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문회에서 계속 문자가 온다.
그동안 참석하지 못했지만 친구를 통해 전화번호가 알려진 후 문자가 계속왔다.
이번에는 목요일저녁이라 교회행사나 특별한 약속이 없어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지하철을 타고 강남의 약속장소로 갔다.
일찍 도착하여 익숙한 얼굴이 보이지 않아 뻘쭘했다.
동창회나 동문회에 참석하지 못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갔으니 이상했다.
명찰을 목에 걸고 빈자리에 앉아 기다리니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0년 만에 만났지만 옛날 모습이 남아있었다.
같은 테이블에 동창들이 자리를 잡고 명함을 교환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동문회 식순에 따라 행사를 진행하고 이후에 식사를 했다.
친구들의 소식을 들으니 이미 세상을 작별한 친구들도 있었다.
살아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자리를 옮기면서 명함을 교환하는 선배들이 있었지만 나를 목사로 소개했다.
서로 술을 권하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분위기가 되자 어떤 선배님이 오셔서 인사를 하면서 ‘뭐 이래 삭았냐’고 하신다.
농담인줄 알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말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술잔을 주고받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 사이다와 콜라를 마시고 있으려니 여간 어색하지 않았다.
과거에 군대생활과 직장생활 할 때도 술자리에 많이 앉아본 경험이 있었지만 십 수 년이 흐른 후에 많은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생소하기만 했다.
목사가 된 이후에도 가끔씩 친구들 모임에서 술자리에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기는 하지만 맨송맨송한 사람이 술 취한 사람들을 바라보면 이상하다.
같이 취해주어야 서로 흥이 돋고 재미있는데 그렇지 못하니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친구들은 목사가 술자리에 함께 앉아주는 것을 좋아한다.
30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반가웠는데 술이라는 매개체를 함께 나눌 수 없으니 어색하여 다음 모임에는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문회나 동창회에 참석하여 함께 어울리는 것도 선교의 일환일 수 있지만 목사의 틀 속에서 활동하던 사람이 전혀 다른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끼리끼리 모이는 것이 쉬운가 보다.
돌아오면서 지하철에서 생각해보았다.
받은 명함의 주인공들을 이런 자리에서 또 만날 수 있을까?
역시 물고기는 놀던 물에서 놀 때가 가장 편하고 좋은 것임을 실감했다.
술자리가 어색한 것을 보면 나도 목사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