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은 11일 전남 장성 관광호텔에서 일어난 승려 도박사건과 관련, "세간의 욕망에 초연해 중생의 스승이 돼야 할 수행자들이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행위를 한 것에 대해 깊이 참회한다"고 밝혔다. 종정 진제 스님도 "(도박 승려들은) 시줏밥 먹을 자격이 없다. 제가 대신 참회한다"고 했다. 부처님 오신 날 28일을 앞두고 불교 최대 교단의 수장(首長)들이 승려들이 저지른 불미스러운 일로 잇달아 참회를 하기에 이르렀다.
'승려 도박사건'은 지난달 24일 백양사 방장 수산 스님 49재에 참석했던 승려들 중 8명이 행사 전날 밤부터 당일 아침까지 근처 호텔에서 술·담배를 하며 도박하는 현장을 누군가 몰래카메라로 찍어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도박 승려들 가운데는 조계사 주지, 불교계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종회의원 등 조계종 고위 인사들이 여럿 포함돼 있다. 불교계는 이번 사건을 수산 스님 입적 후 백양사 방장·주지 후임 문제로 빚어진 내부 갈등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승려들이 감투를 놓고 싸우면서 몰래카메라까지 동원하는 모습이 속세 뺨친다. 그러나 국민의 시선은 영상 속 도박판에 쏠릴 수밖에 없다.
모든 종교에는 수도자가 있고 세속 사람들은 수도자의 말과 행동을 통해 종교의 가르침을 얻는다. 사람들이 수도자를 믿고 따르는 것은 수도자들이 나름의 엄한 계율을 지키며 쌓아온 도덕적 권위에 승복하기 때문이다. 한국 불교가 중생의 번뇌를 다스리고 삶을 밝혀 온 것도 뛰어난 큰스님들의 반듯한 몸가짐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던 덕분이다. 스님이 속세 인간과 똑같이 도박과 감투 싸움에 골몰하면 중생이 스님을 따를 이유를 어디서 찾겠는가.
근대 불교의 대선사(大禪師) 경허(鏡虛) 스님은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처가 돼 삶과 죽음을 넘어서기 위해 중이 되는 것이니 중 노릇 하는 게 어찌 작은 일이리오"라고 했다. 그는 모두가 꺼리는 한센병 여인과 자기도 하고 술에 만취해 법당에도 오르는 파계와 기행(奇行)을 넘나들면서도 턱밑에 송곳을 세워놓고 용맹정진한 끝에 깨달음을 얻어 한국 불교의 맥을 살려냈다. 요즘 불교계에는 경허 스님의 혹독한 수행은 배우려 하지 않고 파계만 흉내내는 승려가 너무 많다. 종교의 근본, 수행(修行)의 의미를 되돌아볼 때다.
-조선일보 사설, 201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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