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더 좋은 교사

하마사 2011. 5. 23. 21:22

본문: 민 27:12-23 찬송: 350장

제목: 더 좋은 교사

목표: 지금보다 더 좋은 교사가 되도록 한다.

 

 

교사지원센타에서 제작한 교사교육 강의안을 보았습니다. 첫 시간에 효과적인 반목회에 대한 강의안에 교사의 역할을 여러 가지로 기술한 것을 보았습니다. 창조자의 역할, 안내자, 통역자, 섬기는 자(봉사자), 양육자, 상담자, 학습자, 친구 8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교사의 역할이 이렇게도 중요하고 힘든 봉사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교사는 결국 하나님의 마음으로 학생들을 양육하여 성경말씀대로 세상을 살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쳐나가도록 도와주는 봉사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있어 교사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저의 둘째 아들은 중학교 3학년인데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잊지 못해 합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위해주셨기 때문에 그 선생님반의 아이들은 지금도 기억하고 연락한다고 합니다. 7살 된 막내딸 역시도 아빠 엄마의 말은 안 들어도 유치원선생님의 말씀에는 절대순종입니다. 유치원에서 가져오라는 것은 반드시 가져가야 합니다. 이처럼 아이들에게 있어 선생님은 대단한 존재입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의 영향력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교회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의 인성이나 가치관에 더 지대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모세를 통해 좋은 교사의 역할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한 후에 가장 열악한 환경인 광야에서 40년 동안 백성들을 이끌었던 위대한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앞으로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가 양육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이 살아가야할 땅은 영적으로는 광야와 같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좋은 환경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여러 가지 열악한 환경이 많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던 당시보다 영적환경은 더 어렵습니다.

영적으로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모세의 지도력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더 좋은 교사는 어떤 교사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부족함을 인정하는 교사(12-14)

12-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13]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의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14]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제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그 물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위대한 지도자이었지만 실수도 있었습니다. 물을 요구하며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노를 발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해치는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교사는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부족한 점과 약점이 있습니다. 부족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감당해야 합니다. 자기 약점과 부족을 인정하면서 감당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고민하고 갈등하며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할 때도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가 아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이 보이는 느보산에서 모세에게 죽음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한계상황입니다. 인간이 넘어설 수 없는 지점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 있듯이 사람인 교사가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으로 양육하려해도 안 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자신을 책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변하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언젠가는 되기 때문입니다. 안될 수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모든 아이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양육할 수 있다면 교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부족과 한계를 인정할 때 겸손하게 양육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광야생활 40년 동안 백성들을 인도하는 것이 모세의 사명이고 역할이었듯이 담당하고 있는 반 아이들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입니다.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했다고 성경이 기록할 정도로 온유했던 모세가 신광야 므리바에서 노를 발하여 하나님의 거룩성을 훼손했듯이 우리들도 언제나 실수할 수 있는 부족한 사람들임을 인정하고 늘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토록 위대한 지도력을 지닌 모세도 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말씀으로 바르게 가르쳐도 거역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 한계로 인해 겸손해지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기며 내려놓게 됩니다. 흠과 약점이 없는 완벽한 사람이 교사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겸손히 무릎 꿇고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양육하는 아이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통계자료가 있습니다.

금년 1월 4일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청소년 언어 사용 실태 및 건전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의 73.4%가 매일 유행어·은어를 포함한 욕설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여성가족부와 교육과학기술부·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0~11월 전국 청소년 8712명을 실태 조사한 결과입니다.

청소년 3명 중 1명꼴로는 욕을 습관적으로 사용(12.8%)하거나 자주(18.8%) 쓰는 것으로 나타났고, 욕을 '가끔' 쓴다고 답한 경우는 41.8%였습니다. '욕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한 경우는 5.4%에 그쳤습니다. 조사 대상의 절반이 욕설을 사용하는 이유로 '습관'(53%)을 들었고, 욕설을 사용할 때 '별 느낌이 없다'(47%)고 답했습니다. 욕설의 의미를 알고 있는 응답자는 27%에 그쳐 대다수가 뜻도 모르고 욕설을 쓰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언어가 거칠어지고 욕으로 채워진다는 것은 아이들의 인성이 그만큼 삭막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청소년들의 예지만 지금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도 언젠가 이런 문화에 접하게 되고 똑같이 그런 환경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이런 문화속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교회에 나옵니다. 욕을 하지 않고 심성이 착한 아이들만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밖에서는 욕을 하면서 교회에 와서는 그렇지 않은 척 살고 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교사들은 이런 아이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욕을 예로 든 것이지만 세상의 나쁜 문화에 젖어들어 교회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곳으로 생각하고 악한 세상과 친해져 가는 아이들 말입니다.

