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사람

서남표 KAIST 총장

하마사 2011. 1. 29. 10:29

교수도 학생도 나를 엄청 미워한다
미국서 일할 때도 쫓겨날 뻔했다
목적이 옳으면 성공한다

KAIST(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는 '이과(理科)'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대학이다. 수재, 천재들이 많다.

2004년 이 학교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러플린 교수를 총장으로 모셔왔다. 그는 교수들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다 결국 2년 만에 중도하차했다.

이어 노벨상 수상자후보군에 속한 서남표(75) 총장이 2006년 취임했다. 취임 직후 그는 파란을 일으켰다. 전학생 학비면제 제도에 손을 댔고, 교수들의 정년보장제(테뉴어)에도 시비를 걸었다. 재임을 앞둔 지난해 결국 '서남표 재임 위기'라는 얘기가 나왔다. 성격이 독단적이어 그렇다, 구원(舊怨)이 있는 국회의원이 반대한다는 등의 얘기가 나왔다. 여론이 그의 편을 들었다. 재임에 성공했다.

그의 발명도 도마에 올랐다. 전기자동차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대신 엄청난 크기의 배터리가 필요하다. 서남표 총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배터리 대신 도로에 전기공급장치를 까는 새로운 전기자동차(OLEV) 프로젝트가 완성됐다.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항구 건설 대신 항구가 큰 선박을 찾아가는 모바일 하버(움직이는 항구) 프로젝트도 발표됐다. 정부는 획기적 아이디어에 500억원을 지원했다.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현실성이 없다'며 '서남표는 제2의 황우석'이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 번의 역전극이 펼쳐진다. 타임은 지난 연말, '2010년 세계 최고 발명품 50'에 'OLEV 프로젝트'를 올렸다. 경제인들의 국제회의 다보스포럼에서 28일 '차세대교통수단'이라는 주제로 전기자동차, 모바일 하버 등에 대해 강연한다. 한국계 과학자가 강연자로 초청받은 건 처음이다. 뉴욕시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은 지난 연말 편지를 보내왔다. '뉴욕에 KAIST 분교를 세운다면 99년간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 건물 짓는 돈을 대겠다.'

엄청난 돌파력의 소유자인 서남표 KAIST 총장은 매우 솔직했고, 웃음은 소년 같았다. 지지자들은 거기 환호하고, 반대자들은 그래서 더무섭다고 한다. 서 총장이 KAIST 본관 로비에 있는 조형물‘중중무진(重重無盡)’앞에 섰다.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지난해 참 힘들게 연임에 성공했다.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 학교에 굉장히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 때문에 KAIST에서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테뉴어 때문에 교수들도 스트레스받고, 공부 안 하면 수업료 낸다 하니 학생들도 힘들어지지 않았나."

―학생들에게 공부 못하면 수업료 받는데 왜 그랬나.

"한 학년 학생이 750명이니 전체 3000명이 정원이다. 취임해 보니 학생이 3800명이 넘더라. 수업료 받지 않으니 한 과목 들으면서 학교에 더 있는 거다. 그러니 정원 넘친 기숙사에서는 방이 좁다고 난리이고. 무엇보다 '책임지지 않는 사람'을 만들어 내면 나라에 도움이 안 된다. 똑똑하고 머리 좋을수록 책임감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 더 폐가 된다. 학교가 너무 공부만 하라고 한다고 불평하는데, 시간관리를 못해 그렇다. 시험 있으면 밤 12시까지 걱정만 하고 나서 공부를 하니 시간이 부족한 거다. 시간관리 못하면 사회에 나가서도 매우 어렵다."

―서 총장이 도입한 입학사정관제는 재야의 천재를 뽑아내는 훌륭한 제도라고 들었다. 그런데 그런 창의성 있는 인재를 뽑아 기존의 학점관리식 교육을 시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창의성은 직장인도, 장사하는 사람에게도 있다. 창의력을 발전시키려면 자연법칙, 기본법칙을 이해해야 한다. 기본원칙을 모르는 사람이 비행기를 발명하면 비행기가 떨어지고, 다리가 부서진다. 그거 공부한다고 창의성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꼭 A 학점만 받으라는 것도 아니다."

