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 4:18~20
찬송: 545장
제목: 무엇을 잡고 있습니까
목표: 버릴 것은 던지고 잡아야 할 것을 잡고 살게 한다.
구역장 권찰 위로회 때 조령산을 넘어 문경새재를 걸었는데 오르막을 올라갈 때 다리가 불편한 권사님들은 힘들어하며 지팡이를 찾았습니다. 제가 급히 나무 지팡이를 만들어 드린 일이 있습니다.
지팡이는 힘든 길을 갈 때 의지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다리가 불편하신 분들이나 다리에 힘이 없는 분들은 지팡이를 의지해야 합니다. 또한 지팡이는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는 필수도구입니다.
본문은 모세가 미디안광야에서 양치는 생활을 접고 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장인 이드로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애굽으로 떠나는 장면입니다.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다고 성경은 특별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애굽에 가서 사용해야 할 물건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모세의 지팡이는
1. 던짐의 지팡이(1~4절)
출 4:1~4절,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하나님은 40년 동안 왕궁에서 왕자로 살다가 애굽사람을 죽인 것이 발각되어 미디안 땅으로 도망하여 40년을 양치는 목동으로 살았습니다. 극과 극을 달리는 인생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가살이를 하면서 하루하루 양과 더불어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세를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 안에서 부르셨습니다. 고통받는 백성들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자신이 없다며 핑계를 댑니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셨습니다. 모세는 지팡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것을 땅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땅에 던지자 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꼬리를 잡으라고 하셨고 꼬리를 잡자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또한 손을 품에 넣을 때 나병이 생겼고 다시 손을 넣었을 때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자기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여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하며 핑계했습니다. 하나님은 화를 내시며 아론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모세는 압제받는 이스라엘백성들이 있는 애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후에 곧바로 장인 이드로에게 가서 허락을 받고자 했습니다. 모세가 맨몸으로 애굽에서 나왔을 때 자신을 받아주었고 딸을 아내로 주었고 40년 동안 함께 살았던 장인 이드로에게 미디안을 떠나겠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이 40년 동안 미디안 땅에 닦아 놓았던 모든 삶의 기반을 두고 떠나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났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떠나는 일을 시작했듯이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났고, 야곱이 밧단아람을 떠났습니다. 떠나는 것은 자기를 내려놓는 일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40년 동안의 삶의 근거지를 떠날 때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면서 그의 손에 지팡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40년간 미디안에서 양을 치는 목자로 지팡이를 잡고 살았습니다. 애굽에서 다시 목자의 생활을 하기 위해 지팡이를 잡고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지팡이였지만 용도가 달라졌습니다. 40년간 사용하던 목자의 지팡이는 이제 마음속에서 던졌습니다. 양을 치던 지팡이는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이제는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지팡이로 용도가 바뀌었습니다. 과거의 지팡이를 던진 것은 자기를 내려놓고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목자의 삶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 내려놓아야 하고 던져야 합니다. 자기가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들, 놓치면 죽을 것 같은 것들을 던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것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것을 던질 때 자유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던졌습니다. 자기 생명보다 더 소중한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던졌습니다. 다니엘은 총리직을 던지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던 습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던지듯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물질, 명예, 권력, 지식, 친구, 자식, 생명까지도 던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모세는 과거 목동의 지팡이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습니다. 같은 지팡이지만 전혀 다른 지팡이였습니다. 과거에는 모세의 소유였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지팡이였습니다. 더 이상 양을 치는 목자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담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자기의 지팡이를 던졌을 때 지팡이가 뱀이 되는 능력을 체험했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다가 목사가 되겠다고 사표를 던지고 신학교에 들어갈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신학생 때 퇴직금과 동생들이 보태주는 생활비로 공부를 했습니다. 앞으로의 진로와 물질도 내려놓겠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던진다는 결심으로 신학의 길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던졌는지 의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던졌던 것들을 다지 잡으려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을 찾으려 합니다. 물질도 찾으려 합니다. 앞으로의 진로를 놓고 고민도 합니다. 명예도 찾으려 합니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진다고 했는데 하나씩 던졌던 것을 다시 찾으려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의기소침할 때가 있습니다. 미디안 땅에서 양치던 지팡이를 던졌다가 다시 찾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왔을 때는 좋았지만 광야생활 40년 동안 원망과 불평을 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던지고 내려놓았던 것들과 환경을 다시 잡고 싶어했습니다.