우리의 노력만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말로 바꿀 수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만남으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전화하고 문자 보내고 주일에 만나함께 예배드리는 것으로 우리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 위에 기도와 사랑이 덮여야 합니다. 사랑의 본체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에 담아야 하기에 기도해야 합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청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눈물어린 기도와 사랑이 결국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성경의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 아닙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함으로 기도하며 나아가는 더 좋은 교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배려하는 교사(15-17)

15-17절,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가로되 [16]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17]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는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죽음을 통보받은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고 오히려 백성들을 염려하며 목자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도록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백성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모습입니다. 양을 돌보는 목자의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모세는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목표로 삼고 홍해를 건너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이겨왔는데 막상 들어가지 못하고 죽는다고 했으니 실망이 컷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면서 모세를 힘들게 했던 백성들이었습니다. 사실상 자신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도 백성들이 므리바에서 모세를 원망한 것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평생 동안 백성들을 위해 수고하고 헌신했는데 그들로 인해 가나안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되었으니 자기에게 원망하고 불평하던 백성들이 야속하고 밉기도 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죽은 이후에 목자없는 양처럼 광야에서 방황하도록 버려두는 것이 속으로는 후련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들! 학생들을 지도할 때 힘들 수 있습니다.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고 땀을 흘리면서 사랑으로 양육하지만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싫은 소리를 들을 때도 있습니다.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교사를 하지 않으면 당하지 않아도 될 어려움을 겪습니다. 모세처럼 원망과 불평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빛이 나는 봉사도 아닙니다. 드러나지 않은 음지에서 묵묵히 하나님이 맡겨주신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봉사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죽음을 선고받은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커다란 아픔과 상처를 안겨 준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고 배려했습니다. 백성들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는 것은 자기의 사명이 아니었기에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자신의 처지보다 더 걱정하며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예화)

2007년에 전국교회를 대상으로 기도원에서 전도세미나를 개최했을 때의 일입니다. 전체적인 진행을 책임맡아 1박2일 동안 기도원에 거하면서 참가하신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을 정성껏 섬겼습니다.

숙식과 교재비 등 모든 비용을 전액 무료로 제공한 행사여서 한국교회를 섬기는 자세로 성도님들의 마음을 모아 준비한 뜻 깊은 세미나였습니다.

장로님들, 부목사님들, 차량부 집사님들, 여전도회원들, 찬양팀, 음향팀, 경비팀, 청소팀, 식당봉사자 등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큰 행사를 은혜롭게 마쳤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커피가 떨어졌다고 사무실로 전화하여 이왕 무료로 섬기려면 커피가 떨어지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물론 맞는 말이었지만 서운했습니다.

그런데 행사를 마치고 가실 때 현관 앞에서 인사를 드리는데 많은 분들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감동을 받았다는 말씀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하셨습니다. 오신 분들을 위해 이렇게 세심하게 배려해주느냐며 교회를 위해 꼭 기도하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서운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과 말로 모든 수고를 잊게 만든 기억이 있습니다.

 

배려하는 교사가 좋은 교사입니다. 자신보다 먼저 아이들을 배려해야 합니다. 다른 교사를 먼저 배려해야 합니다. 실수할 때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자기보다 열심히 봉사하는 교사가 있으면 시기하고 질투하지 말고 칭찬하며 더 열심히 봉사하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 합니다.