―국립대학에 벌금성 등록금을 부과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말이 안 된다. 그런 것을 안 받은 게 처음부터 문제였다. 왜 국민 세금으로 공부 안 하는 학생을 먹여 살려야 하나. 게다가 형편이 안되면 학교에서 빌려주겠다는 게 우리 정책이다. 미국 일류 대학은 다 비슷하다."

―원래 국립대가 돈 없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학교 아닌가.

"학생 중에 수업료 다 내는 사람은 1.85%로 극소수다. 바닥권에 있는 학생을 줄이자는 것이다. 다른 학생들이 압력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압력을 받으라는 거다. 세상에 압력 안 받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

신현종 기자
◆교수도, 학생도 스트레스 받는다

―그러나 학생이 자살하지 않았나. 지난 학생 관련해서 개편안 같은 것이 마련되고 있나(지난 8일 부산의 실업고 출신 로봇천재로 불렸던 학생이 자살했다. 경찰은 성적부진과 여자친구 문제라고 설명했다).

"정말 우수하고 쾌활한 학생이었다. 작년에 대전에서 부산까지 함께 KTX를 타고 가서 부산학생들 상대로 함께 강연도 했었다. 공고출신 KAIST 진학생이라 그 지역에선 정말 스타였다. 그 학생이 약을 먹고 나서 문자를 친구들한테 먼저 보냈다. 받은 친구들은 농담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 얘길 들은 친구 부모들이 설마 하면서 찾았으나 연락이 안 됐다. 그 학생이 도움을 청한 거였는데…. 우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 점을 개선하려고 한다."

―응급 구제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건가.

"어느 학교나 이런 문제가 고민일 것이다. 얼마 전 스탠퍼드대에서도 학생 셋이 사고로 죽었고, MIT에서도 같이 일하던 화공과 학과장 아들이 자살했다. 공부도 더 도와주려 하고 있다."

―학생 부모들은 만나봤나. 현재의 학점 시스템을 폐지한다거나 할 생각은.

"그거 폐지한다고 해결되겠나. 학생 부모님을 만났다. 자식 잃고 그렇게 어진 태도를 갖기는 쉽지 않은데, 정말 어진 분들이더라. 입학사정관제 덕에 아이가 학교에 들어와 좋아했다고 말씀하시더라. (학사경고에 따른) 수업료(납부)와 아이의 죽음과는 관련이 없다고 하시더라."

―그렇게 꿈이 많던 아이가 그런 일을 겪었는데 학교가 부족했던 점은 뭐였나.

"그 학생이 고민이 많았는데 그걸 교수나 카운슬러가 상담하고 도와줬어야 했다. 그게 안됐다. 취임 후 학교에 병원을 만들었다. 공부시키고 수업료 내라고 하는 대신 자살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해서 한 조치다."

―이런 사태를 미리 우려하고 있었나.

"어느 대학에나 있다. 그래서 병원을 만들고 아산병원 신경정신과 출신 의사를 모셨다. 앞으로 노력하겠지만 장담하긴 힘들다."

―MIT에서도 정년보장(테뉴어)에서 떨어진 제자가 죽었다고 하던데.

"참 똑똑한 사람이었다"

―똑똑한데 왜 떨어뜨렸나.

"MIT에서 학부와 박사과정을 내 밑에서 하고 위스콘신대 조교수로 갔다. 똑똑하고 머리가 팍팍 도는 사람이다. 내가 MIT로 끌고 왔다. 선배 교수가 반대를 했다. 재주가 많아 이것저것 잘하지만 학술적으로는 모자란다는 취지였다. 결국 안 됐다. 그 친구는 나중에 기업체로 갔다가 이후 노스웨스턴대에서 정년을 보장받았다. 그런데 그 친구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은 거다."

―총장께서 당시 결정권자였나.

"학과장은 아니지만 내가 책임자였다. 내가 강하게 밀어붙였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난 중립 의견을 냈다."

―테뉴어가 그렇게 엄격해야 하나.

"인간이 다 정(情)이 있으니 쉽지가 않다. 하지만 학교가 잘되려면 테뉴어 심사가 엄격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게 항상 맞는 것도 아니다. 줄 사람한테 안 주고, 줬더니 게을러지는 경우도 있다."

◆기초과학, 응용과학 합쳐야 산다

―기초과학계에서 총장에 대한 반감이 크다던데.

