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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승철 '청년 이승철'이 버스커버스커·허각 등과 붙었다면… 당연히 제가 이겼겠죠 후훗

하마사 2013. 11. 23. 21:00

슈퍼스타K 시즌 1~5 내내 심사위원 자리지킨 이승철
대마초·표절·음주운전 등 숱한 위기… 좋은 노래 부르니, 다 잊히더군요

존재감 있어야 스타
허각, 가장 존재감이 컸죠… 로이킴 등도 타고난 친구
연예인 느낌나게 도와준다? 독기품고 스스로 빛 발해야

이승철의 슈퍼스타K는
역대 우승자 중엔 없어요, 작년 준우승한 딕펑스가 가장 힘든 상대 아니었을까

슈퍼스타K5 역대 최악
13세 재원이 등 스타 재목들 아쉽게도 줄줄이 떨어지며 대중 관심 멀어져 흥행 실패

오디션, 한국사회 축소판
보수·진보 쏠림 심하듯, 시청률이 떨어지니 실력과 무관한 인기투표화…
골수팬들만 남아 몰표 던져

데뷔 28년, 콘서트 2000번
끊임없이 장르 바꿔가며 변신한 게 롱런의 비결
그래미賞 무대 서고싶은데 영어공부 안한게 후회돼요

이승철 독설의 핵심 메시지는 ‘재능이 없다면 가수할 생각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승철 독설의 핵심 메시지는 ‘재능이 없다면 가수할 생각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타고나지 않으면 만들어진 가수가 될 수는 있어도, 홀로 설 수도 롱런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글라스로 눈빛을 가린 이승철의 포커페이스는 그 자체로 독설의 에너지를 풍겼다. /김연정 객원기자
이승철(47)이 선글라스를 끼고 앞에 섰다. 그 모습만으로도 "가수로서 재능이 없네요. 노래하지 마세요!"라는 독설을 뿜어내는 듯했다.

열아홉 살이던 1985년 '희야'로 데뷔한 이래 그는 무대를 떠난 적이 없었다. 2000번이 넘는 콘서트와 앨범 11장 그리고 수십개의 히트곡. 절창(絶唱) 이승철에게 대중은 '보컬의 신(神)'이라는 견장을 달아줬다. 그런 이승철은 지난 5년간 대중과 무대의 경계에 서 있었다. '슈퍼스타K' 심사위원이라는 자리. '그 누구든 딱 두 소절만 들으면 타고난 가수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단언하는 그는 냉혹하고 직설적인 심사평으로 '독설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의 독설에 대중은 심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슈퍼스타K 첫해 그의 미니홈피엔 악플 1만5000개가 달렸다. 그러나 지금 슈퍼스타K 참가자들은 '이승철 심사위원 앞에서 내 실력을 평가받고 싶다'고 도전 이유를 밝힌다. 그의 심사는 독하지만 공정하고 정확했다. 다른 심사위원이 탈락을 주장한 그룹 '버스커버스커'의 대박을 예견할 만큼 한발 앞선 안목도 돋보였다.

슈퍼스타K는 담당 PD와 심사위원들이 바뀌었다. 유사한 오디션 프로그램 여러 개가 명멸했다. 이승철만이 오디션 열풍의 와중에 한 자리를 지켰다. 연인원 805만명의 도전자 가운데 대중은 허각·울랄라세션·버스커버스커·로이킴 등을 선택했다. 이승철의 마음속 슈퍼스타K는 누구일까. '대중의 귀'는 그의 귀와 얼마나 달랐을까? 한남동 그의 자택 거실에서 이승철을 만났다.

◇"슈퍼스타K 나왔다면 우승했을 것"

이승철은 슈퍼스타K 심사위원이 된 뒤 한 인터뷰에서 "내가 가수 지망생이라면 무조건 오디션에 참가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19세 이승철이 허각·울랄라세션·버스커버스커·로이킴과 붙었다면?

그가 씩 웃었다. "제가 이겼을 걸요?"

―당연히 우승했다는 뜻?

역시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말했다. "이겼을걸요?"

―누가 가장 힘든 상대일까요?

"솔로보다는 그룹이 버겁겠죠."