양을 돌보는 목자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목자에게는 모든 양이 귀합니다. 양의 건강상태와 성격을 알고 골고루 배려합니다. 편애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어린 생명들을 사랑으로 배려하며 감당하는 더 좋은 교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세워주는 교사(18-23)

18-2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19]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20]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21]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22]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23]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더라.”

 

우리나라 청소년이 느끼는 행복지수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낮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염유식 교수 연구팀은 지난 3~4월 전국 초등학교 4학년 이상 초·중·고생 6410명을 설문조사한 것을 토대로 관련 자료가 있는 23개 OECD 국가들과 비교한 결과 한국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66점으로 가장 낮았다고 밝혔습니다.

주관적 행복지수는 스스로 느끼는 건강 정도, 학교생활 만족도, 삶의 만족도, 소속감, 주변 상황 적응도, 외로움 등 6가지를 평가했으며, OECD 평균을 100점으로 했습니다.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스페인(113.6)이었고, 그리스(112.5)가 2위였습니다. 우리나라는 포르투갈(97.8)과 체코(96), 폴란드(94.9), 헝가리(86.7)보다도 훨씬 낮았습니다.

이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자기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면서 사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비해 풍족하게 살지만 행복지수는 낮습니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아이들이 자존감이 낮고 열등감을 가집니다.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아이들을 평가하기 때문에 점수가 낮은 아이들의 자존감이 낮습니다. 이렇게 성장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타인과 비교하며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믿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비관하여 자살에 이르기도 합니다. 반대로 세상을 거부하고 적대시하며 비인격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고 칭찬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을 세워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주눅 들고 뒤처지는 아이들을 격려하고 세워주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호수아를 세우는 장면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알고 죽기 전에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백성 앞에 세우고 안수하여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로 선출했습니다. 교사는 세워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잘 하는 어린이는 더 잘하도록 세워주고 비틀거리고 넘어진 아이는 일으켜 세워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화)

유고의 작은 시골마을 천주교 성당에서 신부가 미사를 집행 할 때에 수종드는 아이가 잔을 떨어뜨려 포도주가 쏟아졌습니다. 그러자 신부는 그 아이의 뺨을 때리면서 “다시는 제단에 나타나지 말아라." 하며 꾸짖었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커서 공산주의자가 된 유고슬라비아의 <티토>대통령입니다.

비슷한 일이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성당에서 신부가 미사를 집행하였는데 수종드는 아이가 잔을 떨어뜨려 포도주가 엎질러졌습니다. 그때 신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너는 커서 좋은 신부가 되겠구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유명한 "The Life of Christ"(그리스도라면 어떻게 사실까?)를 쓴 홀톤 쉰 신부입니다.

위로와 격려가 이렇게 극명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책망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공산주의자가 되게 했고, 격려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었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세워주었듯이 우리들도 세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워주는 사람의 반대는 넘어뜨리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넘어뜨리는 교사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을 절망과 죽음의 구덩이로 밀어 넣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사는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책망과 비판을 멀리하고 칭찬과 격려로 사람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예화>

치우칭지엔의《세상에서 가장 멋진 지혜 이야기》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뉴욕 부르클린 빈민가에서 태어난 흑인소년에게 새로 부임한 폴선생님은 흑인아이의 손금을 보면서 뉴욕 주지사가 될 거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무단결석, 폭력, 문제아로 낙인찍힌 한 흑인소년에게 준 이 칭찬은 그때부터 문제아에서 주지사의 꿈으로 바꿔나갔습니다. 이 흑인소년이 바로 51세에 뉴욕주의 53대 주지사이자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주지사가 된 로저 롤스입니다.

 

칭찬과 격려가 흑인 문제아에게 꿈을 심어주었고 마침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간증>

한 학기동안 대학에서 강의했던 시간강사 김봉선선생님의 관심과 격려에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던 배경 설명.

그분은 자신이 한 청년에게 그런 역할을 했는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계실 것입니다. 한 선생님의 격려가 사람을 바꿀 수 있습니다.

 

더 좋은 교사는 자기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당하는 교사입니다. 더 좋은 교사는 자신보다 남을 배려하고 위해주는 교사입니다. 더 좋은 교사는 칭찬과 격려로 사람을 세워주는 교사입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 교사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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