"기초과학자들 18명이 있는 고등과학원(KAIST 부설기관) 독립시켜달라는 주문을 내가 거부한 적이 있다. 독립해서 경영하려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하고, 다른 복잡한 사정도 있다. 생물도 긴 눈으로 보면 물리학 법칙으로 설명해야 하는 시대가 온다. 이제 기초과학도 풀지 못한 숙제를 푸는 학문적 접근뿐 아니라 인류의 문제를 푸는 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왜 KAIST에 500억원을 주느냐, 그 돈이면 1000명에게 5000만원씩 나눠줄 텐데' 하는 얘기도 하더라. 그런데 특별예산으로 배정된 것이다. 기초과학자에게 주지 말라는 얘기를 나는 한 적이 없다."

―교내에서 총장의 지지 반대세력 비율은 반반인가, 일부인가.

"내가 볼 땐 반반이다. 반대가 전혀 없다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반대가 100%라면 실패한 정책이다. 반반 정도가 딱 좋다. 시스템을 바꾸면 예전엔 덕을 봤지만 이제는 희생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나. 더욱이 한국사회에서 테뉴어가 안 됐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학과장 중심제로 바꾼 것도 반발이 크다. 전에는 신임교수가 학과장을 하고 선배 교수 말을 잘 듣는 구조였다. 지금은 프로젝트를 학과장이 거의 모두 결정한다. 학과장이 '노'라고 결정한 경우라면 총장도 하라고 못하도록 학칙에 정해놨다. 교수에 대한 인센티브 액수도 학장이 정한다. 대신 학과장이 책임을 지는 거다. 내가 대장먹고 있었는데 후배가 내 돈 받는 것까지 결정한다면 기분 나쁘고 불편한 게 맞다."

―그런 걸 왜 하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경쟁 못한다.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사람 머릿수대로 나눠 먹으면 경쟁력이 생기나. 선택과 집중이다."

―그래도 대단한 지성인들인데 이들이 테뉴어 때문에만 총장을 반대하겠나.

"누구는 내가 걷는 방식도 밉고, 누구는 내가 웃는 것도 미울 수 있겠지. 누가 싫은데 이유가 꼭 있나."

―혹 소통을 안 한 것은 아닌가.

"뉴욕시 분교 문제를 두고 교수들에게 물었더니 거의 대부분 가야 한다더라. 그렇게 소통이 잘되는 건 처음이었다.(웃음) 어떤 사람은 자기 주장대로 안 하면 소통이 안 된다고 하더라. 교수들이 '교수평의회' 두자고 하는데, 난 그거 하면 경쟁 되지 않는다고 본다.

―대학에 대부분 있지 않은가.

"미국 명문 중엔 스탠퍼드대학 외엔 없더라. 전기자동차의 경우, 대통령이 도와주고 우리가 서둘러 1년 내 서울대공원에 깔았다. MIT만 해도 학생 수준은 우리와 비슷하고, 교수는 두배, 예산은 3배, 기금은 10배다. 그런데 우리 전기자동차가 50대 발명품에 들어간 것 보고 MIT도 놀라더라. 우리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우리처럼 빨리하는 곳은 없다. 이런 속도로 가야 세계 제1의 대학이 된다."

―뭐든 다 열악하다며 어떻게 세계 최고가 되나. 서남표 총장이 있어서?

"MIT 친구들은 그렇게 얘기하더라. 큰 기관일수록 늦기 때문이다. MIT도 프로젝트 있으면 위원회 만들고 6개월 스터디한다. 게다가 교수들이 모이면 빨리 합의가 되나. 인류과제를 풀려면 이렇게 서둘러야 한다."

―인류의 당면 과제는 뭔가.

"EEWS다. 에너지(Energy) 환경(Environment) 물(Water)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광범위한 얘기다. 그렇지만 그렇게 정하니까 전기자동차도, 모바일 하버 개념도 나오게 된다. 배·기차·항공기 이런 기술은 이미 100년 전에 발명이 되어 기업이 많이 투자한 쪽이다. 대학이 이 분야에선 경쟁이 되지 않는다. 국회에서 예산안이 부결돼 모바일 하버 예산이 올해는 없다. 그런데 미국 해군 쪽에서 이 부분에 관심이 많더라. 이런식의 반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쫓겨날 뻔했다

―하긴 전과(前科)가 많더라.

