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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완서씨의 작품 세계와 발자취

하마사 2011. 1. 24. 09:16

[소설가 박완서씨의 작품 세계와 발자취]

전쟁·분단·중산층의 상처 위로… 한국 현대사 따뜻하게 보듬다

명쾌하고 거침없는 서술, 인간의 속성 훤히 드러내
'그 많던 싱아…' 100만부… 세대초월 사랑받은 국민작가

"6·25전쟁 통에 오빠와 삼촌을 잃고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로부터 온갖 수모를 겪을 때, 그걸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은 언젠가는 저 자들을 악인(惡人)으로 등장시켜 마음껏 징벌하는 소설을 쓰리라는 복수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나도록 증오와 복수심만으로는 소설이 써지지 않았습니다. '나목'으로 나이 마흔에 등단해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지요."

박완서씨가 지난해‘현대문학’2월호에 마지막 단편‘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를 발표한 직후 자택 서재에서의 모습. 박씨는“나는‘영원한 현역작가’로 불러줄 때 기분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주완중기자 wjjoo@chosun.com

22일 영면한 소설가 박완서는 1970년 '나목'으로 등단한 이후 여성의 몸에 새겨진 전쟁의 상흔을 쉼 없이 되새김질하면서도 사랑과 용서·화해의 높은 세계를 노래하며 한국 문학의 찬란한 봉우리로 우뚝 섰다. 6·25전쟁 체험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소재를 다룬 '엄마의 말뚝' 연작과 '그 남자의 집'은 남성 작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여성의 체험이라는 새로운 프리즘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큰 문학적 의미를 지닌다. 박완서는 인간의 내면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는 데 능했으며, 이를 명쾌하고 거침없는 서사로 표현한 탁월한 이야기꾼이었다. '휘청거리는 오후' '도시의 청년' 등에서 그녀는 197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등장한 중산층의 속물화된 일상과 허위의식, 세속적 탐욕을 신랄한 문체로 꼬집었다. 작가는 노년에 이르러서는 중산층 도시 여성들의 일상도 즐겨 소재로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중년 여성의 내면에 들어찬 헛된 욕심과 위선을 놀랍도록 정교하게 포착하면서도 그런 속성 또한 인간의 본질적 모습임을 인정함으로써 복잡하고 다면적인 인간 이해의 경지를 보여줬다.

박완서는 문학적 성취와 독자의 사랑을 동시에 거머쥔 행복한 작가였다. 1992년 출간한 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1930년대 고향 개풍에서의 어린 시절과 1950년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20대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전쟁을 기억한 작품으로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그녀가 77세의 고령에 발표한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도 30만부나 나가며 그녀가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국민작가임을 증명했다.

노년의 박완서는 '부숭이의 땅힘'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등 동화집을 쓰며 세상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기쁨을 어린이들에게 전하려 애썼다. 지난해 소설가 정이현씨가 엄마가 되자 젊은 부부와 아기가 그려진 엽서에다 "아가야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서 엄마 아빠의 기쁨이 되거라. 박완서 할머니가"라고 써서 주었다.

김수환 추기경과 나눈 아름다운 교유를 통해서도 그녀의 인간됨을 엿볼 수 있다. 2009년 김 추기경의 선종을 접한 박완서씨는 "그분은 정의를 위해 박해받고 쫓기는 이들을 말없이 그분의 날개로 덮고 품으셨을 뿐, 결코 선동하거나 부추기지는 않으셨다. 만약 그분까지 투쟁적이었다면 그분의 그늘, 그분의 날개 밑이 그렇게 편했을 리가 없다"고 했다. 김 추기경의 너그러운 인품과 넉넉한 포용의 경지는 곧 그녀가 삶에서 추구했던 덕목이었다.

박완서는 고향 방문을 염원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내 식의 귀향'이란 글에서 그녀는 고향에 가지 못한 원초적 상실감과 지금도 계속되는 분단체제의 모순을 지적하며, "내가 살아온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할 것 천지였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펴낸 마지막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그토록 이해 못할 고통을 모두 이겨내고 문학의 큰나무로 우뚝 선 삶의 보람을 담고 있다. "또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내 자식들과 손자들에게도 뽐내고 싶다. 그 애들도 나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참 좋겠다."

