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본질/교육

서울대 '한국전쟁의 길'

하마사 2014. 8. 7. 18:31
"워털루의 승리는 이미 이튼의 운동장에서 이뤄졌다." 영국 웰링턴 장군이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무찌르고 했다는 유명한 말이다. 이 전투에서 숨진 영국군 1만5000명 중엔 영국 명문 이튼스쿨 출신이 많았다. 반면 4만여 프랑스군 전사자는 대부분 평민이었다. 프랑스는 특권층이 요리조리 빠졌지만 영국은 귀족 자제들이 목숨 걸고 전투에 뛰어들었다. 이 차이가 워털루의 승패를 갈랐다는 게 웰링턴의 말뜻이다. 웰링턴도 이튼을 나왔다.

▶그로부터 140년 뒤 이튼 출신으로 영국 총리가 된 인물이 있다. 1955년 처칠의 뒤를 이은 앤서니 이든이다. 그가 회고록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영국에 내 또래 유능한 정치가가 드문 것은 우리 세대가 1차대전 때 어린 나이에 맨 먼저 지원해 대개 전사한 때문이다." 1914년 1차대전이 일어났을 때 이든은 열일곱 살이었다. 그와 함께 이튼에 다니다 1차대전에서 스러진 젊은이가 1157명에 이른다.

[만물상] 서울대 '한국전쟁의 길'
이튼을 나오면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대는 따놓은 당상이다. 역대 영국 총리 중에 이튼 출신이 열여덟 명이나 있다. 그러나 단지 이런 이유만으로 이튼이 최고 명문으로 꼽혔던 것은 아니다. '더 많이 배운 만큼 더 많이 나라를 위해 몸 바친다.' 이튼에는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더없는 명예로 여기는 오랜 전통이 있다.

▶앞 세대 희생에 머리 숙일 줄 알고 그럼으로써 또 다른 자기희생의 자세를 배우게 하는 것, 그게 교육의 힘이다. 지금도 이튼의 복도에는 1차대전 때 전사한 1157명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하버드·예일·MIT 같은 미국 명문대에는 2차대전·한국전쟁·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숨진 학생들 이름을 새겨 추모하는 시설이 어김없이 있다. 우리도 6·25 때 수많은 학도병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고 전장에 뛰어들어 꽃 같은 목숨을 바쳤다. 그러나 이들의 헌신을 기리는 시설을 둔 대학은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대가 6·25에 나섰다가 전사한 동문을 기리기 위해 내년까지 '한국전쟁의 길'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서울대는 1996년 이후 두 차례 조사를 통해 6·25 때 전사한 학생 마흔여섯 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대부분 1928~30년생이다. 기계공학과, 화학공학과, 경제학과, 채광학과, 축산학과…. 전쟁이 없었으면 살아서 새 나라 일으켜 세우는 데 단단히 한몫했을 분들이다. '한국전쟁의 길'을 오가며 한 번쯤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나라 위해 몸 바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젊은 세대 모습을 떠올려 본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