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사람

'농사꾼 좌파'… 정성헌 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하마사 2014. 6. 19. 18:02

[최보식이 만난 사람 '농사꾼 좌파'… 정성헌 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요즘 정의구현사제단은 더욱 황당하고 경직돼…
공부를 안 하거나 헛한 것… 평화와 깊이로 갔어야"
"생명을 스스로 해쳐서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어렵고
설령 세상을 바꾸었다 해도 좋은 세상은 안 된다"

 

강원도 인제군 원통읍내에서 제4땅굴 방향으로 20분쯤 더 운전했다. 'DMZ평화생명동산'에 도착하자, 정성헌(68) 이사장이 내려왔다. 양복 바지에 허리띠를 볼품없이 졸라매고 운동화를 신었다.

"연간 6000여명의 교육생이 여기에 들어와요. 현재 이곳 직원은 단 7명입니다. 교육을 하면서 과실수와 채소, 약용식물을 직접 농사짓고 닭도 키웁니다."

그는 얼마 전까지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도 맡고 있었다. 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정부 직제상 차관급 예우로 관용차와 운전사, 고액의 연봉이 제공됐다. 그는 이사회를 열어 관용차를 직원용 승합차로 바꾸었다. 월급도 대중교통과 경조사 비용을 위해 200만원으로 정했다. 그는 버스를 타고 인제에서 서울을 오갔다.

그의 이력으로는 소위 좌파 진영 인사다. 고려대 재학 시절 한·일 협정 반대시위에 참여했고, 1970년대 후반부터는 가톨릭농민회 소속으로 농민운동을 했다. 지금껏 4차례 구속됐다.

정성헌 이사장은 “큰 정치인까지는 안 바라도 좋은 정치인들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성헌 이사장은 “큰 정치인까지는 안 바라도 좋은 정치인들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제=최보식기자
―여기서 무슨 교육을 시킵니까?

"평화·생명·통일·건강…. 가령 평화 교육을 할 때 사회와 세상 평화만 말하는데, 나는 자신 내면의 평화를 강조하죠. 살아보면 이념보다 실제,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중요합니다."

―사회 변혁 운동이 아닌 왜 평화 생명을 얘기합니까?

"1980년대 중반 '파쇼독재 타도'라고 투쟁할 때, 나는 '농업은 생명산업이다'라고 말해 욕을 많이 먹었어요."

―생명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유신이 나던 해(1972년), 심장에 대못이 몇 개나 박힌 것 같은 통증이 있었어요. 그 부위에 목침이나 두꺼운 책을 올려놓고 눌러줘야 잠들 수 있었어요. 한의원에 가니 '화병'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박정희 정권에 대한 분노·좌절이 뭉친 것인지 몰라요. 그때부터 '생명'에 대해 깊이 생각했어요."

―'생명운동'이라면 김지하 시인을 빼놓을 수 없는데.

"명지대생 강경대군이 숨진 뒤로 젊은 친구들의 분신자살이 이어졌을 때였어요. 당시 나는 가톨릭농민회 사무국장으로 있었는데, 지하 형이 조선일보에 쓴 '젊은 벗들,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1991년)에 공감했어요."

DMZ평화생명동산 사진
DMZ평화생명동산.
―어떻게 공감을?

"당시 재야 세력을 주축으로 장례위원회가 구성됐을 때 가톨릭농민회는 그 명단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자살은 안 된다. 생명을 스스로 해쳐 좋은 세상을 만들기 어렵고, 설령 세상을 바꾸었다 해도 좋은 세상은 안 된다'고 했지요. 분신자살한 젊은 친구들에 대해 '열사'라는 호칭도 반대했어요. 우리 성명서에는 '열사'라고 쓰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현장 취재를 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내부에서 후배들과 '열사' 호칭 문제로 토론할 때 '당장 거리에 나가서 시민들을 만나봐라. 이 중 20%가 열사에 동의하면 내 의견을 취소하겠다'고 했어요. 나는 이념이 아니라 실제로 하는 사람입니다."

이보다 앞서 그는 운동 현장을 잠시 떠나 강원도 홍천의 고등학교에서 역사 담당 교사를 20개월쯤 했다고 한다.

"내가 전교조처럼 이념 교육을 했을 거라고 짐작하지요. 교실에서는 단 한 번도 현실과 관련된 발언을 한 적이 없었어요. "

―전교조가 잘못됐다는 겁니까?

"김영삼 정권 시절 전교조를 합법화해줄 때 의견이 달랐어요. 당시 전교조 지도부에 후배들이 많이 참여했어요. 나는 '전교조 결성은 지식 노동자로서는 해도 되지만 그게 스승의 길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어요."

―왜 스승의 길이 아니라고 봤습니까?

"전교조 결성은 이론적으로 말하면 교직원들을 시장에서 상품화해서 자기 노동력을 유리하게 하려는 단결권·단체교섭권 등을 갖는 것입니다. 이들이 투쟁하는 것은 실제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서지요. 교사는 무엇보다 먼저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그게 존재 이유지요."

―전교조 교사 중에도 존경받는 스승이 왜 없겠습니까.

"인품과 실력으로 존경받는 스승이 되려면, 전교조 이상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정성헌 이사장과 최보식 선임기자 사진

―현실에서는 진보 교육감 시대가 열렸고, 이들은 대부분 전교조와 관련돼 있습니다.

"보수 후보 분열과 세월호 참사의 영향이 컸을 겁니다. 또 이쪽(진보)은 조직 운동을 해왔고 저쪽은 개인이니 사실 게임이 안 되는 거죠."

―좌파의 문제는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자기 얘기가 아니고 남의 이론을 쫓아다닙니다. 주사파도 그런 경우지요. 이들은 사람 사는 현장에서 멀어져 있어요."

