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서울 사당동의 한 아파트 앞에 이사한 집에서 두고 간 가구들이 나왔다. 평소라면 쓰레기장으로 갔을 책상과 TV 받침대였지만 주민들은 물건을 유심히 살폈다. 유엔 사무총장 당선자가 쓰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재활용도 못할 낡은 가구들을 보며 집주인의 검소함에 놀랐다고 한다. 어떤 주민은 "그래도 기념품 아니냐"며 집으로 가져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뉴욕으로 가기 직전 살던 이 아파트엔 당선 축하 현수막이 걸렸다.
▶1970년 외교관이 된 반 총장의 첫 해외 임지는 인도 총영사관이었다. 그때 인도는 무덥고 후진적인 데다 남북 대치 공관으로 일만 많은 곳이었다. 그런데도 반 총장은 그곳 총영사에게 일을 배우겠다며 인도를 지원했다. 그때 총영사가 노신영 전 총리다. 늘 선배보다 앞선 승진이 부담스러웠던 그는 이사관 승진 때 선·후배 100여명에게 "아직 차례를 기다리는 선배들도 있는데 미안하다"는 편지를 보냈다.
▶그는 언제나 선배가 가장 함께 일하고 싶어했던 후배였다. 장관마다 그를 차관 혹은 보좌관의 1순위로 꼽았다. 외교부 차관 자리를 타의(他意)로 물러나던 날, 반 총장은 여비서 결혼식 주례를 서기로 했었다. 그는 혹시 주례가 안 올까 걱정하던 신부와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시간 먼저 식장에 도착했다. 그는 넉 달 뒤 한승수 전 외교장관이 제56차 유엔총회 의장이 되면서 의장 비서실장으로 유엔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반 총장은 2006년 8대 유엔 사무총장에 출마하면서 다그 함마르셸드 2대 사무총장을 자신의 역할모델로 꼽았다. 1956년 헝가리 민중봉기 때 초등학생 반기문은 학교를 대표해 함마르셸드 당시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낭독했었다. 스웨덴 출신인 함마르셸드는 냉전시대에 유엔이 권위를 쌓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1961년 내전 중이던 콩고로 가다 비행기 사고로 숨졌다. 그는 "유엔은 인류를 천국으로 만들기 위한 게 아니라 지옥에서 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을 남겼다.
▶반기문 총장이 22일 유엔총회에서 192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연임에 성공했다. 취임 초기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자기를 내세우기보다 조용히 귀 기울이며 설득하는 그의 리더십이 결국 인정을 받았다. 개인의 영광이자 국가적 경사다.
-조선일보 만물상, 2011/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