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신 11:11~15
찬송: 309장, 310장
제목: 건너가서 받을 은혜
목표: 가나안땅에서 받을 은혜를 소망하며 살게 한다.
본문은 모세가 모압평지에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설교하는 내용입니다. 세편의 설교중에서 두 번째에 해당하는 설교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앞두고 요단강을 건너가서 받을 은혜를 설교하고 있습니다. 물론 광야생활을 하는 중에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을 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옷과 신발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고 불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광야를 지나 요단강을 건너가서 받을 은혜는 이전보다 더 놀라운 은혜를 약속하셨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가서 받을 은혜는
1. 주목받는 은혜(11~12절)
11-12절,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모세는 요단강을 건너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하게 될 약속의 땅은 하나님이 돌보시고 주목하시는 땅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입니다. 이는 가나안 땅이 산과 골짜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애굽 땅과 달리 전적으로 하늘의 비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땅임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가나안 땅이 전적으로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에 있을 때에만 땅으로서 가치를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지 않으면 땅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에 늘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수 있는 땅입니다. 겉보기에는 산과 골짜기로 이루어진 가나안의 지형이 넓은 평원으로 이루어진 애굽 땅보다 더 열악해 보이지만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땅이기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될 수 있습니다. 땅이 비옥하고 풍요로워 하나님의 돌보심이 필요없는 땅보다는 비록 비옥하지 못하고 하늘의 비만을 의지한다할지라도 하나님이 돌보시고 하나님의 눈이 항상 보살피는 땅이 은혜의 장소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보살핌이 없으면 내세울 것이 없는 땅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하나님이 돌보아주셔야 하는 땅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항상 주목하고 계시는 땅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머물러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에서 멀어지면 불행이 시작됩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세상적인 자유를 누릴지 몰라도 아버지의 품을 떠나면 불행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 죄입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난 것이 허랑방탕한 불행의 씨앗이 되었듯이 아버지 품에 있는 것이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안에 있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께 주목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시야 안에 살아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시면 죄를 지어도 징계하지 않습니다. 아들은 잘못할 때 아버지의 사랑의 징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목하시면 불편하고 신경 쓰이지만 죄를 멀리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이 뒤를 돌보아주거나 주목하면 출세의 길이 열립니다. 회사에서 사장님이 주목하는 사람이 되면 승진가도를 달립니다. 연예인들은 청중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하지만 요단강을 건너가서 거할 가나안땅은 하나님이 돌보시고 주목하시는 땅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항상 돌보아주시고 주목하십니다. 하나님이 주목하실 때 사는 길이 열리고 행복의 문이 열립니다.
(예화)
룻기에 보면 베들레헴에 살던 나오미가족이 흉년이 들자 모압땅에 가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효성스러운 자부 룻과 함께 외롭게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잘 봉양하였습니다. 하루는 룻이 식량을 위해 보아스의 밭에 가서 추수하는 일군들 뒤를 따르며 이삭줍기를 했습니다. 그때 보아스가 룻에게 관심을 가지고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년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룻 2:8-9)
그 때 룻은 대답합니다.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룻 2:10)
이방여인에 불과한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고 돌보아주는 보아스가 너무 감사했습니다. 보아스가 주목하자 룻은 이삭을 손쉽게 그리고 많이 주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사람의 밭주인이 주목하고 돌보아주어도 룻과 나오미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큰 울타리가 되었고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하물며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홍해를 갈라 육지처럼 건너게 하시고 태양을 멈추게 하여 전쟁에서 승리케 하신 하나님, 40년 동안 광야에서 먹고 마시고 살게 하신 그 하나님의 주목받는 백성이라면 무엇을 걱정하고 염려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돌보시면 40년간 광야에서도 살 수 있었습니다. 먹고 마실 물이 없는 광야에서 만나와 샘물을 공급하여 살게 하셨습니다. 지금 주어진 환경이 비옥하고 풍요롭지 않아도 하나님이 돌보시고 하나님의 눈이 응시하는 곳이면 은혜의 장소입니다. 아무리 사막과 같이 메마른 땅이라 해도 하나님이 돌보시면 옥토가 되고 풍요로운 축복의 땅이 될 수 있습니다. 자연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하나님이 주목하시면 보잘것없는 사람도 위대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우거하는 나그네로 살았지만 후손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특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새의 말째 아들 다윗도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아버지까지도 주목하지 않는 아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주목하고 계셨습니다. 들에서 홀로 양을 치는 다윗을 불러 그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지금은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처한 환경이 가나안 땅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광야에서 헤맨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돌보시고 주목하신다면 은혜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시고 연초부터 연말까지 항상 하나님의 눈이 주목하시며 영원한 가나안 땅까지 우리를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12년 1월 1일부터 오늘까지 돌보신 하나님은 올해가 끝나는 12월 31일까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아니 이 세상 끝 날까지 돌보시고 주목하십니다.
