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닥치는 찬바람에 전깃줄이 자지러지듯 이잉 이잉 소리 내 울었다. 문고리를 쥐면 손가락이 쩍쩍 달라붙었다. 문풍지 틈으로 황소바람이 밀려들었다. 밤사이 머리맡에 둔 자리끼가 꽁꽁 얼어붙었다. 유리창엔 결정체 모양도 또렷한 성에가 가득 끼었다. 1950~60년대 유·소년기를 난 이들에겐 참 모질게도 춥던 겨울의 기억이 있다. 벙어리장갑과 토끼털 귀마개 없이는 지나기 힘들었어도 오히려 그 시절 한겨울엔 개구쟁이들 놀거리가 더 풍성했다.
▶미나리꽝 얼음판에서 팽이 치고 썰매 지쳤다. 자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에 제기 차고 연 날렸다. 산토끼를 몰아 잡는답시고 뒷산을 헤맸다. 가뜩이나 짧은 겨울날이 허망하게 어두워졌다. 논바닥에 삭정이 모아 불 피우고 언 손발 녹였다. 나일론 점퍼와 양말에 불구멍 내고 집에 돌아와 경을 치곤 했다. 새총 만들어 참새 잡다 시원찮으면 한밤에 손전등 들고 동네를 돌았다. 초가 추녀에 사다리 걸치고 손 디밀어 곤히 잠든 참새를 낚아챘다.
▶천둥벌거숭이처럼 겨울을 나면서도 동네 목욕탕엔 명절에나 갔다. 팔꿈치·무릎·발뒤꿈치엔 늘 때딱지가 앉았다. 손등이 터서 죽죽 금이 갔다. 가끔 부엌이 목욕실이 됐다. 커다란 고무 함지가 욕조였다. 엄마가 목덜미를 박박 밀어주다 등짝을 때리며 "까마귀가 형님이라 부르겠다"고 핀잔을 놓았다. 학교에선 일주일에 한 번 손등이 위로 오게 치켜들고서 용의(容儀) 검사를 받았다. 불합격하면 그 추운 날 수도에 가서 씻고 와야 했다.
▶아이들은 동상(凍傷)을 달고 살았다. 벌겋게 부풀어 오른 손등 발등이 밤 되면 무척 가려웠다. 동상을 가라앉힌다며 생콩을 갈아 덕지덕지 발랐다. 뜨거운 세숫대야 물에 담뱃잎이나 담뱃가루를 풀고 손발을 담갔다. 콩자루에 발을 묻고 자기도 했다. 오랜 세월 잊고 살던 동상이 어제 신문에 올랐다. 동상 환자가 해마다 45%씩 늘어 재작년 1만8000명을 넘었다는 소식이다. 스키·보드를 즐기는 10대와 20대가 절반에 가깝다.
▶동상이 부쩍 늘어난 것은 겨울은 갈수록 추워져도 야외 레저 활동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방한복 안에 땀이 차거나
장갑·신발이 젖으면 동상에 걸리기 쉽다. 여벌 장갑·양말·깔창을 준비하고 두껍고 꽉 끼는 옷보다 가볍고 바람 잘 막는 옷을 껴입는 게 좋다고
한다. 못 먹고 못 입던 시절 동상과는 한참 다르다. 세월은 기억에 달콤한 당의(糖衣)를 입힌다. 가렵고 쓰라리던 이름 동상마저 따스하고
아련하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3/1/15
*어린시절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웃음짓게 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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