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노출/삶자락이야기

어머니의 눈물

하마사 2011. 12. 14. 15:43

조부님이 94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어린 시절 외가에 가면 늘 반겨주시고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외할아버지셨다.

방학만 하면 외가에 가기를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당시에는 기차를 타는 것이 재미였다.

지금은 자가용으로 1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비둘기호 기차를 타면 3시간이나 소요되었다.

시골소년이 기차역마다 모조리 서는 완행기차를 타는 것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외가까지는 꽤나 먼 거리였지만 먼지가 펄펄 나는 비포장도로를 동생들과 걸어서 가곤했다.

한번은 달리는 버스를 피한다고 길옆으로 비키다가 인분구덩이에 빠져 혼쭐이 난적도 있었다.

겨울이라 근처의 냇가에 가서 옷을 빨고 또 빨았지만 악취로 인해 민망을 당하기도 했다.

외가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곳이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과수원을 하던 외가에 가면 사과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가까운 냇가에서 고기도 잡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고기 잡는 것을 좋아하셔서 어린 손주들과 함께 고기를 잡기도 하셨다.

그랬던 외할아버지가 9남매의 자녀들로 84명의 후손을 두신 거대가문을 이루시고 천국에 가셨다.

요양병원에 계실 때 한번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생긴다.

발인예배와 하관예배에 참석하여 이 땅에서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드렸다.

하관할 때 맏딸인 어머님이 소리내어 우셨다.

일곱 살인 막내 딸 지은이가 할머니가 왜 우느냐고 질문한다.

설명해도 모를 딸에게 할머니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운다고 말해주었다.

70세가 넘으신 어머님이 ‘아버지’라고 하며 목놓아 슬피 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무리 연세가 들어도 아버지를 보내는 딸의 마음은 애처롭기만 하였다.

큰 딸이라고 유달리 사랑받으셨던 어머님이라 더 애달파하셨다.

나이에 관계없이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것은 큰 슬픔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부모님이 계시지 않은 사람이다.

부모님 없는 고아들은 정말 불쌍하다.

나이에 상관없이 부모님이 없으면 고아이다.

마음의 고향을 잃은 실향민과 같다.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의 눈물이 빨리 마르기를 기도한다.

이제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외가는 마음에서 멀리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처럼 후손들에게 후덕한 어른이 되고 싶다.

'자기노출 > 삶자락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끄러운 목사  (0) 2011.12.23
고향친구  (0) 2011.12.17
동문회 참석소감  (0) 2011.12.10
별난 감사  (0) 2011.12.03
예방이 우선  (0) 2011.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