12절 후반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번역할 때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안에 있느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가나안 땅 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땅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 안에 사는 백성들의 삶까지도 구체적으로 돌보시고 살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땅 위에서 주목하실 뿐만 아니라 땅 안에서 구체적으로 돌보아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화)자녀를 양육할 때 부모님의 돌보심
어린자녀를 양육할 때 경험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어디에 있든지 부모님은 자녀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는 수시로 엄마를 쳐다보며 자기를 주목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엄마가 자기를 주목하여 보고 있음을 알 때 아이는 안심하고 놀게 됩니다. 아이가 노는 것에 집중하여 엄마를 의식하지 못할 때도 엄마는 언제나 아이에게 시선을 두고 있습니다.
이처럼 약속의 땅에 거하는 백성은 하나님의 주목받는 은혜를 누리며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눈동자가 우리를 향해 있습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십니다. 원수 마귀가 해치지 못하도록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안위해 주십니다. 연초부터 연말까지 하나님의 눈이 항상 우리 위에 머물러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건너가서 받을 은혜 둘째는
2. 때에 맞는 은혜(14절)
14절,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약속의 땅은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는 땅입니다. 적당한 비가 은혜입니다. 비가 많이 오면 재앙이 되기도 합니다. 작년처럼 갑자기 짧은 시간에 비가 많이 오면 폭우가 되어 농작물을 쓸어가고 산사태가 나게 하며 도로를 마비시키고 인명을 살상하게 됩니다. 반대로 올해처럼 비가 적게 와서 104년 만의 가뭄이 들면 농작물이 타들어가고 수확이 줄어듭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와도 문제지만 적게 와도 문제입니다. 적당히 내리는 것이 은혜로운 비입니다. 약속의 땅은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적당한 때에 내리는 땅입니다. 하나님이 자연계까지 적당하게 다스리고 조절해주시는 땅입니다.
이른 비는 가을비라고도 하는데, 10월과 11월 사이에 내리는 비로 파종을 위한 비입니다. 늦은 비는 봄비라고도 하는데, 3월과 4월에 내리는 비로 수확을 앞두고 곡식을 여물게 하는 비입니다. 이런 비를 하나님이 꼭 필요한 시기에 내려주시는 땅이 약속의 땅입니다. 비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적당한 때에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른비와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려주시기에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 비는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파종하기 전과 후에 비가 와야 싹이 나고 자랍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말라가는 농작물을 보면서 농민들의 가슴이 타들어갑니다. 하늘만 쳐다보며 비를 기다립니다. 적당한 때에 내리는 비는 생명의 생수입니다. 농작물을 살리고 만물을 소생케 하는 은혜의 단비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도 이른 비와 늦은 비처럼 때에 맞는 은혜의 단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시면 포기하고 절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죽을 것 같은 웅덩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광야를 걷다가 기진맥진 쓰러질 찰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는 복음성가 가사처럼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주시며’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해주시며 감싸주시는 때에 맞는 주님의 은혜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단강을 건너가서 약속의 땅에서 받을 은혜는 때에 맞는 은혜입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꼭 도와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룻기 2:3절입니다.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모압여인 룻이 고향을 등지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베들레헴에 살 때 이삭을 줍기 위해 밭에 나갔는데 우연히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갔습니다. 성경은 ‘우연히’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하지만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셨습니다. 룻을 위해 적당한 때에 보아스가 추수를 하게 하셨고 이삭을 줍는 룻을 보아스가 만나게 하나님이 때를 준비하셨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듯 보아스와 룻을 만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시간계획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두 사람에게 때에 맞는 하나님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보아스와 룻을 통해 다윗의 가문이 생기게 하시고 후에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만약에 룻이 추수가 끝난 다음에 베들레헴에 왔다면 보아스를 만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밭도 추수를 하였지만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만드신 것은 하나님이 때를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보아스와 룻에게는 이것이 때에 맞는 은혜입니다.
