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단독] 갑판까지 나왔다가 친구 구하러 선실로…단원고 양온유양 살신성인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던 지난 16일 오전 10시쯤 양봉진(48)씨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지인의 전화가 걸려 왔다. 경기도 안산 명성교회 관리집사여서 평소처럼 교회 서류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인이 시키는 대로 TV를 켜보니 배가 가라앉고 있었다. 단원고 2학년인 딸 온유(17)가 탄 배였다.
온유는 오전 7시쯤 엄마에게 ‘배에서 자고 일어났다’는 문자를 보내온 터다. 양씨는 곧바로 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이후 1시간 동안 몇 번인지 셀 수 없을 만큼 전화기 버튼을 눌러댔고 끝내 연결되지 않아 10시56분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온유야, 아빠다. 너를 위해 모두 기도하고 있다. 이럴 때 침착해야 하는 거야. 친구들에게도 동요하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면 구조될 거라고 용기를 주렴….’
이 문자에도 답이 없던 온유가 그때 뭘 하고 있었는지 양씨는 닷새 뒤에야 알게 됐다. 딸이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지난 20일 비통해하던 그에게 구조된 딸의 친구들이 찾아왔다.
“온유는 갑판까지 나왔다가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어요. 방에 남아 있는 친구들 구한다고.”
친구들은 양씨에게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온유는 사고 직후 갑판까지 올라왔다. 계속 갑판에 남아 있었다면 헬기로 구조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래쪽 선실에서 터져 나오는 친구들 울음소리를 듣고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다시 선실로 내려갔다고 한다.
23일 교회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양씨는 “걔는 그럴 줄 알았어. 친구들이 배 안에 있는데 그냥 나올 애가 아니어서…”라고 했다. 그는 딸에 대해 한마디씩 할 때마다 감정을 추스르느라 안간힘을 썼다. “문자를 보내면서 ‘차분히 기다리면’ 구조될 거라고 말했던 게 가장 후회됩니다. 지금 드러난 상황을 보니 어른들 믿고 기다려선 안 되는 거였는데.”
온유는 아버지, 어머니, 세 동생과 함께 교회 사택에서 지냈다. 재주가 많아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우더니 중학교에 들어가선 새벽기도 반주를 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지난해 12월부터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친구들이 학원에 가는 오후 7∼11시가 근무시간이었다. 편의점 주인은 성실하고 손님에게 상냥했던 직원으로 온유를 기억했다.
온유는 음악으로 환자를 치유하는 음악심리상담사가 되겠다며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했다. 2학년이 돼선 2반 반장을 맡았다. 지난해 1학년 학년대표였고 올해도 2학년 대표 선거를 준비했는데 친구가 출마한다는 말에 양보했다. 그러더니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도 친구를 위해 생존의 기회를 과감히 내던졌다.
영결식이 열린 22일 단원병원 장례식장에는 ‘너랑 있으면 항상 좋은 기운이 넘쳤어’ ‘천국에선 마음껏 뛰어놀아’ ‘너는 나를 기억 못할지 모르지만 나는 너를 항상 밝고 쾌활한 친구로 기억하고 있어’ 등 온유의 죽음을 애도하는 친구들의 쪽지가 가득 붙어 있었다.
빈소를 찾은 한 친구는 “온유는 주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비타민’ 같은 친구였다”고 말했다. 이웃 주민은 “제일 예쁜 친구가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 온유는 얼굴도 마음도 다 예뻤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명성교회 김홍선 담임목사도 평소 신도들에게 “온유와 얘기하면 대학교수랑 얘기하는 느낌”이라며 “참 어른스러워 배우는 게 많다”고 말하곤 했다.
온유의 빈소에는 1500명이 넘게 찾아왔다. 학교와 교회의 친구와 선후배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집안의 희망이던 큰딸을 잃었지만 부모는 오히려 조문객들을 위로하고 아직 자식을 찾지 못한 다른 실종자 가족들을 걱정했다.
지난 20일 열린 명성교회 부활절 예배는 눈물바다였다. 주보의 십일조 헌금자 명단에 온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편의점 알바로 번 돈을 쪼개 수학여행 떠나기 전 헌금한 사실이 이날 주보에 실린 것이다. 온유의 시신은 22일 발인 후 단원고와 교회를 거쳐 화장한 뒤 납골당에 안치됐다. 명성교회는 실종자와 희생자를 위해 매일 저녁 8시 기도회를 열고 있다.
안산=박요진 황인호 전수민 기자 true@kmib.co.kr
-국민일보, 201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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