슈퍼스타K를 대표하는 그룹은 울랄라세션. 이승철이 '어린 이승철'을 위협할 가장 강력한 상대로 꼽은 건 그러나 '딕펑스'라는 그룹이었다. 홍대 앞 언더그라운드 밴드로 이름을 날렸던 딕펑스는 슈퍼스타K4에서 최종 결승에 올라 로이킴에 이어 준우승을 했다.

"딕펑스는 대중적 감각을 가진 친구들이에요. 허각은 대중적 감각보다는 마음을 움직이는 스타일이고, 버스커버스커는 현장 공연이 압도적이라기보다는 앨범이 강한 스타일이니까. 울랄라세션은 저와는 장르가 전혀 다르잖아요. 현장에서는 딕펑스 같은 그룹이 폭발적인 연주를 하면서 진하게 노래를 하면 감동을 주니까 쉽지 않은 상대가 되겠죠."

―전인권·임재범·김현식처럼 개성 강한 도전자들이라면 탈락하지 않을까요?

"그건 아니에요. 슈퍼스타K에 통하는 스타일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본인 스스로 보여줘야 해요. 존재감이 드러나야 한다는 거죠. 그건 심사위원이나 제작진이 찾아주는 게 아니에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존재감이 없으면 스타가 될 수 없어요."

―1회부터 5회까지 모두 지켜본 심사위원 이승철 마음속의 슈퍼스타K는?

"하하. 그건 말 못해요."

―역대 우승자 중의 한 명인가요?

"우승자 중에는 없어요."

―탈락을 아쉬워한 몇몇 참가자들이 있었는데?

"아까운 친구는 많죠. 작년 톱10에 들었다가 탈락했던 이지혜도 그렇죠. 안 좋은 이미지로 오해를 받았지만 실제 그런 친구가 아니거든요. 저는 여러 가지 스타성을 보는데 외모도 몸매도 뛰어났고 노래도 보통 잘하는 친구가 아니었어요. 올해도 13세 김재원이라는 친구가 톱10까지 올라갈 줄 알았어요. 호흡과 감정 조절 등 노래를 하는 기술이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으면 그렇게 못 해요. 기술적으로 역대 참가자 중 가장 나아요."

―그렇다면 열세 살 소년이 이승철 마음속의 슈퍼스타K인가요?

"아뇨. 우승은 모르죠. 저는요 우승자를 노래로만 보지는 않아요. 재원이는 뚱뚱했어요. 그런 모습으로는 스타가 될 수는 없는 거거든요."

이승철은 "일류는 자신은 무심하게 부르지만 듣는 이는 감동하고, 이류는 부르는 이와 듣는 이가 같이 감동하고, 삼류는 부르는 이 저 혼자 감동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작년 슈퍼스타K4 준우승 딕펑스.
작년 슈퍼스타K4 준우승 딕펑스.
―슈퍼스타K 톱10에 들 정도면 일류라고 할 수 있나요?

“일류는 프로 가수들의 세계에서도 듣기 힘들죠. 톱10에 들면 일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일류에 가장 근접한 우승자는 누구였죠?

“일류의 잣대는 정말 다양해요. 그보다는 스타로서의 존재감으로 표현하는 게 낫겠죠.”

―존재감이 가장 컸던 건?

“허각이죠. 존재감이 컸죠. 기본적으로 노래를 잘하니까. 그리고 로이킴·버스커버스커도 좋았죠. 음악 하는 운명으로 간다는 게 드러나는 친구들이죠.”

―역대 우승자 중 처음 딱 봤을 때 우승을 예상한 경우는 있었나요?

“없어요. 처음에 봤을 때는 다 아마추어죠. 단번에 그런 감이 오는 친구는 없어요.”

◇오디션도 우리 사회처럼 ‘골수 쏠림’ 심해지는 느낌

―슈퍼스타K에 800만명이 넘게 몰렸어요. 왜 그렇게들 가수가 되고 싶어할까요?

