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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교수-"입만 열면 거룩한 소리를 해왔으니… 성직자는 자신에게 더 엄격해야"

하마사 2013. 11. 25. 07:36

['국정원 댓글 수사' 윤석열 팀장 징계한… '시대의 도덕 교사' 손봉호 대검감찰위원장]
"윤석열 팀장 중징계 놓고 찬성과 반대 5:2로 나뉘어
소수이지만 반대 의견 강해… 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내가 손해 볼 사안에 대해 부탁을 해오면 거절 못 해…
스스로에게 '대한민국 윤리는 네가 다 책임지느냐'며 비웃어"

"2004년 대검 감찰위원회가 발족될 때부터 위원장을 맡았다. 감찰위원은 모두 7명이다. 해마다 새로 교체되는데 웬일인지 나만 9년째 안 바뀌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윤석열 수사팀장 징계 회의를 주재했던 손봉호(75) 대검감찰위원장이 '깐깐한 도덕 교사' 같던 바로 손봉호 교수인 줄은 몰랐다. 그는 매사에 윤리와 원칙을 따지고, 특히 기독교계를 향해 입바른 소리를 해온 인물이다.

하지만 '조영곤 지검장 무혐의·윤석열 팀장 중징계'라는 감찰 결과는 정치적 쟁점이 됐다. 일각에서는 '편파 감찰'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손봉호 대검감찰위원장은 “윤석열 팀장 중징계가 지혜로운 결론이었는지 개인적으로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손봉호 대검감찰위원장은 “윤석열 팀장 중징계가 지혜로운 결론이었는지 개인적으로 아쉬움은 있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한 야당 의원은 검찰의 사전 각본대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징계 회의가 열리기 전 검찰에서 '조영곤 무혐의'라는 의견서를 나눠줬다는데?

"사실이 아니다. 회의를 할 때면 감찰 대상자들에 대한 검찰의 조사 자료가 배부된다. 자료철의 끝 부분에는 검찰의 의견을 개진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의견도 제시되지 않았다. 우리 위원 중 한 분이 '왜 검찰 의견이 없나'고 물어봤을 정도다. 검찰도 정치적 논란에 말리는 걸 피하려 했던 것 같다."

―내가 취재한 바로는 윤 팀장의 중징계를 놓고 감찰위원들 간에 찬반이 5:2로 나뉘었다는데.

"내부 논의 과정을 말하는 게 그렇지만…. 그건 사실이다. 지금껏 감찰위원회에 올라오는 안건은 검사 개인의 금품 수수나 비리 의혹 같은 것들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윤 팀장은 경우 보고 규정을 어긴 것은 심각한 문제였지만, '보고를 안 해야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겠다'는 판단도 크게 나무랄 수 없었다. 그 의도가 파렴치하거나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시간을 오래 끌었고 위원들 간에 의견이 대립됐다."

―두 차례 회의가 열렸지만 결론을 못 내렸다고 들었다.

"소수이지만 반대 의견이 강해, 감찰위원장으로서 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감찰위원회 발족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결국 검찰 쪽 참석자가 '위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참고해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검찰의 발표 내용은 우리 위원들의 다수 의견을 따른 것이다."

―'야당 도울 일 있느냐'며 수사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조영곤 지검장에 대한 징계는 논의가 안 됐나?

"검찰 참석자에게 이 대목에 대해 수차례 질문했다. 검찰의 조사 자료에는 '그런 혐의를 찾을 수 없었다'고 되어 있었다. 우리는 자료와 답변을 근거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위원 중에는 '조 지검장에게 주의를 주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혐의가 없다는데 그럴 수 없었다."

최보식 선임기자와 손봉호 대검감찰위원장 사진

―조영곤 지검장이나 윤석열 팀장을 불러 직접 들어봤나?

"감찰위원회는 자문기구여서 직접 조사할 권한은 없다."

―윤석열 팀장 중징계가 발표되자, 야권에서는 '검찰을 못 믿겠다'며 특검을 들고 나와 정국이 더 경색됐다.

"중징계가 지혜로운 결론이었는지 개인적으로 아쉬움은 있다. 그로 인해 조영곤 지검장도 부담을 느껴 사표를 쓰게 됐으니 말이다. 아직 법무부 징계위원회의 최종 결론이 남아 있다."

손봉호 위원장이 살아온 삶을 보면, 적어도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는 지금도 밀알복지재단,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샘물호스피스, 나눔과 기쁨, 푸른아시아, 나눔국민운동본부 등에서 '공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회단체들이 아니다. 이름을 빌려달라고 하니까, 어찌 하다 보니 이사장 직책만 12개가 되고 여러 단체에서 이사도 맡고 있다."

―혹시 감투 욕심이 심한 게 아닌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해야 감투인데…. 돈·권력·명예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내 돈과 시간을 쓰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자제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손해를 봐야 할 사안에 대해 부탁을 해오면 '노(No)'를 잘 못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헌신하라 봉사하라'고 하면서 막상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중적이지 않으냐. 어떨 때는 '대한민국 윤리는 네가 다 책임지느냐'며 내 어리석음을 스스로 비웃는다."

종교가 힘센 우리 사회에서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교계의 타락을 정면으로 비판해왔다. "개신교 역사상 지금 한국의 교회만큼 타락한 교회는 없었다" "교회 세습은 망조가 들린 것" "성직자는 돈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가치에 매달려서 안 된다"…. 순복음교회나 사랑의교회 등 대형 교회와는 늘 불화 관계였다.

―선생을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혼자만 잘났느냐'는 말은 듣지 않나?