"MIT 학과장(1991~2001) 시절, 처음엔 반대하더니 그만둘 때는 큰 잔치를 해주더라. 사실 50년대 미국에서는 기계공학이 잘나갔다. GM도 잘됐다. 그런데 세상은 변한다. 자동차는 기계공학에 컴퓨터공학을 더한 것이고, MRI 기술은 기계에 생물학을 더한 거다. 기계공학박사가 없는 다른 전공자를 기계과 교수로 뽑으니 난리가 났다. 날 쫓아내자는 사람이 절반이 됐다."(그가 10년간 학장을 하면서 MIT 기계과는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1984~88), 정부기구인 미 국립과학재단(NSF)에는 어떻게 가게 됐나.

"왜 나를 선택했는지 정말 나도 모르겠다. 아마 70년부터 MIT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업체랑 많은 프로젝트를 추진해서 성공한 전례 때문이 아닌가 한다. 당시 MIT에서는 우리가 흔히 쓰는 플라스틱 소재 연구는 안 했다. 나는 이걸 하려고 내가 알던 기업에서 5억원(지금 돈 50억~60억원)쯤을 모아 연구비로 썼다. 그게 잘되니까 MIT에서 연구소를 만들라고 해서 7년을 했다. 어느 날 백악관서 전화가 왔다. 난 정치적인 사람도 아니고, 애들이 비싼 사립학교 다니는데 등록금 대기도 힘들어 갈까 말까 고민했다. 차관보급인데, MIT에서 올리는 수입보다 뚝 떨어졌다. 집사람이 1년만 하고 나오라더라."

―뭘 했나.

"조직을 3개월 만에 재정비했다. 화장실 위치 파악하기에도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했다고들 하더라. 1년 후 나가려고 했더니 더 있으라 해서 결국 4년을 하다가 나왔다."

―도중에 개혁에 대한 반발이 많았다고 하던데.

"우려하는 과학자 모임(Concerned Engineers of America)이 만들어져 직원 1600명이 전부 서명해 백악관에 보냈다. 나 쫓아내라고. 그런데 백악관이 무시했다. 퇴임할 때, 미 국회에서 일 잘했다고 특별히 의회 기록에 넣어 줬다." (그는 공과대처럼 되어 있던 조직을 개편해 아이디어만 좋다면 편지 한장으로도 연구비를 받도록 하는 등 조직을 혁신했다)

―전기차로도 비난을 많이 받았는데, 왜 초반에 설명하지 않았나. '제2의 황우석'이란 얘기는 듣지 않았을 것 아닌가.

"변명해 봐야 안 듣겠다는 사람은 듣지 않는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준다. 처음엔 '미국에서 10년 전에 실패했는데 우리가 가능하겠느냐'더니 그걸 증명하니 다음엔 그걸 무슨 변압기로 생각했는지 참새구이 되면 어찌하느냐며 안정성 시비를 걸더라. 그건 기초 상식에 해당하는 문제인데…. 그다음엔 경제성이 떨어진다더라. 그게 다 같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외국에서 반응이 오니 이제 잠잠해졌다. 시간이 해결해주더라. 연구한 교수들이 외국에서 초청받아 강연 많이 다닌다."

―공개적으로 메커니즘을 설명했으면 괜찮지 않았을까.

"국제적으로 180가지 특허를 신청했다. 그것 때문에. 기술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 일이다. 사실 이게 우리 1학년들도 알고 있는 수준의 지식이다. 창의적 발상의 문제다."

―그러면 그런 전기차 프로젝트 디자인은 총장께서 한 것인가. 아무도 못한 것을 어떻게 카이스트가 했나.

"내가 아이디어를 내고, 전기공학 등 각 분야 전문교수가 디테일을 만들어낸 거다."

―그럼 총장님이 천재인가.

"나는 외국에서 못한 것도 몰랐다. 생각하니까 될 것 같아서 했다. 신성장동력단 단장을 할 때, 나는 전기차는 배터리가 너무 커서 안 되겠다 생각했다. 그럼 땅에서 뽑아내면 되지 않나 생각했다. 내가 연구한 분야가 네 분야쯤 된다. 설계이론도 내 전공 중 하나인데 남들보다는 그런 쪽 생각이 빨리 돌아간다."

―블룸버그 시장 얘기, 캠퍼스 유치하겠다는 얘기는 어떻게 나왔나.