2012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무엇을 잡고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았다고 하면서 미디안 땅에서 잡았던 양치는 지팡이를 던지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롯의 아내처럼 버리고 잊어야 할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뒤를 돌아보며 던졌던 지팡이를 다시 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정이나 일터에서 교회에서 마땅히 던져야 할 지팡이를 던지기를 주저하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나를 지탱해주던 지팡이를 던져야 합니다. 던질 때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을 수 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던졌을 때 뱀이 되었고 다시 잡을 때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던지는 것은 어렵습니다.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기포기이고 희생입니다. 자기자리를 버리는 일입니다. 하지만 자기지팡이를 던질 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말리엘문하에서 공부한 학벌과 명예를 버렸습니다. 로마의 시민권이라는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자랑하던 지팡이를 예수님을 위해 배설물처럼 던졌습니다.
이용규선교사님이 쓴 ‘내려놓음’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놓으라고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내려놓을 때 그것이 진정한 우리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려놓을 때 주어지는 가장 좋은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강이다. 내려놓음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자기가 죽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시는 과정 중에 꼭 거쳐야 할 단계이다. 세상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 일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 미디안 땅에서 사용하던 지팡이를 교회에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던졌다고 하면서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이해가 저물어 갑니다. 던져야 할 과거의 지팡이를 과감히 던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던짐의 지팡이를 보시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2. 믿음의 지팡이(20절)
20절,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모세가 미디안의 40년 생활을 과감히 청산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를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애굽이 어디입니까? 자기를 죽이려는 바로가 있는 땅입니다. 군사도 없이 지팡이만 가지고 있는 자기가 도저히 당할 수 없는 대제국이었습니다. 형 아론과 아내와 아들들이 전부였습니다. 너무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았기에 용기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나귀에 가족들을 태우고 개선장군처럼 애굽을 향하여 당당히 발걸음을 움직였습니다. 초라한 미디안광야의 목자복장이었을 것입니다. 잡고 있는 지팡이도 보잘것없었습니다.
하지만 지팡이의 소유자가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였습니다. 누구의 소유냐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 달라집니다. 하찮은 미디안광야에 굴러다니는 죽은 막대기에 불과해도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 환경을 이기고 바로를 이기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모세를 담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외모는 같았지만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있는 모세의 마음과 믿음이 달라졌습니다.
지팡이를 던지는 것으로 그쳤다면 미디안에서 다른 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지팡이 대신 다른 것을 손에 잡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잡고 살아야 합니다. 무엇이든 의지해야 합니다. 보이는 형상이나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이라도 의지해야 하기에 우상을 만들고 추구합니다. 모세는 자기의 지팡이를 던지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곧바로 잡았습니다. 능력의 지팡이를 잡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칼과 창을 피해서 황량한 광야를 헤매야 했고 깜깜한 동굴에 자신의 몸을 숨겨야 했습니다. 적국 블레셋에 정치적 망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을 꿈조차 꿀 수 없는 암흑과 같은 현실이었지만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붙잡았습니다. 그는 후에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하나님의 지팡이가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여러분 혼자의 힘으로 오셨습니까? 어떻게 우리교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내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려주어 억지로라도 잡았기 때문입니다. 내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내 지혜가 아니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팡이의 힘입니다. 믿음의 지팡이가 여기까지 인도했습니다.
(예화)징기스칸의 충고
징기스칸이 자기를 따르는 군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좌절을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테무친에서 '징기스칸'이 되었다.
나는 몽골의 푸른 늑대다.
너희는 신의 군대다.”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믿은 징기스칸도 위대한 몽골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징기스칸의 능력을 믿은 그의 군사들은 사기충천하여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하물며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시며 통치자이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있다면 담대할 수 있습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미디안 땅에서 양치는 목자였지만 담대하게 바로의 왕궁으로 걸어갈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믿음의 지팡이를 가진 사람은 자기와 환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미래를 향해 도전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암전문 병원인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에 31년간 재직했던 세계 최고 암전문의인 김의신박사가 국민일보와 대담을 했습니다. 그는 대담에서 암 예방과 치료에 대하여 다섯 가지로 말했습니다. “1)암에 대해 공부하라. 2)음식에 주의하라. 3)암전문가에게 맡기고 그를 신뢰하라. 4)삶과 암에 대해 겸손하라. 5)신앙을 가져라.” 입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암환자 중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죽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 밖에 모른다’는 믿음이 확고하다. 이런 환자들 가운데 건강을 되찾은 이들을 많이 목격했다. 또 신앙이 있는 사람은 암에 대한 저항력도 높다는 게 이미 연구 결과로 증명되고 있다. 교회 찬양대원들과 일반인들을 비교해보니 찬양대원들의 면역세포(일명 ‘NK세포’) 수가 일반인보다 무려 1000배나 많은 것으로 측정됐다. 면역세포가 많으면 암 치료도 잘되고 암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내 경험으로도 믿는 사람이 믿음 없는 사람보다 암을 이기는 힘이 강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손에 잡힌 하나님의 지팡이의 힘이 이렇게 대단합니다. 믿음의 지팡이를 잡으면 담대합니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삼하 22:29~30) 모세와 다윗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무모하게 애굽으로 갔듯이,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적진을 향해 달리며 가로막힌 성벽을 뛰어넘었습니다. 믿음의 지팡이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믿음의 지팡이를 잡았기에 두려움을 이겼습니다. 가로막힌 담과 성벽을 정면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가올 2013년이 애굽처럼 두렵고 떨리는 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지팡이를 잡고 달려가면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지팡이의 힘으로 말입니다.