"일부 대형 교회에서는 나를 보고 심지어 '사탄'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움츠러든 적이 없다. 교회가 많은 사람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칠 때 누군가는 지적해야 하는 것이다."

―언론인 직업도 비슷하지만, 남에 대해 비판할 때 먼저 자신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제일 고민하는 대목이다. 나는 개인 문제나 소소한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공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것,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사안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말하지 않을 때만 말한다. 가령 사랑의교회 A목사(박사 논문 표절 논란)는 평소 내게 예의를 지키고 후원해줬다. 친분을 생각하면 비판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한국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침묵할 수 없었다."

―그분 입장에서 불가피한 상황이 있었을 것이라고 이해할 수는 없었는가?

"정치가나 기업인이 거짓말했다면 비판하지 않는다. 성직자나 교육자는 그러면 안 된다."

―무엇이 다른가?

"이들은 입만 열면 거룩한 소리를 해왔다. 도덕성으로 영향력을 갖기에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야 한다. 이들의 거짓에 사람들은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냉소한다. 이런 냉소주의는 심각한 사회적 병이 된다. 기독교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게 회개(悔改)다. 그분이 목사직을 사임하겠다고 했으면 나는 제1의 지지자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신도는 여전히 그를 예전처럼 따르고 있지 않는가?

"한국 기독교가 그만큼 병이 들었다는 것이다."

―종교도 세상 속에 있는 만큼, 세속적 욕망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돈과 권력은 세속적 욕망이다. 이런 하급 가치의 특징은 한 사람이 많이 가지면 다른 사람이 적게 갖게 되는 것이다. 돈은 개인적으로 수양이 됐든 안 됐든 누구나 다 추구한다.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경쟁한다. 반면 사랑·자비·지혜 같은 상급 가치는 자신이 아무리 가져도 다른 사람이 손해 보지 않는다. 종교는 하급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어도 억누르려고 노력해야 한다. 대형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싸우는 꼴을 보면 정말 가관이다. 종교의 존재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예수와 석가가 돈을 추구했는가."

―선생은 종교인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입장인데, 대다수 종교인은 '우리가 돈벌이를 하느냐'며 세금 납부에 반대한다.

"종교인은 그동안 세금을 안 내봐서 소득이 면세점(免稅点) 이하면 안 내도 된다는 걸 모른다. 개신교 목사의 70~80%는 소득이 적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봉급을 엄청나게 많이 받고 운전사가 딸린 승용차를 타고 국민 세금으로 만든 도로를 다니면서 세금을 안 내겠다는 것은 도둑과 다름없다. 우리나라는 신정(神政) 국가가 아니다."

―선생께선 어떤 교회에 다니나?

"장애인들이 많이 나오는 작은 교회다. 주말에 학교 강당을 빌려 운영한다."

―왜 본인은 성직자가 되지 않았나?

"내가 생각하는 성직자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삶의 태도는 언제 형성된 것인가?

"선친은 경북 시골의 유학자였다. 나는 중학생 시절 처음 교회에 나갔다. 그때 교회 목사님이 엄격했다. 이분은 내가 목사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이분처럼 살 자신이 없었다. 집안 반대도 심했다. 이분은 '그러면 신학교 교수가 되라. 단 교회는 가난하니까 월급은 받지 마라'고 했다. 그 말씀대로 내가 다른 교회에서 설교하면 받은 강사료는 모두 기부를 해왔다."

―세상을 살아보면 올바른 사람보다, 인간관계에서 좋은 사람이 더 높이 평가받는다.

"우리 속담에도 '맑은 물에 고기 못 산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했다. 개인으로는 그렇게 사는 것이 좋지만, 우리가 정의에 어긋나고 옳지 않은 것과 타협하면 결국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다. 비윤리적인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이 사회에는 성인군자만 사는 것도 아니고, 너무 도덕을 요구하면 인간의 본성에서도 멀어진다. 사람은 거짓말하고 간혹 부정을 저지르기도 하는 존재가 아닌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 혼자 타락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윤리(倫理)는 다른 사람에게 직·간접으로 해가 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다. 소위 '피해자를 위한 윤리'다. 가령 뇌물이 일상화되면 뇌물을 못 주는 사람이나 그런 능력이 없는 사람이 피해자가 된다."

―이런 선생에 대해 '당신은 과연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느냐'고 묻는 이는 없는가?

"그게 고민이고 나 스스로 묻기도 했다. 어떤 분이 '당신도 위선자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내 마음이 늘 순결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부당한 이득을 위해 거짓말하지는 않았다."

―선생은 얼마 전 유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서약을 했다. 사회에 환원할 만큼 재산이 넉넉한가?

"환원할 유산이 충분히 있다. 돈에 여유를 가지려면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많이 벌든가, 아니면 적게 쓰면 된다. 나는 적게 써왔다. 물론 자녀가 먹고살 수 없다면 유산을 나눠줘야 한다."

―평생 '공자님 말씀'을 하시니 가족에게 고리타분하다는 소리는 안 듣나?

"내 딸의 친구가 '너희 아버지 밑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내가 그렇게 재미없는 사람은 아니다. 유머도 잘하는 편이다."

☞손봉호 교수는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군입대 신체검사에서 몸무게가 1㎏ 미달이었지만 군의관에게 부탁해 현역 입대. 국비 유학 시험에 합격해 미국과 네덜란드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 귀국한 직후 야간학교 설립. 그 뒤로 ‘도덕성’ 회복을 위한 사회 활동에 주력. 동덕여대 총장 역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및 고신대 석좌교수.

 

-조선일보 최보식이 만난 사람, 2013/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