―그렇다면 우파의 문제는?

"애국심을 내세우는데, 실제로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생각하지 않아요. 자기들이 먹고살려고 애국심을 방편으로 삼을 뿐이지요."

―정 선생께서는 좌파 진영에 속해 있는 게 맞지요?

"그렇죠. 하지만 나는 좌우에 대해 별 의미를 안 둡니다. 이 진영들은 제각기 한 부분에 집착합니다. 그러니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요. 자기 이념의 틀에서 보지 말고 현실을 있는 대로 보라는 거죠. '상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똑같은 사안을 놓고도 견해가 양분됩니다. 누구나 동의하는 절대적 기준의 상식이 있을까요?

"일반 사람들의 건전한 상식을 말하죠."

―정 선생께서는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했으니, 가령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고 대통령에 대해 막말하는 정의구현사제단은 상식이 있다고 보는가요?

"6·29 선언(1987년)까지 민주화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 뒤로 폭로와 투쟁보다는 평화와 깊이로 갔어야 했다고 봅니다. 함세웅 신부께 '깊이로 가야 한다'고 말한 적 있어요. 요즘 세상에서 거칠어진 영혼들을 어루만지는 것은 '깊이'입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함세웅 신부를 가장 정치적이고 이념편향적인 성직자로 봅니다.

"그분은 정의구현사제단 1세대인데 사려 분별 있고 나은 편입니다. 지금 지도부는 4세대로 넘어왔어요. 세대가 넘어오면서 황당하고 경직된 사람이 더 많아졌어요. 성숙한다는 것은 인간화를 말하는데 거꾸로 가는 것이지요."

―왜 그럴까요?

"이는 공부를 안 하거나 헛한 겁니다. 경직과 편향성은 예수와 석가모니, 공자의 가르침과도 반대되죠.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 했고, 부처는 나만 맹신적으로 따르지 말고 너 자신이 깨우쳐야 한다고 했어요. 나는 제도화된 큰 교회나 사찰을 보면 걱정이 듭니다."

―정 선생께서는 과거에 '남북문제는 김을 매다 젖 먹이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봐야 한다'고 쓴 적이 있지요. 우리가 어머니 마음이면 북한은 젖먹이입니까?

"그런 것은 아니고, 여유 있는 우리가 잘 봐주지 않으면 저쪽(북한)은 안 되는 동네다, 그런 마음으로 북한을 다뤄야 한다는 거죠."

―햇볕 정책 10년의 결과가 북한의 핵무기로 돌아왔으니, 젖 먹이는 어머니 마음이 되기 어렵지요.

"대북 정책은 무엇보다 내부의 합의를 높이고 수행을 해야 합니다. 가령 방북할 때 김대중 대통령이 이회창 대표 등을 초청해 미리 얘기해야 했어요. 다녀와서 3부 요인을 불러놓고 형식적으로 보고하는 자리 말고, '북한이 5억달러를 달라고 한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까지 솔직히 털어놓았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핵 문제가 풀리지 않고는 남북문제는 풀리기 어렵습니다.

"지금처럼 미국과 함께 북한을 목 조른다고 핵을 포기할까요. 북한은 생존을 위해 더욱 집착할 겁니다. 물론 내 말에 반론이 있을 겁니다. 햇볕 정책은 '퍼주기'라고 남한의 비판을 받지만, 북한 백성으로부터도 '고맙다'는 소리를 못 들었어요. 고맙다는 느낌이 들게 하려면, 그쪽의 처지와 심정을 이해해야 가능한 거죠. 이는 이론을 넘어선 큰 뜻과 감성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민간 부문 남북강원도협력이사장으로 1998년부터 다녀봤기 때문에 사실 조금은 압니다."

―현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봅니까?

"우리 원칙에 안 따라오면 대화를 안 하겠다는 것인데, 원칙은 지키되 융통성이 있어야 합니다. 대북 정책은 세상 이치를 좀 아는 사람이 맡아야 합니다. 관료나 학자는 정형화되어 있어요. 이들은 위에 보고할 생각이 우선이지, 일을 성사시키는 게 우선이 아니거든요."

―저도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써왔지만, 야당이나 좌파 진영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 무조건 꼬투리를 잡아 발목을 잡으려고 할 때는 기분이 씁쓸해집니다.

"몇 달 전 야당 보좌관들에게 강의하면서 '정권 교체를 하겠다는 말을 쓰지 마라. 나라를 구한다는 마음으로만 정치를 해라. 그러면 새누리당 지지자들도 찍어줄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큰 정치인까지는 안 바라도 좋은 정치인들이 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정치인'이라는 말이 낯설게 들립니다.

"야당도 대통령이나 정부가 잘하면 '잘한다'고 했으면 좋겠어요. 자신들도 못 하면서 너무 이상적인 것을 내세우지 말고요. 대통령도 조건을 달지 말고 야당 사람들을 만났으면 합니다. 만나서 진지하게 얘기하면 방법이 나옵니다."

―또 인사청문회가 열릴 텐데, 의원들이 스스로 지고지선한 양 후보자들의 허물에 대해 크게 꾸짖는 광경은 마치 비현실적인 연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눈감아주고 봐주기를 하지 않아요. 봐줄 것은 봐주고 안 봐줄 것은 안 봐주는 게 '중도'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남에게 너무 빡빡하게 굴면 안 됩니다. 그건 자기 마음을 강퍅하게 해요."

―어떨 때는 너무 쉽게 봐줘서 우리 사회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요.

"공공선(善)을 위해서 봐주는 게 봐주는 것이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그러면 그건 봐주는 게 아닙니다."

 

-조선일보, 2014/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