"내가 지난 크리스마스에 블룸버그 뉴욕시장에게 '뉴욕시내에 우리 전기차를 깔자'고 편지를 써놨다. 딸들이 편지가 너무 딱딱하다고 해서 다시 편지를 정리하고 있는데, 거기서 편지가 온 거다. 거기서 99년간 땅을 임대해주고, 건물 지을 돈을 주겠다고 한다. 우리는 운영비를 내야 하는데, 연간 1000억원은 들어갈 거다. 정부와 기업에서 도와주면 가능할 것 같다."

―다른 데가 아니고 왜 KAIST인가.

"스탠퍼드도 초청받았는데 안 가겠다고 했다더라. 거긴 이미 서부에 있으니까. 그런데 자기가 내 입장이라면 들어갈 거라 하더라. 세계 중심부에 캠퍼스가 있다는 거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는 거다. 우리가 뉴욕에 자리를 잡았으면 인천 송도에 외국 학교가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이스라엘 대통령도 방문했었다.

"처음 왔을 땐, 너희가 뭘 하겠느냐 그런 태도였다. 대공원에서 전기차 타더니 달라지더라. 거기 전기자동차는 무지막지한 배터리를 싣고 다닌다. 우리는 정말 우아한(elegant) 솔루션 아닌가."

◆난 개혁에 매달리는 게 아니다

―계속 시스템 개혁에 집착하는 이유는. 한국이 그렇게 '개판'인 것 같나.

"그렇지는 않다. 미국서도 MIT에서 시스템 고쳐야 한다니까 4개월 만에 학과장 그만두라는 사람이 반이었다. 그러나 내 경험상, 목적이 옳으면 성공한다. KAIST가 세계 최고 대학이 된다는 목표는 옳다. 그러니까 그것은 성공한다는 것이다."

―카이스트 개혁이 인생에서 무엇인가.

"개혁을 위해서 개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개혁하는 거다. 난 KAIST 개혁이 아니라 세계 최고 대학을 만들러 온 거다. 과거의 방법으론 안 돼서 새 방법 쓰는 건데 그걸 남들이 개혁이라고 부른다. 한국에도 세계 최고의 대학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한국 사람이 잘살고, 다른 나라 사람도 잘살지 않나. 인류를 위해서 내가 그런 것을 해야 한다."

―KAIST가 한국 대학이라 더 애정이 많나.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다른 나라 대학에서 그런 제의가 왔다 해도 내가 수락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긴 미국서 태어나 한국말 못하는 손자들도 김치 잘 먹고, 한국 축구 응원하는 것 보면 한국 피가 흘러서 그런 것 아니겠나."

―그때 좀 너그러웠어야 했다 한다든가 하는 순간이 있나. 욕먹는 것도 지겹지 않나.

"욕먹으면 오래 산다더라."

―새벽 3시에 메일을 보내도 답장을 한다는데, 원래 강골인가.

"운동을 따로 하지는 않고, 일을 익사이팅하게 해서 힘이 나는 것 아니겠나. 일할 때 사심은 없다. KAIST 한번 잘 해보겠다 하는 욕심은 있어도."

―이번 임기 마치면 뭐 하실 건가.

"놀 거다."

―그냥 노실 건가.

"물론이다. 보스턴에 작은 집이 있는데 그 앞바다에 조개가 많이 난다. 홍합·대합·조개 천지다. 플루트 배우면서."

―다른 장관 같은 것은 안 할 건가. 잘난 척하는 것은 카이스트 총장으로 끝인가.

"그렇다. 조개 캘 거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다 1949년 미 컬럼비아대로 유학, 이후 미국에서 최초의 '한국문학' 교수가 된 고(故) 서두수 박사의 아들인 서남표. 열차기관사가 되고 싶었던 그는 1954년 아버지가 있는 미국에 이민 간 후에는 배를 만들고 싶어 미국 MIT에 진학했다. 앞으로도 그는 세상과 또 부딪칠지도 모른다. 법적으로는 미국사람인 이 사람은 이상하게 한국사람 같다. 그 특유의 직선으로 달리기, 밀어붙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노년들처럼 많이 이뤘고, 많이 잃기도 한 것 같다.
서남표 KAIST 총장이 28일 다보스포럼에서 '차세대 교통수단(Smart Mobility: The Future Today)'이라는 주제로 초청 강연을 펼친다. 스위스의 휴양도시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개최하는 다보스포럼은 각국 정·재계 주요 인사 수천 명이 참석하는 국제회의다. /신현종 기자
KAIST는 미래형 교통·물류 기술로 '온라인(online)전기차'와 '모바일하버(mobile harbor)'를 개발하고 있다. 통상 컨테이너 박스를 적재한 화물선이 하역을 위해 항구로 입항하지만, 반대로 부두가 화물선으로 접근해 짐을 받는 이동식 부두가 모바일하버이다. 온라인전기차는 주행 중에 도로에서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받는 전기차를 말한다. /신현종 기자

