 SNS를 통해 "걱정하지 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는 글을 남겼다. 5층에 머물던 최 교사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학생 10여명을 구한 뒤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사고 당시 남교사들은 학생들과 같은 4층을 쓰고 있었다. 2학년 5반 담임 고 이해봉(33·역사) 교사는 갑판 난간에 매달려 오도 가도 못하던 제자 10여명을 배 밖으로 탈출시켰다. 그러곤 선실에 남은 제자들을 구하려고 다시 들어갔다.

숨진 단원고 교사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
6반 담임 남윤철(36·영어) 교사는 배에 물이 들어차자 "침착하라"고 외치며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구명조끼를 채워줬다. 그는 불어나는 물을 보고 넋을 놓고 있던 학생들을 비상구로 인도했지만, 정작 자신은 물에 휩쓸렸다. 난간에 매달려 있다가 남 교사의 도움으로 구조된 생존 학생은 "선생님은 우리를 비상구로 인도하면서 대피시키고 다른 학생을 구하려고 아래층으로 들어가셨다"고 말했다. 남 교사의 시신은 지난달 17일 사고 해역 인근에서 발견됐다. 해경은 강한 조류 때문에 선체 안에 있던 남 교사의 시신이 밖으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응현(44·화학) 교사와 박육근(52·미술)·양승진(57·사회) 교사도 사고가 나자 학생들이 모여 있는 객실로 들어갔다. 2학년 1반의 한 생존 학생은 "양승진 선생님이 목이 터져라 갑판으로 나오라고 외치면서 안으로 걸어 들어가셨다"고 말했다. 양 교사는 구명조끼를 벗어 제자에게 건네준 상태였다.

4층에 머물던 고창석(43·체육) 교사는 자신이 살린 제자 곁으로도, 하늘로 떠나 보낸 제자 곁으로도 돌아오지 못한 채 실종자로 남아있다. 생존한 제자들은 "선생님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치시며 우리의 탈출을 도왔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고슴도치처럼 머리가 짧은 선생님과 마주치면 "또치쌤" 하고 불렀다.

구조됐다가 학생들이 희생됐다는 죄책감을 못 이기고 목숨을 끊은 강민규(52·도덕) 교감도 세월호가 기울어지자 "이쪽으로 나와라"고 소리쳐 학생들을 비상구로 유도했다.

참사의 충격에서 차츰차츰 벗어나고 있는 단원고 학생들은 "선생님들 중에 우리를 버리려 했던 분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전한다. 그날 선생님들의 마지막을 목격한 학생들의 증언을 접한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을 통해 교사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오른 단원고 교사 관련 기사에는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학생들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선생님 감사합니다" "당신들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참스승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라는 댓글들이 수백개씩 달렸다.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도 희생된 단원고 선생님들을 찾는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 분향소 안에 놓인 여러 영정 사진 중에서 유독 단원고 교사들 영정 앞에 헌화용 국화가 수북이 쌓였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 담임교사 김민소(25)씨는 "구출되길 포기하고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배 안으로 다시 들어간 선생님들 영정 앞에서 '선생님들의 정신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14/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