“도전을 즐기는 것 아닐까요. 참가자들을 보면 대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고 당락에 상관없이 그런 시도에 자긍심을 느끼는 분들이에요. 다만 심사위원들 입장에선 힘들죠. 오디션할 때 하루 7시간 정도 앉아 있어요. 가장 힘든 게 뭔지 아세요. 노래 못 부르는 사람 노래 듣는 거예요. 그것도 노래방도 아니고 진지하게 심사를 해야 하니까.”

―다들 ‘대한민국에 노래 잘하는 사람 정말 많다’고들 놀라요.

“동네 조기축구회에 가보세요. 축구 잘하는 사람들 많아요. 하지만 국가대표들이 보기에는 미미한 수준이죠. 일반인들이 보기에 잘하는 것이죠. 그냥 감탄을 자아내는 수준들이죠.”

―시청자 눈에는 다들 가수 같아 보이는데요.

“감탄을 주는 노래와 감동을 주는 노래의 차이죠. 감탄은 기교적으로 많이 올라가고 관객의 함성을 많이 끌어낼 수 있는 노래죠. 하지만 보컬이 노래는 좀 못하고 음정은 좀 안 맞더라도 가슴으로 느낌을 잘 전달할 수 있는 것, 그게 감동을 주는 노래예요. 그걸 부르는 사람은 가짜가 없죠. 감탄을 주는 사람은 가짜가 많죠. 존 레넌이 노래를 잘하나요? 독특하잖아요. 그 세계가.”

―슈퍼스타K5는 결승 진출자들의 실력 면에서 역대 최악이라는 평갑니다. 좋은 원석들은 나올 만큼 다 나온 것 아닌가요?

“이번에도 198만명이 왔어요. 잘하는 친구들이 여전히 많다는 건 변함없어요. 다만 좋은 친구들이 아쉽게도 중간에 다 사라졌어요. (제작진이) 그런 친구들이 어이없이 탈락하는 일이 없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심사위원을 하면서 대중에 대해 새롭게 깨달은 점이 있나요?

“대중의 군중심리죠. 우리나라가 보수·진보로 나뉘어 한쪽으로 쏠림 현상이 점점 심해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슈퍼스타K도 그런 현상이 심해지는 것 같아요. 오디션은 시청률이 낮아지면 인기투표가 돼요. 골수팬들만 남게 되면 실력에 상관없이 그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참가자에게 몰표를 던지거든요. 이번 슈퍼스타K5가 그런 케이스죠. 심사위원들이 그걸 바로잡으려면 90점과 20점으로 차이를 줘야 해요. 그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죠. 기본적으론 시청률이 올라가 중립적인 시청자들이 늘어나야 해요. 그래야 쏠림 현상이 완화돼요.”

가수 이승철
이승철은 “사우나에 갔을 때 다른 사람의 라커에서 내 히트곡이 컬러링으로 흘러나오면 행복하다”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그의 휴대폰 컬러링은 크리스천 음악(CCM)인 ‘소원’이었다. 그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면서부터 독설이 안 나온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연정 객원 기자
◇리스크 관리의 모델!…비결은 ‘노래’라는 기본

이승철은 올해로 데뷔 28년차다. 그는 롱런의 비결에 대해 “가수의 창법은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이 장르를 바꾸며 옷을 갈아입는다”고 말한다.

―갈아입을 옷을 어떻게 선택합니까? 잘못 입으면 망하는데.

“그게 촉(觸)이죠. 저는 귀가 얇아요. 남들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듣습니다. 스튜디오에 자장면을 가지고 온 중국집 배달원한테도 물어보고 와이프, 딸 아이한테도 물어보죠. 정말 대중없이 물어봐요. 대신 어디에 포커스를 맞출지, 그 스트라이크 존은 제가 정하죠. 그건 그때그때 달라요. 선구안은 타고난 것 같아요. 연습해서 되는 건 아니죠.”

―2000번이 넘는 콘서트가 대중을 읽는 감각을 준 것인가요?

