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기타자료

계사년, 뱀처럼 살기

하마사 2013. 2. 9. 19:15

 

정진홍 논설위원

 

# 음력 섣달그믐에 궁중은 물론 민가에서 마귀와 잡신을 쫓아내는 의미로 거행하던 의식을 가리켜 ‘구나(驅儺)’라고 했다. 조선 중기에 성현(成俔, 1439~1504)이 지은 『용재총화』에 그 내용이 나온다. “섣달그믐에 어린애 수십 명을 모아 진자로 삼아 붉은 옷에 붉은 두건을 씌워 궁중으로 들여보낸다. 관상감에서 북과 피리를 준비했다가 새벽이 되면 방상시(역귀를 물리치는 사람)가 그들을 쫓아낸다. 민간에서도 또한 이 일을 모방한다. 진자는 없으나 녹색 댓잎, 붉은 형지, 익모초 줄기, 도동지(桃東枝, 악귀를 내쫓는 데 사용하는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가지)를 한데 합해 빗자루를 만들어 펴고 창살을 두드리며 북과 꽹과리를 울리면서 문밖으로 몰아낸다. 이를 (귀신을 때려 쫓는다 해서) ‘방매귀(放枚鬼)’라 한다.”

 # 오늘 임진년(壬辰年) 섣달그믐에 해야 할 ‘구나’와 ‘방매귀’의 대상은 다름 아닌 ‘북핵귀신’이다. 북핵은 더 이상 협상용 카드가 아니라 실재하는 명백한 위협이다. 하지만 설 연휴를 맞는 우리 세태는 속절없이 태평하다. 원전사고 때문에 방사능 유출될까 전전긍긍하던 이들마저 우리 머리 위에서 벌어지는 북핵 도발에 대해서는 여유롭기 그지없다. 나라 바깥에서 이런 우리를 이상하고 기이하게 보는 것이 당연하다 싶다. 이 와중에 다사다난했던 임진년이 가고 정말이지 예측불가한 계사년(癸巳年)을 맞는다.

 # 흔히 계사년은 하늘의 물기운과 땅의 불기운이 부딪히나 하늘의 물이 땅의 불을 끄는 형국이라고 말한다. 계사년의 ‘계(癸)’는 하늘에 올리는 거룩한 제사를 뜻하고 그 계수의 물이 땅의 불 곧 북핵 불장난을 끄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그러니 박근혜 당선인은 국조(國祖) 단군왕검으로부터 물려받은 단단한 박달나무(단군의 ‘단(檀)’이 박달나무 ‘단’!)를 손에 들고 한편으론 북핵귀신을 때려 ‘방매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늘에 올리는 거룩한 제사를 지내며 거기에서 쓰이는 계수의 물로 북핵의 불을 꺼야 하는 현대판 제사장 곧 또 하나의 단군이 돼야 할 운명인지 모른다.

 # 이처럼 시절이 하수상하고 상황이 엄중하나, 전국을 꽁꽁 얼게 만든 강추위 속에서도 설을 맞아 고향 찾는 이들에게 덕담 몇 마디는 해야겠다 싶다. 다만 그것 역시 계사년 뱀띠 해를 맞아 뱀처럼 살자고 말하면 좀 지나치려나? 본래 뱀은 직선이 아니다. 철저히 곡선이다. 곡선은 더디고 직선은 빠르다. 곡선은 감싸고 직선은 찌른다. 그러니 우리 삶에서도 직선만 고집하지 말고 곡선으로 두르고 부드럽게 감싸자. 어차피 구불구불한 게 인생 아닌가. 게다가 직선의 미학은 서구의 것이고 곡선의 미학은 본래 우리의 것이다. 우리의 아름다움은 대개 곡선에서 나왔지 직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한옥의 들린 처마끝, 무량수전의 배부른 기둥, 청자와 백자들의 둥근 선, 버선코와 한복의 소매선 등에서 우리는 이미 곡선미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처럼 엄중한 올 계사년엔 좀 더 유연하고 부드럽고 완만하게 곡선처럼 둥글둥글 살아보자.

 # 또한 뱀은 날지 않는다. 철저하게 바닥을 기며 나아간다. 보일 듯 말 듯 스스로를 감추듯 움직인다. 하지만 뱀이 한번 움직이면 의외로 속도가 빠르고 민첩하다. 뱀은 움직임과 멈춤이 절묘한 동물이다. 계사년을 살아내야 할 우리 역시 움직일 때 확실히 움직이고 멈춰서 관조해야 할 때 또 그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뱀처럼 지난 허물을 벗어버리는 것이리라. 물론 허물을 벗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것은 지난한 아픔을 감내한 변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물을 벗어야 새로워질 수 있고 제대로 살 수 있다. 누구나 허물을 벗으면 새 사람이다. 그러니 계사년 새해엔 한 꺼풀 벗자. 아프더라도 벗자. 그래야 진짜로 새로워질 수 있다. 세상이 새로워지길 기다리기 전에 내가 먼저 허물 벗고 새로워지는 게 계사년을 사는 진짜 지혜가 아닐까 싶다.

정진홍 논설위원

 

-중앙일보, 20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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