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본질/교육

6월에 생각하는 '철이 든 나라'

하마사 2014. 6. 27. 14:59

나치 수용소로 자녀들 견학 보내는 유태인 부모들
거기서 철들라는 간절한 바람이 유태인 기적의 바탕

양상훈 논설주간
          양상훈 논설주간
유태인은 대단한 민족이라고 할 수 없었다. 분열돼 싸우다 제 땅에서 쫓겨났고, 히틀러에게 도살당하면서도 제대로 저항 한번 못했다. 그런 민족이 이제 인구 대비로 세계 평균의 100배에 이르는 노벨상을 탄다. 매년 창업 기업 수는 유럽 전체보다 많다. 미국 내 유태인 1인당 소득은 우리의 20배 안팎이다. 유태인식 교육이 이들을 이렇게 변모시켰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이지만, 그 교육 중 특이한 한 부분에 계속 마음이 간 것은 현충일이었던 지난 6일 미얀마에서 아웅산 순국 사절 추모비 제막식에 참석하면서다.

1983년 아웅산 묘역에서 북한의 테러 공격으로 우리 부총리 이하 각료와 수행원 등 17명이 숨졌다. 세계 외교사에 없던 충격적 사태인데도 금세 잊혔다. 젊은 세대는 '아웅산'이 뭔지도 제대로 모른다. 이런 우리와 정반대인 것이 유태인 교육이다.

이스라엘 학생 대부분이 고교를 졸업하기 전에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를 방문한다고 한다. 관광객이 아닌 유태인 학생들에겐 온몸이 떨리는 공포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다. 그 충격 속에서 많은 학생이 울음을 터뜨린다고 한다. 후유증을 겪는 학생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유태인 부모들은 자식을 그 수용소에 보낸다. 그 경험을 통해 아이가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가 제 민족이 어떤 잘못으로 무슨 고난을 당했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반성하게 된다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1998년 이스라엘 마사다 언덕에 올랐다. 2000년 전 유태인 저항군의 요새로 로마군에 함락되기 직전 1000명 가까운 사람이 모두 자결한 곳이다. 거기서 젊은 남녀 병사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원을 그리고 무언가를 다짐하는 모습을 보았다. '다시는 함락되지 않으리.' 세계 최강인 이스라엘군의 용맹은 유태인 수용소와 마사다에서 길러진 것이다. 미국에 사는 유태인들도 자식들을 마사다에 보낸다. 이유는 하나, 수난과 고통의 역사를 몸으로 느끼고 정신적으로 성숙하라는 것이다.

'공부하는 힘'을 쓴 황농문 서울대 교수는 "사무치는 경험으로 철이 든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한다"고 했다. 수재와 둔재는 누가 먼저 철이 들었느냐의 차이라고도 했다. 나라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잘못을 가르치고 배워서 철이 든 나라는 그렇지 못한 나라와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된다.

8·15는 우리에게 경축일이지만, 일본엔 패망일이다. 일본인들은 세계가 비난하는데도 8·15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 말은 하지 않아도 '8·15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에게도 일본에 당한 패망일이 있다. 8·29다. 일본 총리는 8·15에 야스쿠니를 참배하는데 우리 대통령은 8·29에 무엇을 하는가. 황후가 궁궐에서 외국 깡패들에게 능욕당하고 죽임을 당한 날(10·8)을 기억하는 국민은 얼마나 되는가. 불행히도 5년 정도 후면 세월호 사건도 다 잊힐 것이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화재, 서해훼리호 모두가 그랬다. 수난과 고통, 수치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민족은 반드시 그 역사를 되풀이한다.

아웅산 순국 사절 추모비엔 작은 틈이 있다. 폭탄 테러 현장이 그 틈을 통해 보이도록 설계됐다. 31년이 지난 지금 그 틈을 통해 실제 무엇이 보일까 궁금했다. 가서 보니 그 틈 너머엔 이제 폭음과 화염은 없었다. 짙은 초록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아침에 내린 빗방울에 햇빛이 부딪혀 반짝이고 있었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라. 나는 거기에 없다. 나는 잠들지 않는다. 나는 이제 바람, 햇빛, 빗물이다….' 윤병세 외교장관이 추도사에서 인용한 옛 시의 원문이다. 권철현 추모비 건립위원장이 순국한 열일곱 분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자 추모비 틈 너머의 햇빛과 빗방울과 바람이 '국민 여러분, 우리는 잠들지 않았습니다' 하고 답하는 것 같았다.

잠들지 않아야 한다. 우리에겐 많은 성취가 있었으나 수난과 수치도 너무나 많았다. 수난의 역사, 고통의 역사가 바람, 햇빛, 빗물처럼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보게 해야 한다. 상대를 영원히 증오하자는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나 자학하고 자괴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 아이들과 후손들이 그 속에서 국민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성숙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 각성으로 나라가 진정으로 철이 들게 되면 오욕의 역사는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는다. 유태인 못지않은 비약도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

많은 분의 집념으로 31년 만에 아웅산 현장에 세워진 추모비는 쉽게 망각하는 우리 습성에 비춰볼 때 정말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이 추모비가 '망각하는 한국인, 그래서 또 당하는 한국인'을 거부하는 상징이 됐으면 한다.

어제는 6월 25일이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침공당해 전 국토가 파괴되고 남한에서만 수십만명이 죽어야 했다. 힘과 의지가 없으면 당하고 죽는다. 그날로부터 이제 겨우 64년이 지났다.


-조선일보, 2014/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