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사람

초롱이 이영표 선수

하마사 2013. 10. 25. 09:39

브라질 축구 스타 호나우두는 1994~2006년 네 차례 월드컵에 나가 열다섯 골을 넣었다. 그는 현란한 '헛다리 짚기(stepover)'로 수비수를 제친 뒤 강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헛다리 짚기는 한쪽 발로 공을 몰고 가는 척하다 일부러 헛발을 내지르면서 다른 쪽 발로 공을 치고 나가는 드리블 속임수다. 호나우두는 주로 오른발로 헛다리를 짚고 벼락 치듯 왼발로 공을 몰았다. 상체를 크게 흔들어 수비수를 속였다. 무게중심은 늘 진행 방향에 둬 수비수를 쉽게 따돌렸다.

▶한국 축구에선 이영표가 헛다리 짚기의 달인이다. 윙백을 맡아 측면을 파고들면서 헛다리 짚기로 수비수를 제쳤다. 호나우두의 드리블과는 좀 달랐다. 호나우두는 폭풍 질주를 이용한 탄력으로 단 한 차례 헛다리 짚기를 했다. 이영표는 주로 공을 다리 사이에 놓고 헛다리를 짚었다. 두세 차례 거듭해 상대를 혼란에 빠뜨렸다. 수비수를 제친 뒤 정확하게 크로스 패스를 하는 게 이영표식 축구였다.


	[만물상] '초롱이' 이영표
▶이영표의 헛다리 짚기는 유럽 무대에서도 찬사를 받았다. 2005년 그가 속한 에인트호번이 유럽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AC밀란과 맞붙었다. 그는 브라질이 자랑하는 수비수 카푸를 헛다리 짚기로 속이고 크로스를 날렸다. 동료가 머리로 들이받아 골을 넣었다. 그 장면 덕분에 이영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눈길을 끌었다. 그를 영입한 토트넘의 마틴 욜 감독은 "이영표가 유럽 최고 왼쪽 윙백"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영표는 중학교 선수 시절부터 드리블을 갈고 닦았다. 체격이 작은 데다 슈팅력이 떨어지는 결점을 드리블로 보완하려 했다. 복숭아뼈 밑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연습을 했다. 그렇게 땀 흘린 덕분에 1996년 국가대표에 뽑혔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비롯해 A매치에 127차례 나간 뒤 2년 전 대표팀을 떠났다. 그 뒤론 미국 프로축구에서 뛰었다. 서른여섯 살 이영표가 그제 은퇴를 선언했다.

이영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경기장 안팎에서 변함없이 성실하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라운드에선 반짝이는 눈빛으로 두뇌 플레이를 펼쳐 '초롱이'로 불렸다. 그는 후배들에게 "유럽 선수들도 기술보다 멘털을 중시한다"며 정신력을 강조해 왔다. 스무 해 넘는 축구 인생에서 헛다리 짚지 않고 묵묵히 외길만 달려온 스타였다. 그의 헛다리 짚기를 더 볼 수 없다고 하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스포츠 마케터로 제2의 인생에 들어선 초롱이. 지금껏 수비수만 해 왔으니 인생 게임에선 득점왕에 도전해보기 바란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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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감동적인 은퇴 경기]

득점왕 후보에게 페널티킥 양보, 골 넣은 동료 무릎 꿇고 공 바쳐
구단은 특별히 주장 완장 건네… 팬들은 태극기 등 흔들며 환호

28일(한국 시각) 캐나다 밴쿠버의 BC 플레이스 스타디움. MLS(북미프로축구) 밴쿠버 화이트캡스가 콜로라도 래피즈를 상대로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벌이고 있었다. 전반 43분 콜로라도의 반칙으로 휘슬이 울리자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Y.P LEE!"를 일제히 연호했다.

