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무총리와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서 '함리스 에러(Harmless Error·큰 해가 없는 잘못)의 원칙'이 떠올랐다. 이 원칙은 과오가 있어도 그 행위가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피해가 크지 아니한 경우 덮어두는 매우 인간적인 원칙이다.
물론 잘못된 가치판단은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거시적으로 보아 국가와 사회에 피해를 끼치는 정도가 아닌 경우, 오히려 그 과오를 불용(不容)함으로써 일어나는 더 큰 손실의 결과를 놓치지 않는 관용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장을 지낸 로저 트레이너 판사는 함리스 에러 원칙을 중요한 재판 원칙으로 자주 인용하여 정착시켰다.
이번에 인사청문회 대상에 오른 인물들의 과거 행적이 함리스 에러 원칙에 비추어 덮고 넘어갈 수 있는 정도라면 더 큰 국익을 위해 국민이 이를 덮어주는 아량을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이 경우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느냐'는 식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며 당사자의 공(功)과 과(過)를 철저하게 검증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광복 후 신생 대한민국을 이끌어간 이승만 대통령은 그 자신이 독립투사이면서도 주위의 일부 반대에도 친일파로 분류될 수 있는 행정 경력을 가진 인물들을 중용하는 용단을 보여줬다. 인종차별을 반대해서 19년간 옥고를 치른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는 집권 후 그를 학대하던 백인 각료를 대거 기용하여 세계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또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던 많은 조선의 부녀자가 천신만고 끝에 조선 땅에 돌아오자 조정은 이들의 불행했던 행적을 일절 불문(不問)에 부치고 감싸주었다. 모두 함리스 에러 원칙에서 보면 매우 지혜로운 '대사면'의 선택이었다.
함리스 에러 원칙은 우리 법원에서 상급심이 하급심 판결을 검토하면서 적용해온 원칙이기도 하다. 하급심의 판결 이유 중 잘못 채택된 증거가 있어도 그 증거 이외의 압도적인 다른 증거들이 존재해서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 경우, 하급심 판결 결과를 존중해가는 재판 원칙이다. 작은 부분의 잘못은 지적하면서 미래에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경고하고 큰 부분의 흐름은 국가와 사회의 유지를 위하여 존중하고 그 가치를 보존하는 자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룩한 놀라운 압축적 경제성장과 국력 비축도 함리스 에러의 반복과 시행착오 속에서 달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나로호의 성공적 발사나 세계적인 한류 충격도 함리스 에러의 반복에서 이룩한 성과물이다.
이번 인사 논란에서 나타난 현상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친 한 세기 동안 우리 국민이 겪어온 함리스 에러의 반복을 외면한 채 마치 도덕 국가였던 것으로 착각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느껴진다. 절대선(絶對善) 앞에서는 무결점 인간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오죽하면 성경 말씀에 예수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라면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무결점 심판'의 오류를 깨우쳤겠는가.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후 명량해전 승리도 함리스 에러 정신에 일치한다. 분단된 한국이 통일을 앞둔 시점에서 국력을 키우기 위한 인재 활용에 좀 더 적극적인 함리스 에러 원칙을 적용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조선일보, 2013/2/9
'자기계발 > 자기관리(리더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은행 농구팀 위성우 감독의 세가지 기적의 리더십 (0) | 2013.03.25 |
---|---|
파월이 말하는 리더십 (0) | 2013.03.25 |
재선 이끈 오바마 리더십 (0) | 2012.11.08 |
"승려가 고급차 몰고 다니고… 이러다가는 대중이 절을 버릴 것" (0) | 2012.05.12 |
종교인의 몸가짐 돌아보게 하는 '승려 도박' (0) | 2012.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