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예수님의 십자가와 무덤

하마사 2013. 3. 30. 10:28

본문: 갈 6:14

제목: 예수님의 십자가와 무덤

목표: 예수님의 십자가와 무덤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지금 이 시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계시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하여 자신을 위해 만들어 놓은 무덤에 장사지냈습니다. 그는 알려지지 않은 제자였지만 박해와 친지들의 차가운 눈총을 무릅쓰고 용기있게 행동했습니다.

요셉의 무덤에 계시던 주님이 주일새벽에 부활하심으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와 무덤이 주는 의미가 변하여 승리와 소망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십자가와 무덤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1. 죄의 상징이 은혜의 상징으로 변했습니다.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십자가는 흉악한 죄인들이 달리는 사형틀이었습니다. 반역죄를 지었거나 사람을 죽인 강도와 같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도록 만든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또한 무덤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가야하는 장소입니다. 죄의 삯으로 주어지는 이 세상의 마지막 장소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하지만 죄의 상징인 십자가와 죽음의 상징인 무덤이 주님으로 인하여 은혜의 상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영영 지옥의 형벌 속에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습니다. 죽음의 형틀이 변하여 은혜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또한 죄의 삯으로 주어진 죽음의 그림자를 늘 드리우고 살아야 하지만 주님은 그 무덤을 깨치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생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예화)

기독교를 은혜의 종교라고 합니다. 구원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단 1%도 개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문제는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속합니다. 구원은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기에 지금 당장 죽어도 천국갈 수 있다는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확신한다 할지라도 구원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집사님이 시부님의 구원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시골에 사시다가 폐렴으로 보훈병원에 입원하셨는데 병원에 계시는 동안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시댁을 방문할 때마다 교회출석을 권면했지만 완고하셔서 끝까지 믿음생활을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집사님은 시부님의 마음이 움직이도록 기도부탁을 하셨고 병원에 심방해줄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얼마 후에 집사님으로부터 심방을 요청하는 전화가 왔습니다. 병원에 가서 82세 되신 어르신을 만났는데 단아하고 완고해보이셨습니다. 옆에서 간병하시는 가족들과 대화를 나눈 후에 성경을 읽고 복음을 제시했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뜻밖에도 순순히 복음을 수용하시고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옆에 계시던 집사님 부부는 놀라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쉽게 마음 문을 여실 줄은 몰랐다는 눈치였습니다. 그 후에 몇 번 더 병원심방을 하면서 병세가 악화될 때 구원의 확신에 대한 질문을 드렸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죽게 되는데 죽은 후에 천국갈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했더니 '예'라고 분명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몇 일후에 그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으로 가셨고 기독교 예식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 분이 구원을 위해 한 일은 예수님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신 것이 전부였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의인으로 변화시키는 은혜의 상징입니다.

 

2. 패배의 상징이 승리의 상징으로 변했습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는 패배와 실패의 상징입니다. 국가에 반역을 일으키다가 실패하였든지 아니면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려 강도짓을 하다가 잡혔든지 성공하지 못하여 패배자가 된 사람들이 달리는 형틀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실패하여 패배자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 같았지만, 주님의 십자가는 죄와 마귀를 이기고 구원을 성취한 승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게 보이지만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죄와 사단을 이긴 구원과 승리의 상징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우리는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덤도 마찬가지입니다. 패배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렸더라도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패배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며 무덤으로 가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여 무덤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무덤이 있기 마련입니다. 요즘에는 무덤을 만들지 않고 화장하여 흙에 뿌리거나 산에 뿌려 무덤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그곳이 무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무덤은 3일 만에 열려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승리의 주님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3. 고통의 상징이 기쁨의 상징으로 변했습니다.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십자가는 고통을 연상시킵니다. 양손과 양발에 대못을 박고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고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매달려 사람들의 조롱과 손가락질을 받으며 처참하게 죽어가는 고통의 상징입니다.

또한 무덤은 죽음으로 인해 당하는 고통을 연상시킵니다. 죽음은 사람들에게 눈물과 고통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천국의 생활을 기록할 때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는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계 21:4)

죄인들이 당하는 십자가와 무덤은 고통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기 전에는 세상에서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학벌인 가말리엘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유대인으로 율법에 흠이 없었고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사도가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는 기쁨의 상징, 자랑거리로 변화되었습니다. 요즘에 여성들이 목걸이나 귀걸이에 십자가 형상의 장신구를 하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끔찍한 사형 틀이 갖는 고통의 상징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자랑과 기쁨의 상징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 역시 부활로 인해 기쁨과 환희의 상징으로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와 무덤을 묵상하면서 죄와 패배, 고통이 변하여 은혜, 승리, 기쁨의 삶으로 전환되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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