이날 게임은 올 시즌을 끝으로 14년간 프로 현역 생활을 마감하는 이영표(36·밴쿠버)의 은퇴 경기였다. 홈팬들은 밴쿠버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이날 은퇴하는 'Y.P(이영표의 영어 이름)'가 차길 원했다. 하지만 이영표는 팀의 골잡이 카밀로 산베조(25·브라질)에게 킥을 양보했다. 카밀로가 리그 득점왕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기 때문이었다.


	이영표가 28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MLS(북미프로축구) 콜로라도 래피즈와 벌인 경기에서 교체 사인이 나오자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며 웃고 있다. 이영표는 이 경기를 끝으로 28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영표가 28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MLS(북미프로축구) 콜로라도 래피즈와 벌인 경기에서 교체 사인이 나오자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며 웃고 있다. 이영표는 이 경기를 끝으로 28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AP 뉴시스

2010년 K리그 경남에서 뛰기도 했던 카밀로는 시원하게 골망을 갈랐다. 그리고는 공을 들고 뛰어가 이영표에게 공손하게 전달한 뒤 그 앞에서 무릎을 꿇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이 둘을 동료들이 얼싸안았다.

이날 콜로라도전은 사실상 이영표를 위한 헌정 경기였다. 2009년 창단한 밴쿠버 구단은 팀 역사상 가장 명성이 높은 선수인 이영표의 은퇴에 깍듯한 예우를 갖췄다. 이번 콜로라도전 티켓에 이영표의 얼굴을 인쇄한 밴쿠버는 스타디움 전광판에 'Thank you, Y.P'라는 문구와 함께 한글로 '이영표 선수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띄웠다.

팬들도 떠나는 영웅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관중석엔 이영표의 얼굴이 그려진 대형 태극기가 등장했고, 이영표를 응원하는 플래카드도 곳곳에서 물결쳤다.


	2002 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 당시 루이스 피구와 공을 다투는 모습
2002 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 당시 루이스 피구와 공을 다투는 모습. /AP

 

 

 

 

 

 

 

 

 

 

 

 

 

 

 

 

 

 

후반 추가 시간이 되자 마틴 레니(38·스코틀랜드) 밴쿠버 감독이 이영표에게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할 시간을 마련해줬다. 교체 사인이 나오자 홈관중은 일제히 일어나 이영표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는 이날 특별히 찼던 주장 완장을 건네준 뒤 팬들에게 박수로 화답하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경기 결과는 밴쿠버의 3대0 승리. 한국 축구를 대표했던 수비수 이영표는 현역 마지막 경기를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이영표의 페널티킥 양보를 받은 카밀로는 이날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22골로 마이크 매기(시카고·21골)를 제치고 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이영표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상상해왔던 은퇴 장면"이라며 "좋은 구단에서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은퇴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그라운드에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영민한 플레이를 펼쳐 '초롱이'란 별명을 얻은 이영표는 한국이 배출한 세계 정상급 측면 수비수다. 2002 한·일월드컵과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왼쪽 풀백으로 맹활약하며 각각 한국의 4강행과 원정 첫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A매치 출전 기록(127경기 5골)은 국내 선수로는 홍명보(136경기)·이운재(132경기)에 이어 셋째로 많다.

프로 무대에서도 네덜란드·잉글랜드·북미 리그를 두루 거치며 성공적인 선수 경력을 쌓았다. 당분간 밴쿠버에서 머물며 스포츠 마케팅 공부를 할 예정인 이영표는 "한국에서의 지도자 생활은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영표

▲출생:
1977년 4월 23일 강원 홍천

▲학력: 안양초-안양중-안양공고-건국대

▲프로 경력
2000~2002 안양 LG, 2003~2005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2005~2008 잉글랜드 토트넘, 2008~2009 독일 도르트문트, 2009~2011 사우디 알 힐랄, 2012~2013 캐나다 밴쿠버

▲대표 경력 (A매치 127경기 5골)
2002·2006·2010 월드컵, 2000·2004·2011 아시안컵, 2000 올림픽, 2002 아시안게임 

 

-조선일보, 201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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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표 "축구인생 거짓 없기에 은퇴 홀가분"

 

이영표(36)가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소감을 밝혔다.