“콘서트는 감각 그런 것보다는 무조건 히트곡이에요. 대한민국에서 콘서트 하면 조용필·이문세·이승철 셋입니다. 저만 해도 한 해에 서른 번 콘서트를 하죠. 이 셋의 공통점은 히트곡이 가장 많은 가수라는 거예요. 콘서트는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지루하면 안 돼요. 대중은 모르는 노래가 나오면 지루해집니다. 아무리 셀린 디옹이라도 콘서트에 가서 내가 모르는 노래가 나오면 지루해요. 그런 틈을 안 줄 만큼의 레퍼토리를 가지려면 롱런하면서도 꾸준히 히트곡을 내야 하죠.”

이승철은 공연이 끝나면 관객이 다 나갈 때까지 무대에 서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도 콘서트장 마지막 퇴장자인가요?

“그럼요. 정확하게 말하면 관객이 완전히 다 나갈 때까지는 아니고 10% 정도가 남을 때까지는 무대에 서 있죠.”

―왜 그런 거예요?

“처음에는 제가 먼저 퇴장을 했죠. 우연히 관객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나가는 모습을 본 뒤 ‘사고 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내가 좀 오래 있으면 안전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된 거죠. 일석이조예요. 계속 서 있으면서 사진도 찍어주고 하면 팬들도 좋아하고요.” 그는 팬들을 다 돌려보내고 마지막으로 돌아설 때 ‘가수 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단 한 번이라도 가수 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어요?

“없어요. 가수는 행복을 주는 직업이잖아요. 물론 여러 가지 사건들로 속상할 때는 있었죠.”

이승철은 다른 가수들 같으면 ‘한방에 훅 갈’ 수 있는 악재들이 끊이지 않았다. 데뷔 초기에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 솔로로 자리 잡은 뒤에는 톱여배우와 이혼, 그리고 수십억원을 들여 만든 스튜디오 침수, 2007년 표절 시비, 2010년 음주운전 등이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스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업들이 ‘리스크 관리의 모범’으로 모셔 가도 될 정도예요. 연이은 악재를 극복하고 건재한 비결이 뭔가요?

“(웃음)뭐 같아요?”

―운이 좋았던 건가요?

“아뇨. 노래예요. 히트곡. 가수는 결국 모든 변명을 노래로 하는 거예요. 노래가 없으면 가수는 위기에서 무너져요.”

그가 가수 인생 처음으로 가요톱텐 1위를 한 노래가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였다. 녹화를 마치고 며칠 뒤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됐다. 인생 첫 가요 차트 1위는 통편집을 당해 방송을 타지 못했다. 그 뒤로 5년간 이승철은 방송사의 섭외 금지 리스트에 올랐다. 그때 그는 한해 평균 100번씩 콘서트를 열어 전국을 누볐다. “방송 순위에선 사라졌지만 제 노래는 여전히 인기가 있었어요.”

이혼한 뒤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코미디언 엄용수 선배가 그랬어요. ‘승철아, 다른 말할 필요 없다. 가수는 좋은 노래 부르면 다 잊힌다. 인터뷰 잘할 생각하지 말고 더 좋은 노래, 더 센 히트곡을 만들어라’고. 저는 노래를 통해 슬럼프에서 벗어났어요. 좋은 노래를 부르면 다 잊혀요. 기업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결국 좋은 상품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그게 아닌 다른 것들은 다 가짜, 꼼수예요. 자기가 갖고 있는 베이직을 믿어야죠. 제게는 노래가 베이직이죠.”

―가수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요?

“첫 시련인 ‘대마초 사건’ 때도 저를 지켜준 것이 소녀 팬들이었어요. 소녀 팬들의 환호도 행복했죠. 그러나 가장 큰 행복을 느낀 건 2004년 부활과 함께 ‘네버엔딩 스토리’를 발표했을 때였어요. 부활의 재결합에 환호한 남성팬들이 대거 콘서트장에 몰려오면서 콘서트가 모두 매진됐어요. 남성팬들이 울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제 가수 인생에서 가장 진한 감동이었어요. 결국 연장 공연까지 했었죠.”

◇서보고 싶은 무대는 그래미상 시상식…‘영어 진작에 배울걸’
가수 이승철
이승철은 자신의 가수 인생 최고의 노래로 ‘희야’를 꼽는다. 첫 소절이 ‘희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발표 당시 이름이 ‘희’자로 끝나는 전국의 소녀들을 잠 못 들게 했다. 그런 이승철이 꿈꾸는 가수로서 미래는 ‘프랭크 시내트라’와 같은 거장의 모습이다.