믿음의 지팡이를 잡고 사명의 땅으로 담대히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3. 행함의 지팡이
출 7:10절,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모세는 믿음의 지팡이를 들고 바로 앞에 섰습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바로가 듣지 않자 지팡이로 여러 가지 이적을 행합니다. 바로 앞에서 지팡이를 던졌을 때 뱀이 되었습니다. 지팡이를 들어 나일강을 치자 물이 변하여 피가 되었습니다. 지팡이로 개구리와 이, 메뚜기를 나오게 했고 우박이 내리게 했습니다. 지팡이를 들어 홍해를 가리킬 때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는 지팡이를 잡고 산위에 올라 손을 들고 있을 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지팡이는 수십만 군대의 힘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믿음의 지팡이를 사용할 때 행함의 지팡이가 됩니다. 믿음의 지팡이가 있어도 사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던져야 할 때 던져야 뱀이 되었습니다. 들어야 할 때 들어야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쳐야 할 때 쳐야 나일강이 피가 되었고, 땅의 티끌을 칠 때 이가 되었습니다. 지팡이를 못 위에 펼 때 개구리들이 나왔습니다. 믿음의 지팡이를 잡고 행동으로 옮길 때 기적과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행함이 동반될 때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노라하고 가만히 있으면 믿음도 힘을 잃게 됩니다.
<마시멜로 이야기>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햇살 뜨거운 어느 여름 날 오후, 개구리 세 마리가 나뭇잎에 올라탄 채 유유히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나뭇잎이 거의 중간에 이르렀을 때, 그 중 한마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결심했다는 듯 단호하게 외쳤습니다.
"너무 더워. 난 물속으로 뛰어들 테야."
다른 개구리들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 이제 나뭇잎에는 몇 마리의 개구리가 남았을까요?
"두 마리요!"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뭇잎에는 여전히 개구리 세 마리가 남아있습니다.
어째서 그럴까?
뛰어들겠다는 "결심"과 정말 뛰어드는 "실천"은 전혀 다른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결심만 했을 뿐입니다. 개구리가 정말 물속으로 뛰어들지, 또는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앉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뛰어들겠노라, 큰소리만 치는 개구리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결심을 합니까?
다이어트 계획을 빈틈없이 세웠지만, 석 달 뒤에도 체중계의 눈금이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하고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은 하지만 여전히 따뜻한 이불속에서 뒤척이고 있습니다. 성경읽어야지 하면서 TV 앞에 앉아있습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교구의 구역장 권찰님들께 올해가 시작될 때 금년에는 꼭 성경을 한 번씩 읽자고 권면했습니다. 대답을 잘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주에 결산을 해보니 교구별로 10여명이 읽었습니다. 결심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릅니다.
믿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릅니다. 믿음이 있어도 행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약 2:22절입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말씀합니다. 온전한 믿음은 행함을 동반한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하지만 능력있는 믿음, 감동을 주는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날 때 가능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2010년에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개신교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7.6%, '보통'이라는 응답은 33.8%,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8.4%였습니다.
기독교인의 숫자는 많지만 말씀을 듣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참 신앙인이 적기 때문입니다. 신뢰받는 교회와 신앙인이 많아질 때 앞으로 한국교회의 미래는 밝아질 수 있습니다.
(예화)
고당 조만식 장로님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눈 때문에 학교 정문이 막히곤 했습니다. 고당은 꼭두새벽부터 나가 정문에서부터 운동장까지 모두 쓸었습니다. 당시 오산학교에서 고당으로부터 지도를 받았던 한경직 목사님은 고당에 대해 이렇게 피력했습니다.
“나는 일생동안 여러 은사들에게 배워왔지만 학생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실제로 모범을 보여주며 그의 전 생애를 희생한 교육자는 오직 고당 한 분뿐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결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사용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주신 지팡이를 잘못 사용하면 자기와 다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잘 사용하다가 실수를 했습니다.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지만 원망하고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화가 나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분노로 인한 행동이었지만 하나님은 물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성을 훼손했기에 모세는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무엇을 잡고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앞으로 무엇을 잡고 가시렵니까?
던짐의 지팡이, 믿음의 지팡이, 행함의 지팡이를 잡고 던질 것은 과감히 던지시기 바랍니다. 던진 것은 미련을 버리고, 믿음의 지팡이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지팡이를 잡고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행함의 지팡이로 믿음의 능력을 발휘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