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표적과 기사의 효과

하마사 2013. 4. 9. 14:59

본문: 행 5:12~16

제목: 표적과 기사의 효과

 

사도행전 5장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거짓 봉헌사건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짓으로 헌금을 했다가 부부가 죽음을 당하는 불행한 사건입니다. 이어서 교회의 내적인 시련을 극복한 예루살렘 초대 교회가 사도들이 베푼 이적과 놀라운 지도력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그 주변으로까지 서서히 확산되어 간 사실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민간에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했는데, 이러한 사도들의 표적과 기사는 예수님의 사역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전파의 명령을 주시고 또한 성령을 통하여 권능을 부여하심으로 구원의 역사가 한 순간도 중단됨이 없이 계속적으로 진행되어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표적과 기사가 나타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합심 기도입니다. 사도들이 합심해서 기도한 결과입니다.

행 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하나님은 그들이 합심하여 드린 이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사도들에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교회도 초대교회처럼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같은 생각, 같은 뜻으로 연합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으로 약속하셨습니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합심하여 기도하면 오늘날도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표적과 기사가 나타날 때 일어나는 효과는

1. 합심하여 모입니다.(12)

12절,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사도들의 표적과 기사로 인하여 복음이 확산되었습니다. 복음이 예루살렘 뿐 아니라 그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과 같은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지만 복음에 장애물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사도들에 의해 많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자 믿는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였습니다. 솔로몬 행각은 솔로몬이 지은 것으로 바벨론 사람들의 성전파괴에도 불구하고 손상을 입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이곳은 초기 예루살렘교회의 집회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3장에서도 베드로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고친 후 몰려든 사람들을 향해 솔로몬 행각에서 설교하여 오천 명이나 되는 개종자를 얻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도들과 성도들이 솔로몬 행각에 계속해서 모인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에 용이하였고 성전을 찾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좋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면 성도들이 힘을 얻어 모이는데 열심을 낼 수 있습니다. 기도하여 응답을 얻으면 기쁨이 생기고 더욱 열심히 모여 기도하게 됩니다. 간증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눌 수 있습니다.

물론 표적과 기사만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신비주의로 빠지는 것은 잘못입니다. 표적과 기사가 신앙생활의 전부인양 생각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신비적인 것만 추구하면 신앙의 성숙이 바르게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도들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자 성도들은 힘을 얻어 모이기에 힘썼습니다. 모이기를 힘쓰는 공동체는 살아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교회와 공동체는 죽어갑니다. 우리교회가 합심하여 모이기를 힘쓰면 능력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24시간 연속기도를 하면서 모이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합심하면 사도들이 행했던 표적과 기사가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표적과 기사의 효과는

2. 칭송을 받습니다.(13)

13절,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사도들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자 믿는 사람들은 더욱 모이기에 힘썼습니다. 하지만 표적과 기사를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각색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셔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바알세불이 들렸다고 비난했습니다. 눈앞에서 행하는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믿고자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13절의 그 나머지는 불신자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이 믿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성도들과 상종하지 않은 이유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과 사도들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성도들의 모임 에 속하게 되면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적대적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 큰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에게 임했던 형벌에 대한 두려움도 성도들의 모임에 참석하기를 꺼리게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도들에 대하여 호의를 가지고 있었으며 칭송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칭찬할 정도로 당시에 성도들이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능력이 있어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면 덕이 안됩니다. 능력을 행할수록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아야 합니다.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은혜가 깊어지면 질수록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은혜받은 사람의 바른 모습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불신자들이 성도들 모임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칭송할 정도로 높여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성도들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하고 믿지 않는 이웃의 불신자들로부터도 칭찬과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표적과 기사의 효과는

3. 전도의 열매입니다.(14)

14절,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사도들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자 성도들은 합심하여 모였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함께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칭송하였습니다. 나중에는 결국 그들이 믿게 되었으며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많았습니다. 아무리 표적과 기사를 행해도 주님께로 나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의 자랑으로 끝나버리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달란트는 전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도들에게 주신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능력으로 예수님을 믿게 만들었다는 말씀입니다. 큰 무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또한 단순히 믿는 무리가 많아졌다는 표현을 하지 않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많아졌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교회의 부흥을 단순히 교인수의 증가에만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을 분명히 주님께 두고 있음을 명확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믿는 자들을 언급하면서 ‘남녀의 큰 무리’라고 하며 여자들을 따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믿는 자들의 숫자를 말할 때는 남자들만을 의미했던 것과는 다른 표현입니다. 이것은 초대 교회에서 여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여성의 지위도 그만큼 신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자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표적과 기사, 혹은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와 달란트는 자기를 자랑하는데 사용하지 말고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전도의 도구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표적과 기사의 효과는 성도들이 합심하여 모이고,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으며,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전도의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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