 

-조선일보, 20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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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추모 기도 "참으로 겸손했던 어머니… 하늘나라서 더 행복하시길"
남편과 아들이 앞서 잠든 용인 천주교 묘지에 안장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참으로 많이 사랑하였고 참으로 많이 사랑받아 행복하였노라고 겸손히 고백해온 우리의 어머니를 받아주십시오. 헤어짐의 슬픔을 그저 울고 또 우는 것으로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우리의 나약함을 굽어보시고, 진실하고 따뜻하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지상의 소임을 다하고 눈 오는 날 눈꽃처럼 깨끗하고 순결하게 생을 마무리하신 우리의 어머니를 이 세상에 계실 때보다 더 행복하게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난 22일 별세한 소설가 박완서씨의 장례미사가 열린 25일 오전 10시 경기도 구리시 토평성당. 이해인 수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추모 기도를 올리자 성당 안을 가득 메운 추도객들이 눈물을 글썽였다. 고인은 지난해 봄 부산에서 암 투병 중인 이 수녀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나는 꼭 당신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을 떠나고 싶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보다는 오래 살아주십시오'라는 편지를 남겼다. 이해인 수녀는 "지금도 옆에 계신 것 같아 실감이 안 나지만 선생의 작품을 읽고 또 읽으며 기쁘게 보내드릴 거다"고 말했다.

25일 오전 소설가 박완서씨의 장례미사가 고인이 다니던 경기도 구리시 토평성당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미사가 끝나고 교우와 지인 등 장례참석객들의 애도 속에 운구행렬이 성당을 떠나고 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이에 앞서 오전 8시 40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영결식이 치러졌다. 특별한 의식 없이 진행된 영결식은 차분하고 숙연한 분위기에서 끝났고 이어 운구 행렬은 고인이 다니던 구리시 토평성당으로 향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장례미사에는 유족을 비롯해 소설가 박범신·이경자·은희경·공지영·강영숙·조선희·심윤경·임철우씨와 시인 이근배씨, 문학평론가 유종호·김윤식·정과리씨와 강태형 문학동네 대표, 김영현 실천문학 대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장례미사를 집전한 김성길 전임 토평성당 주임신부는 "참으로 크신 분임에도 요란하고 화려한 장례를 마다한 채 신앙의 여정을 걸었던 이곳 성당에 소박한 장례미사를 맡기셨다"며 "수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셨지만 늘 한 송이 수선화처럼 다소곳하고 겸손의 향기를 풍기신 분"이라고 추모했다. 또 김 신부는 "선생은 가지신 것을 기쁘게 나누어주신 분이셨다"면서 "지금도 성당 1층 쉼터는 선생이 기증하신 소중한 책들로 꽉 차 있다. 책 읽는 즐거움과 독서를 통해 삶을 껴안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신 선생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조시(弔詩)를 낭독한 정호승 시인은 "일찍이 이 시대의 나목(裸木)이 되어 문학 언어로 위안과 행복 열매를 나눠줬는데 이제 또 어디 가서 한 그루 나목으로 서 계시려 하십니까. 며칠 전까지 아차산 뜰 거닐고, 봄에 피어날 예쁜 꽃 얘기하고, 고구마도 드시고, 마더 테레사가 좋아한 초콜릿도 드셨는데…"라며 눈을 감았다.

고인의 유해는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과 아들이 잠들어 있는 경기도 용인시 천주교 공원묘지에 오후 2시쯤 안장됐다. 아들의 묘를 아래에 두고 남편과 나란히 묻힌 고인의 관 위에는 하얀 국화 꽃잎과 고인이 생전에 자신의 몸을 덮어주기 바랐던 '부드럽고 따숩은' 흙이 소복이 올려졌다. 영하 10도를 맴도는 매서운 추위에도 유족과 지인들은 1시간 넘게 "편안히 잠드소서"를 합창하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고인의 맏딸인 수필가 호원숙씨는 "어머니는 마지막 가시는 순간까지도 맑고 깨끗하셨고, 담담하게 죽음을 맞으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선일보, 20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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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박완서씨 어제 발인 이해인 수녀 '송별시'

 

 

꽃이 된 기도

엄마의 미소처럼 포근한 눈꽃 속에

눈사람 되어 떠나신 우리 선생님

고향을 그리워한 선생님을

그토록 좋아하시는 부드러운 흙 속에

한 송이 꽃으로 묻고 와서 우리도 꽃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문학을 더 깊이 사랑하는 꽃

선생님의 인품을 더 곱게 닮고 싶은

그리움의 꽃이 되었습니다

25일 치러진 박완서씨의 장례미사에서 이해인 수녀가 슬퍼하고 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선생님이 계시어 더 든든하고 좋았던 세상에서

우리는 엄마 잃은 아이처럼

울고 울어도 눈물이 남네요

선생님은 분명 우리 곁에 안 계신데

선생님의 향기가 눈꽃 속에 살아나

자꾸 새롭게 말을 걸어오네요

아프지만 아름다운 이 세상을 위로하는

미소천사로 승천하신 것 같다며

이 땅의 우리는 하늘 향해 두 손 모읍니다

'갑자기 오느라 작별인사 못했어요

너무 슬퍼하면 제가 미안하죠

거기도 좋지만 여기도 좋아요

항상 기도 안에 만납시다, 우리'

선생님의 초대에 행복한 오늘

한 마음의 평온함으로 인사합니다

사랑하는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우리의 어둠을 밝히는 엄마별이 되어주십시오

 

-조선일보, 201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