이영표는 14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뒤로 하고 은퇴를 하려니 가슴이 아프다. 언젠가 팬들께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나 때문에 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정정당당한 패배 앞에서 비겁한 변명으로 패한 적도 있었다. 한국 축구에 쓴소리를 한 적도 있었다"며 "주변국들의 성장세를 바라보며 한국 축구의 성장을 이야기해야 겠다는 책임감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27년 간 선수생활을 하며 경기장 바깥에서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수고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다"며 "많은 이들에게 도움만 받았다는 점에서 부끄러움을 느낌과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영표는 "나 자신의 즐거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고는 태극마크를 달고 애국가를 부르는 순간 사라졌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던 127경기는 영원히 간직하겠다"며 "은퇴는 아쉽지만, 축구인생에 거짓은 없었기에 홀가분하다. 지금껏 함께 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도 활약할 수 있을 듯 한데 은퇴에 아쉽진 않은 지
-은퇴 준비를 5~6년 전부터 했다. 처음에 은퇴를 생각할 때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계속 긴 시간 동안 고민하고 준비하다보니 막상 은퇴를 말할 때 주변 분들이 아쉬워 하시더라. 고마운 부분이다. 웃으며 은퇴를 할 수 있게 되어 만족스럽다. 가족들은 많이 아쉬워했지만, 아내는 나와 함께 예전부터 은퇴를 준비했다. 서로 수고했다고 말했다.

▶27년 간의 축구인생 중 최고의 경기와 기억에 남는 경기는

-한 경기를 꼽기 너무나 어렵다. 한 경기를 꼽는 것은 다른 경기를 무시하는 것이고, 미안한 일이다. 가슴 깊이 감사하게 느끼는 것은 대표팀 경기를 할 때마다 축구라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즐거움이나 스포츠가 아닌 한 국가를 위해 뛰는 게 얼마나 의미있고 가치 있는 일인지 느끼게 됐다. 대표팀 경기를 할 때 가장 기뻤다.

▶다시 돌아간다면 바꾸고 싶은 순간은

-특별히 아쉬운 순간은 없었다고 본다. 굳이 꼽자면 2010년 남아공월드컵 전 일본과의 친선경기서 2대0이 아닌 5대0으로 이기지 못한 것이다(웃음). 일본과의 맞대결 중 4무가 있는데, 4무도 아쉽다.

▶행정가 수업에 앞서 해설이나 다른 제의가 온다면 받아들일 생각은 있는가

-은퇴를 발표한 지 11일 밖에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지 시간을 갖고 고민할 생각이다.

▶27년 인생을 돌아볼 때 축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나 순간은
-그런 기억들이 몇 번 있었다. 첫 번째는 2002년 한-일월드컵 준비 기간 많은 훈련을 하고 강팀과 경기하며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월드컵 뒤 PSV에 입단해 3년 간 뛰면서 그동안 몰랐던 유럽축구를 이해하고 실제로 경기를 한 것에서 또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생 선배로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은
-대표팀이나 프로 무대에서 뛰는 후배들이 잘 하고 있는 만큼 특별히 당부할 만한 말은 없다. 굳이 한 마디 한다면, 좋은 선수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된다면 좋은 선수가 되는 것은 훨씬 더 쉬운 일일 것이라는 거다.

 

▶본인을 그리워 하는 이들에게 시간이 지나면 해주고 싶은 말은
-내가 은퇴를 준비할 때 생각했던 부분 중 '은퇴를 선언하면 나를 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적응이 된 만큼 시간이 흐른 뒤 나를 기억할 지 궁금증은 든다. 누군가 나를 기억해준다면 축구를 즐겼던 선수로, 많은 이들과 축구를 즐겼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그렇게 기억해주신다면 가장 행복할 듯 하다.

 

▶대표팀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강한 듯 하다. 캐나다에서 대표팀 경기를 봤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캐나다에서도 대표팀 경기를 봤다.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에 기분이 좋았다.