―일흔의 이승철이 지금 같은 창법으로 노래한다는 게 상상이 안 되는데요.

“(창법이) 바뀔 걸요. 힘 떨어지면. 그때가 되면 재즈를 할 것 같아요.”

―인생 최고의 노래가 ‘희야’인데 프랭크 시내트라처럼 되려면 인생에 대해 보다 깊이 반추하는 명곡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요. 명곡에 대한 욕심은 가수가 죽어서 관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되는 거예요. 그럼 명곡이 뭐냐. 비틀스의 ‘헤이 주드’ 있죠. 그 노래 코드가 딱 4개밖에 없어요. 그런데 세계 최고의 명곡이잖아요. 결국은 많은 사람이 부르는 노래라는 거죠. 전 세계인들이 부르는 대히트곡 중에 명곡이 많죠.”

―그러려면 영어로 노래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기 전에 K팝이 세계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게 빠르겠죠. 하하. 요즘 싸이가 하는 것을 보니까 가능성이 없는 것 같지 않네요.”

―이 무대만큼 꼭 한번 서보고 싶다는 무대가 있어요?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죠.” 미국 최고 권위의 대중음악 시상식인 그래미상은 ‘음악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린다. “그래서 지금도 후회하는 게 영어를 정말 잘했어야 해요. 지금 제 딸아이들처럼만 영어 공부를 했다면…. 앞으로는 가수의 기본 자질이 영어가 될 거예요.”

―가수로서 야망이 ‘더 큰 권력’을 갖는 것이라고 했는데, 더 큰 권력이란 뭔가요?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죠. 지금 아프리카 차드에 학교를 짓고 있어요. 앤젤리나 졸리처럼 빈민 구호 활동을 많이 할 수 있는 권력요.”

―만약 노래가 아니라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도 있어요?

“저는 관심이 있어요. 정치는 아니고요. 방송을 통해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거나. 그래서 세상을 움직일 힘을 얻는다면요.”

―다 가졌어요. 돈, 명예, 가족. 왜 여전히 노래를 해요?

“정말 대중이 원하지 않을 경우는 미련없이 무대에서 내려갈 거예요. 다만 저 스스로 스타 계급장을 뗄 수는 없어요. 제 어깨에 붙은 스타의 견장은 대중들만이 뗄 수 있어요. 저는 은퇴란 단어를 제일 싫어해요.”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원이(6)가 거실을 가로질러 갔다. 태어나면서부터 보컬의 신이 들려주는 자장가를 들어온 그의 둘째 딸이었다. 부인 박현정(49)씨도 기자와 눈인사를 했다. 이승철은 “아내와 함께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서 자꾸 독설이 사라진다”며 웃었다. 이승철은 “돌려 말하지 못하는 성격일 뿐 독설의 이미지는 사실 내가 원하거나 연출한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요즘 설교를 열심히 들었더니 독하게 말해도 다른 사람에겐 독설로 들리지 않는다고들 한다”고 했다. 독설이 사라진 이승철, 슈퍼스타K 제작진엔 또 하나의 악재가 생긴 것일까?

―서울 도심 100평짜리 빌라, 7억원짜리 마이바흐, 그리고 팬들의 사랑, 헌신적인 부인과 귀여운 딸들.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이승철도 삶의 무게를 느낄 때가 있나요?

“삶의 무게가 뭐죠?”

기자의 말문이 막혔다. 기자보다 네 살 위, 인생 선배 이승철에게 ‘삶의 무게’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 순간 가수 임희숙의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가 떠올랐다. ‘보컬의 신’ 앞에서 기자는 본의 아니게 노래를 불렀다.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그 노래가 말하는 것과 같은?

“제가 원래 해피바이러스가 많아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죠. 우울증 걸리는 스타일은 아니죠.” 기자의 초(超)진지한 질문을 이승철은 가뿐하게 받아넘겼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순간. 그가 말했다. “저는 인터뷰 내용은 안 봐요. 크기만 봅니다.”

-조선일보, 2013/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