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행 13:21-23
제목: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목표: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게 한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직장인이 사장님께 인정받아 승진하면 참 신나는 일입니다. 다른 동료들이 승진할 때 탈락하면 좌절감을 경험합니다. 저도 직장생활 할 때 승진에서 누락된 경험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위로해 주었지만 기분이 우울했습니다.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전 직장 동기가 이사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 기뻤습니다. 사장님께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인정받는 것 역시 참 귀한 일입니다. 목사님께 인정을 받고 주변의 성도들에게 인정받으면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과 판단은 잘못될 수 있습니다. 인정받아야 할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할 사람을 인정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음에 맞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으로부터 꼽으면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갈렙, 사무엘, 다윗, 엘리야, 엘리사, 다니엘 같은 인물들을, 신약성경에서 세례요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스데반, 바울, 바나바, 디모데와 같은 인물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 중에 다윗은 특별히 오늘 본문 22절에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다윗은 목동의 신분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성경구절을 좋아하여 개인 홈페이지 이름을 ‘하마사’로 지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들기를 소원하는 사람의 소박한 삶의 나눔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까? 그 이유를 알아보고 저와 여러분들도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은
1. 믿음의 사람
(삼상 17:45-47)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다윗은 매사에 신앙적이었고 그것이 하나님 마음에 맞았습니다. 블레셋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모든 이스라엘 군사들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두려워하여 벌벌 떨고만 있었습니다. 어린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이 싸우고 있는 전쟁터에 갔다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골리앗을 보고는 울분을 참지 못해 그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었지만 믿음의 사람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면서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골리앗 장수를 때려눕히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다윗의 믿음이 하나님 마음에 들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이 하나님 마음에 맞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또한 100세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라는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드렸기에 그는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많은 학식과 재물, 명예와 권력이 있어도 그에게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믿음 없이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진들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지 믿음을 보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 84:12)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단어에는 ‘의지 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은 의자가 튼튼하여 앉아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앉을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고가 날 것을 안다면 누가 타겠습니까?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안전하게 보관해주고 이자까지 지불해준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시기하여 사울이 죽이려고 할 때도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했기에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그의 삶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믿음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죽은 믿음과 산 믿음이 있고, 큰 믿음과 작은 믿음이 있습니다. 약 2:26에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말로는 믿고 교회출석은 하지만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실제로는 죽은 믿음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가 죽은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저를 비롯한 껍데기만 목사이고 성도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늬만 성도이고 행동이 불신자와 같다면 살아있는 믿음의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물론이시고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죽은 믿음을 알아봅니다. 행함 없는 죽은 믿음이 어떻게 생명을 살리고 죄악으로 병들어가는 사회를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6:13)는 말씀처럼 세상 사람들에게조차 밟히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화)칼리마 나비
‘죽은 잎사귀’로 불리는 칼리마(Kallima)라는 나비가 있습니다. 이 나비가 날개를 펴고 있을 때는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입니다. 날개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마치 왕관을 쓴 여왕의 자태처럼 우아합니다. 그러나 날개를 접으면 누런 색깔의 흉물스러운 곤충으로 마치 썩은 나무 잎사귀와 비슷합니다. 날개를 펴고 접는 것에 따라 그 모습이 완전히 바뀝니다.
칼리마와 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온유하고 친절하며 기도도 잘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나가면 죽은 잎사귀 신자로 돌변합니다. 날개를 접은 칼리마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는 것은 기독교 교리 때문이 아니라 성도들의 진실한 삶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은 행함 있는 산 믿음, 진실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또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 6:30)” 하시며 믿음이 작은 자들을 책망하십니다. 바다에 풍랑이 일어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도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8:26)”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염려와 걱정에 휩싸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먹고 마시고 입는 것으로 걱정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작은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하나님 마음에 맞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귀신들린 딸을 고치러 예수님 앞에 온 가나안 여인에게는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 15:28)”하시며 여자의 큰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유대인 혹은 가나안 사람으로 구분하는 출신성분이나 남녀성별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학벌과 명예, 재물과는 전혀 상관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셨습니다.
다윗은 행함이 있는 산 믿음, 큰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맞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은
2. 열정의 사람
(시 69: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성전 안에는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로 장사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지방에서 제사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소와 양과 비둘기 등을 가져올 수 없으므로 그들을 위하여 돈을 받고 바꾸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후에는 제사장들과 야합하여 성전에서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이 예배보다는 돈벌이에 관심을 가지고 장사꾼들이 판을 치는 시장터가 되었으니 주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채찍을 들고 장사꾼들을 사정없이 내쫓아버리는 모습이 정신없는 사람과 같았습니다. 양과 소를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뒤엎으셨습니다. 마치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하셨습니다. 열심에 삼켜버린바 되었습니다(요 2:17).