-조선일보, 20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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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사태 그 뒤' 서남표 총장

“내겐 늘 반대세력 있어… 소통 부족? 그게 뭔지 이해 안 될 때도”
“공무원은 규정대로만 큰 변화를 담당 못해 나를 좋아하지 않아”
“서울대 교수들의 비판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자기 일이나 잘 하지”

 

캠퍼스에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건물 바깥으로 학생들 모습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게시판에는 대자보도 없었다.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 같았다.

서남표(75) 총장도 나를 그렇게 맞고 싶었을 것이다. '카이스트 사태'가 있고서 언론과의 첫 인터뷰였다.

"이번 사태로 배운 게 있다면 우리 학생들이 성숙하다는 점이다. 처음엔 다 때려 부술 것 같았다. 그런 학생들이 투표에서 '개혁은 계속 돼야 한다'고 했다. 정말 놀랐다. 편하게 살자고 할 줄 알았지."

―만약 학생투표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면?

"…내가 남아있기가 그렇겠지. 나는 카이스트를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서 와있다. 솔직히 그 일 때문에 있는 것이다. 안 그러면 내가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지. 미국에는 내가 살 집이 있고 아들과 손자들도 있다."

―그 전만 해도 총장은 우리 사회의 '개혁 스타'였다. 이제는 '얼치기 개혁'의 표본으로 욕을 먹고 있다. 특히 젊은 층에서 '안티'가 많다.

"인터넷에 들어가기가 불편하다. 별별 욕을 많이 하는데 어떤 점은 이해가 안 가고…."

―이번 사태가 터지자 일부 서울대 교수들이 '서남표 총장은 물러나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인터뷰 동안 그는 유일하게 감정을 드러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자기 일이나 잘하면 될 텐데. 카이스트에 대해 그렇게 잘 알고서 하는 말인가. 우리 학생과 학부모들이 받을 상처를 생각하지도 않나. 내가 여기 온 뒤로 서울대에서 계속 그렇게 해왔다. 우리가 도로 밑에서 전기를 받아 움직이는 '온라인 전기차' 발명에 들어갔을 때도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제2의 황우석'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서울대공원에서 전기버스 3대가 달리고 있다. 서울과 여수, 미국 보스턴 공항에서도 얘기가 오간다."

―솔직히 나도 총장이 책임지고 결국 사퇴할 것이라고 봤다.

"일단은 사태 수습을 해야 했고…, 주위에서 무책임하게 떠나면 안 된다는 이들이 많았다."

―총장 연임(連任)을 안 하고 작년에 떠났으면 '우상'으로 남았을 텐데. 그런 생각을 안 해봤나?

"안 해봤다면 거짓말이겠고…. 당초 미국서 카이스트 총장을 제안받았을 때 여러 차례 거절했다. 카이스트를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바꿀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고서야 수락했다. 나는 확신이 없었으면 오지도 않았다. 임기 4년을 마칠 무렵 연임 생각은 없었다."

―교육과학부의 반대로 총장 연임이 어려웠으나 본인의 의지로 뒤집은 걸로 나는 들었다.

"당초 그만두려고 하자 교과부에서 더 맡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총장 임기가 끝나기 몇달 전부터 사방에서 '운동'을 하더라. 교과부에서도 딴말이 나왔다. 이미 그때는 내가 연임을 하겠다는 서명을 한 뒤였다. 그렇게 흔들려서 물러나면 이상해지지 않나. 무엇보다 내게 꼭 있으라고 한 사람들이 많았다."

―자신에게 좋은 쪽으로 해주는 말만 귀담아듣는가?