(예화)도스토예프스키의 일화
어느 젊은 사형수가 있었습니다.사형을 집행하던 날, 형장에 도착한 그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5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28년을 살아온 그 사형수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최후의 5분은 비록 짧았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5분을 어떻게 쓸까? 그 사형수는 고민 끝에 결정을 했습니다.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작별 기도를 하는데 2분, 오늘까지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곁에 있는 다른 사형수들에게 한 마디씩 작별 인사를 나누는데 2분, 나머지 1분은 눈에 보이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지금 최후의 순간까지 서있게 해준 땅에 감사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삼키면서 가족들과 친구들을 잠깐 생각하며 작별인사와 기도를 하는데 벌써 2분이 지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돌이켜 보려는 순간"아~! 이제 3분 후면 내 인생도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지나가 버린 28년이란 세월을 아껴 쓰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되었습니다. "아~! 다시 한 번 인생을 더 살 수만 있다면..." 하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순간!기적적으로 사형집행 중지명령이 내려와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구사일생으로 풀려 난 그는 그 후, 사형집행 직전에 주어졌던 그 5분간의 시간을 생각하며 평생 "시간의 소중함"을 간직하고 살았으며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마지막 순간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합니다.그 결과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영원한 만남"등 수많은 불후의 명작을 발표하여 톨스토이에 비견되는 세계적 문호로 성장하였습니다. 그 사형수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였습니다.
그에게 5분은 죽느냐 사느냐의 시간이었습니다. 때에 맞는 은혜가 아니었다면 죽었을 것이고 그의 불후의 명작들도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전도서 3장에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농부가 씨를 파종할 때가 있으면 수확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셔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도록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널 때도 적당한 때에 물이 갈라지고 흐르도록 하셨습니다. 광야생활 40년 동안도 때에 맞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동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만약에 낮에 불기둥을 주시고, 밤에 구름기둥을 주셨다면 오히려 더욱 힘들게 하셨을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가서 받을 은혜 역시 때에 맞는 은혜입니다.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은혜입니다. 죽을 자리에서 살도록 때에 맞는 은혜를 주십니다. 실패에서 성공으로 바뀌도록 때에 맞는 은혜를 주십니다. 슬픔에서 기쁨으로 변화되도록 때에 맞는 은혜를 주십니다. 주림에서 부요함으로 바뀌도록 때에 맞는 은혜를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생활 후에 요단을 건너가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주셔서 풍성한 곡식과 기쁨의 포도주와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음을 믿고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건너가서 받을 은혜 세 번째는
3. 채움받는 은혜(15절)
15절,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약속의 땅 가나안은 광야와는 다른 땅입니다. 하나님이 돌보시고 주목하시는 땅이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려주셔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뿐만 아니라 먹고 배부르게 주시는 땅입니다.
하나님은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고 배부르도록 채워주십니다. 세상에 배고픔만큼 서러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옛말에 ‘삼일을 굶으면 담을 넘는다.’는 말이 있듯이 배고픔은 참기 어렵습니다. 다이어트하느라 굶는 것은 참을만하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참는 것은 서글프고 비참한 일입니다.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매일 먹을 수 있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우리나라가 잘살게 되어 먹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인줄 믿습니다.
(예화)
저는 시골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자랐습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어 5남매를 키우고 공부시키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얼마나 잘 먹고 많이 먹었는지 모릅니다. 경쟁적으로 먹어서 그런지 밥을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팠습니다. 도시학교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농촌에서는 혼합곡을 먹도록 했습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책상에 올리고 뚜껑을 열어 선생님이 혼합곡 검사를 한 후에 밥을 먹곤 했습니다. 당시에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희는 집에서도 늘 혼합곡을 먹었기 때문에 도시락검사를 하고 말고가 없었습니다. 정말로 그 때는 하얀 쌀밥만 먹고 싶었습니다. 쌀밥을 달라고 하였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보리밥이 많이 섞인 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보리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돈을 내고 보리밥을 사 먹지는 않습니다. 물론 지금은 웰빙음식이라고 별미로 먹지만 그 당시 보리밥만을 먹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아픈 기억입니다. 가난과 배고픔의 서러움은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모릅니다.