사도요한이 그 장면을 묘사할 때 다윗의 시편을 인용했습니다. 시편 69편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쓴 고난의 시입니다. 다윗의 아들 중에 가장 용모가 출중하였던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려하자 다윗은 왕궁을 버리고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그때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백성들 앞에 얼굴을 들고 나타나기도 부끄러운 수치와 치욕가운데서 지은 시입니다. 왕궁을 잃고 아들에게 쫓겨 도망한 다윗이 의지할 대상이 누가 있겠습니까? 아들이 반역을 일으킨 마당에 누구를 믿겠습니까?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하는 간절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손으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그의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사모하는 성전건축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자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열성이란 단어는 ‘열정’, ‘열의’, ‘열심’이란 뜻으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한 열정이 자기를 삼켰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는 열심,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자기의 전인격이 타고 없어질 정도로 뜨거웠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이 열정이 하나님 마음에 맞았습니다.
세상에서 자기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열정적인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 피땀 어린 노력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하든 혹은 누가 시켜서 하던 열정을 쏟아 부을 때 성공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예화)
멕도널드의 창업자 크록은 원래 종이컵 행상을 하였습니다. 그는 종이컵을 팔아 모은 돈으로 시카고에서 햄버거와 감자튀김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빵이 가장 맛있게 익는 온도와 고기를 가장 부드럽게 익히는 법등을 꼼꼼하게 메모를 했습니다. 이 연구를 토대로 52세 때 맥도널드사를 설립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맥도널드사의 경영철학은 열정과 경험이라고 합니다.
크록은 직원들에게 "사업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박사학위가 아니라 열정이다. 음식을 직접 만들고 배달한 사람만이 회사의 중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열정이 능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정적인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알기 전에 성도들을 핍박하는 열심이 대단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디 있다 하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달려가 그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비록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사람이었지만 그 열심만큼은 알아 줄만했습니다. 그 열정의 방향만 바꾸어주면 좋은 일꾼이었습니다. 다메섹이라는 곳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잡아오기 위해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위대한 사도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돌에 맞아 죽을 번 하였고, 복음전도 여행 중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과 배고픔과 자지 못함과 추위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들이 있었지만 열정은 변함없었습니다. 바울의 이 열정이 하나님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사울 왕 앞에 갔을 때 골리앗의 상대가 안 된다며 싸움을 말리자, 다윗이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때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라고 담대하게 말하자 사울이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며 골리앗과의 싸움을 허락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기에게 맡겨진 일은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열정적으로 감당했습니다. 이 열심을 보시고 하나님은 한 나라를 맡겨도 감당할 수 있으리라 여기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그 일을 열정적으로 감당할 때 하나님은 더 큰 일을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리고 더 큰 일이 주어지면 잘 하겠다는 생각으로는 영원히 큰 일감이 주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주어진다 해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서도 그 열정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다윗성에 하나님의 법궤가 들어올 때 자기의 옷이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열정적으로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의 열정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열정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은
3. 사랑의 사람
(시 18: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베드로는 평생에 세 번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첫 번째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잡은 고기가 없어 힘없이 그물을 씻고 있던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하고 그물을 내렸더니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배를 육지에 대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 고백이 있은 후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하시며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이처럼 죄인임을 고백할 때 예수님과의 관계가 성립됩니다.
두 번째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는 고백입니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묻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하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적인 대답에 주님은 대단히 기뻐하시며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롬 10:10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말씀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세 번째는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된 후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자기들의 고향으로 과거의 일을 찾아 떠났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힘주어 다짐하던 수제자 베드로도 어부의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실의와 좌절가운데 밤새 고기를 잡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새벽에 찾아오셔서 친히 준비하신 생선과 떡을 먹이신 후에 세 번의 질문을 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주님의 질문 앞에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며 반복하여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새롭게 사명을 부여해주십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세 번의 사랑을 확인하신 후에 주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겨주십니다. 그 후에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끝까지 충성하다가 순교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말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찬양하며 모든 환난 중에 힘이 되어주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힘이셨기 때문에 다윗은 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비록 힘이 없을지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의 편이 되어주셨기에 다윗은 능력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신명기 5:10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이 약속대로 다윗의 왕위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다윗의 후손 중에 하나님 마음에 맞지 않는 왕이 있어도 다윗을 생각하사 왕위를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영원한 왕위를 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다윗 한사람으로 인해 자손대대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영광의 도구로 사용되었고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예화)
막 12장에 보면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예수님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질문했습니다. 모든 계명이란 모세의 율법을 포함한 모든 가르침과 훈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십계명이나 모세 오경의 율법과는 별개로 613개의 규정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사람 몸의 지체 수로 여겨지던 248개는 적극적 행위를 촉구하는 규정이었고, 1년의 전체 날수에 해당하는 365개는 덜 중요하게 여겨지며 행하지 말 것을 명하는 소극적인 규정이었습니다. 랍비들은 이 많은 규정들 중에서 어느 것이 보다 크고 무거우며 어느 것이 보다 작고 가벼운 것인지, 또는 어느 것이 더 근본적이고 어느 것이 부수적인 것인지에 대한 끝없는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 질문은 이러한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가장 크고 가장 근본적인 계명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이 쉐마말씀(신 6:4~5)으로 친절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의미는 전인격적으로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십계명의 첫 부분 즉 하나님에 대한 1~4계명의 요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이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의 사람, 열정의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셔서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복을 함께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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