"이는 내 경험에서 나왔다. 내가 MIT(매사추세츠 공대)에서 학과장을 맡아 개혁할 때도 반발이 심했다. 동료들의 욕을 먹는 것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 그때도 몇몇 지인이 '당신이 지금 그만두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이 다음에는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말렸다. 그래서 3년을 마치고 그만두려고 했던 게 9년을 했다. 현재 내 보스는 이사회다. 거기서 그만두라고 하면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이사회에서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 이 문제로 총장이 사퇴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내 인생에서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내 욕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말 없는 다수는 지지해줬다."

서남표 총장은“한국 부모들은 대학생 자녀를‘어른’이 아닌‘아이’로 키운다”말했다. ☞ 동영상 chosun.com 신현종기자 shin69@chosun.com
―이번 사태 때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바로 이 자리에서 네 번째 학생이 자살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다. 세 번째 자살 학생이 있고서 9일 만이었다."

―이게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나?

"책임이고 뭐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솔직히 젊은 학생들이 그런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고 보나?

"원인은 학생 개인과 학교, 우리 사회 모두에 있다. 카이스트 학생은 대부분 과학고 출신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를 받는 등 심한 공부 압박에 눌러왔다. 다른 대학에는 입학하면 좀 느슨해진다. 하지만 카이스트는 더 힘들어진다. 스프링에 눌려 있던 그런 긴장 상태가 쌓이고 쌓였다가 이번에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성적에 따른 수업료 차등제' 같은 '서남표식 개혁'이 거기에 일조하지 않았나?

"당초 그걸 시작한 이유는 제때 졸업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해마다 졸업을 안 하는 학생들이 수백명이나 됐다. 거의 한 학년이 따로 더 있는 셈이었다. 이들에게도 국민 세금으로 기숙사, 음식, 학비가 공짜다. 똑똑한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졸업하고 사회에서 공헌해야지, 학점이 잘 나올 때까지 계속 같은 과목을 선택한다? 잘못하면 다시 한다? 이는 삶의 태도 문제다. 사회에 나가면 다시 한다는 게 과연 몇 번이나 주어지나. 이렇게 쉽게 말이다."

―하지만 총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젊은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해 큰 꿈을 안 갖는다. 안정지향적으로 살면 안 된다"고 했다.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성적'에 매이게 한 셈이다. 이율배반 아닌가?

"자기가 노력하고 책임지고 실패하는 경우는 괜찮다는 뜻이다. 카이스트에는 다들 1등 하는 아이들이 온다. 하지만 이 안에서도 성적 서열이 생긴다. 이것도 배워야 한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사회로 나가면 그런 상황을 늘 겪게 되지 않는가. 한번 뒤처진다고 해서 세상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게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

―다른 차원의 비판도 있다. 과연 성적에 매이게 해서 창의성 있는 학생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어느 정도 지식을 쌓아야 한다. 우리는 학문을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 이후 '차등 수업료'에 관해 조사해봤다. 학생들이 모두 반대했을 것으로 생각하나? 절반으로 갈렸다. 하지만 워낙 이 문제로 시끄러웠으니 일단 폐지할 계획이다."

―총장이 추진해온 '영어 강의 전면 도입' '교수정년보장 심사' 등도 원점으로 돌릴 계획인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이번 사태가 났다고 해서 세계에서 가장 좋은 과학대학을 만든다는 목적이 바뀔 수 없다. 학생들 스스로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한다. 교수 대다수도, 이사회도 그렇다. 나는 앞으로 강의 방식도 개혁할 것이다. 우리 교수가 강의실에서 꼭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은 맞지 않다. 가령 물리학이라면, 세계에서 물리학을 가장 잘 가르치는 교수의 강의를 녹화해서 보면 된다. 우리 교수가 잘하는 강의는 다른 대학에 보내고."

―총장의 개혁 방향에 공감하는 이들조차 추진 과정에서의 독선과 소통부족을 지적한다.

"내 경우 항상 반대가 있었다. 반대가 없다면 그건 개혁이 아니다. 다만 반대세력이 얼마나 있으면 좋은가. 소통을 잘하면 반대세력이 줄어들 게 아닌가. 아마 그럴지 모른다. 그런데 소통을 어떻게 정의(定義) 하느냐가 문제다. 사실은 소통이 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어쩌면 그게 똑똑하고 성공한 사람의 특성일지 모른다.