 

▶홍명보 감독은 한-일월드컵 때 주장으로 함께 뛰었다. 감독으로 변신한 뒤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선배다. 대표팀에서 생각해왔던 한국 축구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수비에 대한 철학이 너무나 분명했다. 한국 축구가 올바르게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됐다. 내가 알고 있는 홍 감독의 모습처럼 대표팀도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내년 브라질월드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오래 전부터 은퇴를 고민했다고 했는데 왜 지금인지, K-리그에서 마지막을 정리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지
-시기가 언제가 좋을까라고 고민했는데, 6년이 가장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축구도 좋지만 하고 싶은 일도 있었다. 항상 두 가지가 충돌했다.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라고 봤다. 체력적인 문제가 있기는 했다. 동료들은 지난 시즌부터 왜 은퇴하려고 하냐고 말했지만, 나는 내 자신의 문제를 알고 있었다. 동료들은 알지 못했다. 동료가 체력적인 문제가 있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봤다. 내가 느낄 때 은퇴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K-리그에서 뛰고 싶은 마음은 분명히 있었다. 외국에서 뛰고 국내에서 마무리를 하는 게 분명 의미가 있다고 봤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런 문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해외에서 뛰고 있는 많은 선수들을 만났을 때 K-리그에서 은퇴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말해줬고, 그렇게 말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고 싶은가.
-축구선수로 훌륭한 선수는 아니었다고 본다(웃음). 축구 선수로 점수는 80점인 것 같다. 축구를 즐기고 즐거워 했다는 부분에선 100점인 것 같다.


▶은퇴를 앞두고 눈물도 보이지 않는데, 눈물을 보인 기억은 없나
-은퇴를 준비하는 내내 혼자 많이 울었다. 아쉬움의 눈물은 아니다. 너무나 감사해서 흘린 눈물이었다. 과거를 돌아볼 때 너무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혼자 있을 때 눈물이 나더라. 이전에 울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울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도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할 것인가
-되도록 미래의 일을 이야기 하지 않으려 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 변할 수도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해야겠다고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은 있다. 당연히 축구에 대한 부분이다. 축구 안에서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부분이라면 더 많이 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 아직 모르는 게 많아 더 공부할 생각이다. 앞으로 2~3년 동안 모르는 것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은퇴하게 되면서 안하게 되어 너무 좋은 게 있다면
-매일 같이 찾아오는 육신의 고통에서 자유롭게 된 것이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면서 오는 부분에 대한 고통이 지금은 만성이 되어 극복할 수 있지만,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까진 선택권이 없었지만, 이제는 피할 수 있게 되어 상당히 기쁘게 생각한다.

▶한국 축구가 브라질로 가는 상당히 중요한 기간이다. 후배들의 플레이 중 아쉬운 부분이나 개선책이 있다면
-대표팀에 관해서 가장 잘 아시는 분은 홍 감독님이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굳이 대표팀에 대해 코멘트하는 게 적절친 않다. 마음 속에 아쉬움과 보완점은 생각하고 있으나, 내가 느끼고 있는 부분은 대표팀 감독이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언급하는 게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스위스전에서 은퇴식을 하게 됐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 스위스전을 치러 본 경험이 있는데, 어떤 경기를 했으면 좋겠는가
-스위스와 한국의 경기 스타일이 매우 흡사하다. 움직임이나 정신적인 부분이 비슷한 스타일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 지 예측하기 힘들다. 아마 우리와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경기하는 팀을 어떻게 공략하는 지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경기도 중요하지만, 경기를 통해 알게 되는 부분도 중요하다.

▶제2의 이영표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후배 중 나와 비슷한 길을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수는
-언론에서 긴 시간동안 왼쪽 풀백 자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안다. 많은 선수들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다른 포지션보다 왼쪽에 유독 좋은 선수들이 많아 한 선수를 꼽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만족할 만한 선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보다는, 왼쪽에 유독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와 경쟁이 치열하다는 말을 해주길 바란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조선일보, 2013/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