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편히 누워 자 본 일이 없다"
- ▲ 김의기 WTO 선임참사관
세계 무역전쟁 심장부 WTO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어폰 끼고 의자에 앉아 자면서도 영어 들어
대입 실패 때 펑펑 울었지만 "떨어져서 감사하다" 기도
다음 목표는 작가 오늘도 난 글을 쓴다
나는 WTO(세계무역기구)에서 16년째 일하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TO 본부는 세계 수십 개국에서 온 내로라하는 엘리트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곳이다. 42세 때 WTO에 들어온 이후 58세가 된 지금까지 나는 침대에서 편히 누워 잠을 자 본 일이 없다. 안락의자에 앉아서 이어폰을 끼고 영어를 들으면서 잔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WTO에서 버틸 수가 없다.
국제기구에서 16년간 일했으면 영어도사가 됐을 텐데, 아직도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이도 있다. 내가 영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서른이 넘어서였기 때문이다. 중국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수영에 도(道)가 통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물과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나이 들어 수영을 배우려 했다간 물에 빠져 죽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나는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내가 일하는 부서는 시장접근국이다. WTO는 소수정예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직원 수가 아주 적다. 우리 국은 모두 12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출신국이 한국·미국·스위스·영국·중국·브라질·멕시코·콜롬비아·짐바브웨 등 다양하다. 칠레 출신으로 제네바 주재 대사를 역임한 국장 아래 4명의 선임참사관이 6개의 위원회를 나누어 담당하고 있다. 나는 직원 3명과 함께 위원회 2개를 맡는다. 상품 원산지 규정의 통일화 업무와 관세를 적절히 매겼는지 평가하는 게 주업무다.
WTO 회원국 대표들은 회의석상에서 대부분 영어로 발언한다. 하지만 153개 나라에서 온 대표들은 하나의 언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온갖 형태의 발음으로 영어를 말한다. WTO 근무 초기에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이 바로 아프리카식 영어, 남미식 영어였다. 한참 동안 들어도 지금 영어를 듣고 있는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다. 이런 영어를 정확하게 알아듣고 대처하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다. 회의가 끝나면 발언내용을 요약해 그 다음 날 참석자들에게 보여준다. 속도와 정확성을 요하는 일이다.
-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나의 또 다른 업무는 개발도상국의 무역 담당 공무원들에게 WTO 협약을 설명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1년에 여섯 나라쯤 방문해 세미나를 한다. 혼자서 하루 6시간씩 사흘 또는 닷새간 강의하려면 영어의 밑천이 두둑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의자에 앉아서 자고, 자면서도 영어를 듣고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사람의 몸값은 ‘시장’에서 평가받는다. 내가 얼마짜리 인간이란 것을 시장이 평가해서 그만큼 소득이 생기게 된다. 영어에 도가 통하면 국내시장이 아니라 국제시장에서 몸값을 평가받을 수 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면 국내보다 연봉이 두 배쯤 뛴다. 이것을 깨달은 것은 서른이 넘어서였다.
나는 대학 입시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펑펑 울었다. 그때 철이 났는지 하느님께 이런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직 제대로 실력이 쌓이지도 않았는데 제가 시험에 붙었다면 다음 더 큰 경쟁에서는 틀림없이 실패하겠지요. 떨어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행정고시에는 누구보다 빨리 합격하여 입시 실패를 만회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기도가 통했는지 1975년 대학 3학년 재학 중 행시에 합격했고 그다음 해에 사무관으로 수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관세청과 재무부를 거쳐, 1995년 WTO 설립 당시 수백대 일의 경쟁을 뚫고 들어왔다. 현재 한국인은 네 명의 직원과 두 명의 인턴직원이 WTO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WTO의 한국인 1기로 조국에 진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한국인 직원을 한 명이라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 번의 실패 없이 최고 명문대를 나오고 공직에 들어온 친구가 나에게 약 올리듯 물은 적이 있다. “너는 대학시험을 볼 때, 나에게 졌다. 그런데 왜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이렇게 앙앙 대고 있느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패배는 이미 과거의 일이다. 나는 지금 너보다 일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영어도 잘 한다.” 대학입시나 대학 성적은 인생의 수많은 승부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제 나는 인생의 다음 목표를 정하고 있다. 한국말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한번 해 보자! 의욕은 다시 꿈틀대고 있다. 그동안 영어로만 말하고 영어로 쓰인 책만 읽다가 지난여름부터 한국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 동·서양 책들을 읽으면서 받은 깊은 감동들, 사람의 삶을 뒤흔든 새로운 생각들을 쓰고 있다. A4 용지로 거의 150쪽을 썼다. 늦어도 이번 겨울까지는 완성해서 출판할 예정이다. 그러니 직장인 WTO 일이 아니더라도 편히 잠자기는 틀렸다.
-조선일보, 20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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