"소통은 양쪽의 수준과 생각이 대략 맞아야 이뤄진다. 내가 메시지를 보내도 저쪽에서 안 받을 수 있고, 저쪽에서 보내도 내가 안 받을 수 있다. 아무리 오랫동안 얘기해도 생각이 다르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가령 몇년 전부터 우리 교수들은 학내 의사결정기구인 '교수평의회'를 만들자고 했다. 나는 쭉 반대해왔다. 숱하게 설득했다. 회의만 하고 있으면 언제 일을 하고 언제 세계 대학과 경쟁할 수 있나. 카이스트의 장점은 빠른 결정이다. 목에 쇳덩이를 달고 있으면 뛰지 못한다."

―교수 정년보장(테누어) 심사에서 38명 중 15명이 탈락한 적이 있다. 교수들로서는 스트레스와 자존심의 상처를 받고 있다. 어떤 교수는 '리더는 누워있는 돌도 춤추게 만들어야 한다'며 총장을 비판했다. 자존심이 상한 교수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테뉴어 심사위원회에서는 더 경쟁을 시키자고 한다. 이 제도는 내가 남아있든 떠나든 정착됐다. 큰일을 하려면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총장께서는 경쟁을 좋아하는데, 다만 인간에 대한 이해가 빠져 있는 것 같다.

"경쟁이 다 좋고 다 나쁜 것도 아니다. 양면이 있다. 경쟁이 없었으면 삼성이 생겨나지 않았고, 한국도 필리핀처럼 됐을 것이다. 그러나 경쟁 과정에서는 탈락자들이 생겨난다. 어린애를 안 낳거나, 자살률이 높은 것도 경쟁사회에서 온다. 경쟁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줄여야 한다. 그럼에도 카이스트는 나라 장래를 위해 경쟁을 안 할 수 없다. 앞으로 우리는 지식기반 기술로 살아가야 한다. 더 이상 남의 기술을 베끼거나 값싼 가격으로 팔아먹을 수 없다. 이게 카이스트에 주어진 운명이다."

―교과부에서도 총장의 독선과 고집에 불만이 많은 것 같다.

"나를 안 좋아한다고 들었다. 공무원은 큰 변화를 담당하지 못한다. 원래 있는 규정대로 해야 하니까. 교과부와 잘 지내고 싶은데 쉽지 않다. 교과부 규정으로는 신임교수 임용이 15명인데, 나는 150명을 더 뽑았다. 왜 미운 짓을 하느냐?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교가 망한다. 또 교과부에 일일이 보고를 잘 하지 않으니까, 화가 날 것이다."

―주위의 인심을 잃고 욕을 얻어먹으면서까지 개혁은 할 만한 것인가? 이는 개혁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개혁은 앞날을 위하고 후배 세대를 위해 하는 것이다. 과거에 배운 이론으로 밥 먹고 사는 현재의 교수들은 변화를 좋아할 리 없다. 하지만 현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시간이 가면 뒤로 계속 밀려난다는 뜻도 된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에 갔다. 접시닦이 등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기도 했다. MIT공대를 나와 카네기멜런대학에서 기계공학박사를 받았다. MIT 기계공학과장과 미국국립과학재단 공학부문 부총재를 지냈다. 카이스트 총장으로 온 것은 2006년이다.

―혼자 힘으로 모든 걸 극복하고 성공한 총장의 입장에서 요즘 학생들이 나약해 보일 수도 있겠다.

"대학생만의 문제가 아니고 부모의 문제가 더 크다. 미국에서는 자녀가 18살이 되면 내보낸다. 경제적 지원만 좀 해줄 뿐이다. 내가 MIT에서 학과장을 할 때 '친구 아들이 대학원에 들어오고 싶어하니 한번 만나주라'는 부탁을 받았다. 내 사무실에 어머니를 앞세우고 그 학생이 우물쭈물 따라왔다. 내가 말했다. '누가 지원 하나. 어머니가 입학하시려는가. 석사를 하러 온 사람으로서 준비가 안 됐다. 내년에 아들 혼자서 다시 오라.' 한국 부모들은 대학생 자녀를 '어른'이 아닌 아이로 키운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라게 해야 한다. 넘어지고 코피도 나는 과정을 거쳐야지, 손에 흙이 묻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한다."

그는 국내 대학총장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조선일보, 2011/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