룻기 2:14절에 보아스가 룻에게 먹을 것을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룻 2:14)
모압여인 룻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이삭줍기를 하여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이삭줍기를 하고 있을 때 추수하는 일군들의 식사시간이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주목하다가 식사자리에 초청했습니다. 룻은 배불리 먹고 남길 정도로 먹었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큰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해 룻에게 육신의 배를 채워주셨습니다. 남편이 없는 외로운 여인에게 보아스를 남편으로 주셨습니다. 보아스를 남편으로 모시게 되자 모든 것이 채워졌습니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가난과 외로움이 물러가고 사랑과 행복이 채워졌습니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채움받는 것도 은혜지만 그것들을 줄 수 있는 보아스를 신랑으로 모신 것이 가장 큰 복이고 은혜입니다. 모압여인 룻이 모압의 고향을 떠나 요단을 건너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왔을 때 하나님은 보아스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보아스를 통해 모든 것을 채워주셨습니다.
어려울 때 부족한 것을 채움 받는 것이 잊지 못할 은혜입니다.
(예화)70대 독자, 100만원 보내와… "부족한 전차표 값 1환 건네"
2010년 연말에 7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한 노인이 "50여년 전 고학생으로 어렵게 일하며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걸인 소년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뒤늦게나마 은혜를 갚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100만원을 조선일보사로 보내왔다.
편지봉투에 이름을 김철민이라고 쓴 이 노인은 자신이 대학 2학년이던 1954년 6월 하순 서울 신신백화점 신축공사 현장 인근에서 노동판 일감을 찾기 위해 전전하다 숙소로 돌아가려는 순간 수중에 6환밖에 없어 7환이던 전차표를 사지 못해 쩔쩔맸다고 했다. 김씨는 당시 발을 동동 구르던 차에 거리에서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얼굴로 구걸하던 5~6세가량의 어린 걸인이 다가와 1환을 건네줬다고 했다. 그는 당시 멋쩍었지만 이를 받아서 전차표를 샀다는 사연이다.
김씨는 "바로 전차가 들어와 제대로 인사도 못한 채 차에 올랐고 이후 56년이 훌쩍 흘렀지만, 당시 도움을 준 그 소년이 늘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며 "하지만 이후 많은 식솔을 부양하느라 정신없이 살아왔다"고 밝혔다. 그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고, 이름도 몰라 찾기 어렵겠지만 늦게나마 그 소년을 찾아 은혜를 꼭 갚고 싶다"는 애절한 뜻을 전했다.
그는 "나를 도운 그 소년은 아마 지금쯤 어엿한 가장이 됐겠지만 만약 찾지 못한다면 착하고 가난하지만 성실한 미대생 중 한두 명에게 물감이라도 사게 전달해 달라"는 뜻도 밝혔다. 자신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미대 진학을 포기했던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어려울 때 1환의 은혜를 잊지 못해 50여년이 지난 후에 그 은혜를 갚고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족한 1환을 채움 받은 것을 평생토록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영생을 채워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단을 건너가서 받을 은혜는 주목받는 은혜, 때에 맞는 은혜, 채움받는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기 위한 조건이 13절입니다. 조건 언약입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하나님은 돌보아주시고 연초부터 연말까지 항상 주목하시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려주시고, 먹고 배부르도록 풍성히 채워주시겠다고 모세를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건너야만 합니다. 지금 머물고 있는 장소에서는 받을 수 없습니다. 건너가야 합니다. 지금 머물고 있는 광야생활의 습관과 습성을 요단강에 버리고 건너야 합니다. 불순종과 원망과 불평의 광야를 뒤로하고 요단강을 건너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 요단강에 버려야 할 것들이 무엇입니까? 버리고 건너가야 합니다. 건너기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혼자 힘으로 못 건넌다고 걱정하지 맙시다. 건널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믿음을 주십니다.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발을 들여놓자 요단강이 갈라졌고 믿음을 가진 백성들이 그 뒤를 따라 건넜습니다. 믿고 순종하면 건널 수 있습니다.
믿고 순종하여 요단강을 건넌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면 약속의 땅에서 주목받는 은혜, 때에 맞는 은혜, 채움받는 은혜를 누리며 살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로 서는 생활 (0) | 2012.09.07 |
---|---|
장애물을 뛰어넘는 용기 (0) | 2012.08.28 |
다가오는 날 (0) | 2012.08.02 |
다니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0) | 2012.06.23 |
귀중한 사람 (0) | 2012.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