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국내 첫 '1급 시각장애 여성 박사' 윤상은씨…
"꾸지 못할 꿈은 없어"
“장애인 취업하기 힘든 현실 내 연구가 도움됐으면…
희망 메시지 퍼뜨릴 겁니다”
"지금 대학에 다니는 장애인이 전국에 3800명쯤 돼요. 제가 입학했던 2000년과 비교하면 열 배는 늘었죠. 이렇게 대학 교육을 받을 기회의 문은 활짝 열렸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적성과 흥미에 맞는 진로를 찾아 취업하기가 너무 힘드니까요. 제 연구가 이 문제의 해결에 도움됐으면 좋겠어요."
1급 시각장애인 윤상은(29)씨가 대구대 대학원 재활과학과에서 직업재활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학위 논문은 '고학력 장애인의 직업관련 인식과 삶의 질에 관한 연구'다. 대졸 장애인 320명을 찾아가 설문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했다. 여성 시각장애인으로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윤씨가 처음이라고 했다. 일반인에 비해 자료찾기와 정보습득에 3~4배의 시간이 걸리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게다가 20대에 박사를 딴 것 역시 기록이다.
"공부에 욕심이 있으면 대부분 유학을 떠나요.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 대학이 장애인 학생에게 도우미 한 명 정도를 지원해, 이동 같은 기본적 편의를 도와줘요. 그런데 외국 대학은 2~3명의 전문화된 도우미를 붙여 불편 없이 연구할 수 있도록 배려하거든요."
그가 유학 가지 않은 것은 후배들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석·박사 과정을 밟으려는 후배는 늘어나는데, 무엇을 어떡해야 가능할지 참고할 선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빛조차 구별 안 되는 1급 시각장애 여성으로서 '국내 대학 박사 1호' 타이틀은 그래서 중요했다.
윤씨가 시력을 잃은 것은 태어난 직후다. 몸무게 1.2㎏의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있다가 산소가 과다 공급돼 '미숙아 망막증'을 얻었다. 국립서울맹학교를 졸업하고 나사렛대에서 학사·석사를 마친 뒤 그는 2008년 대구대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설마 박사까지?' 했던 어머니는 딸의 굳은 의지에 고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곁에서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쉽지 않았어요. 석사 진학 때, 제가 1급 시각장애인인 줄 알면서도 면접 날 도우미 한 명 지원해주지 않는 대학원들도 있었죠. 면접관들도 성의 없는 태도로 엉뚱한 질문만 던지고…. '공부를 하고 싶다는 내 꿈이 너무 과한 건가'란 생각이 들더군요."
5년 전에는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기까지 했다. 계속되는 통증과 구토로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의료진은 '원인도 병명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윤씨는 "공부고 뭐고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여기서 지면 끝이다, 포기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죽지 않으려고 병원 복도를 하루 40바퀴씩 돌며 운동했죠. 그리고 40일 만에 퇴원했어요. 다들 독하다고 했죠."
그는 내년 2월 정식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자신의 연구 주제를 더 깊이 파고들 계획이다. 강연도 하고 싶다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시각장애인이자 현재 미국 백악관 정책차관보인 강영우 박사의 강연을 들었던 것이 인생을 바꿔놨기 때문이다.
"박사님은 '장애가 있지만 꾸지 못할 꿈은 없다, 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안고 여기까지 왔어요. 이제 제가 그 메시지를 널리 퍼 뜨리고 싶네요."
-조선일보, 201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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