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막 1:16-20
찬송: 377장
제목: 올바른 순종
목표: 주님이 부르실 때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한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면서 제자들을 불러 복음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아름답게 쓰임 받았던 제자들처럼 우리들도 주님의 초청에 순종해야 합니다.
어떻게 순종해야 하겠습니까?
올바른 순종은
1. 즉시 순종(18)
18절, “곧 그물을 버려두고 좇으니라.”
순종할 때 즉시 순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해타산을 따지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언젠가 어떤 집사님이 전화를 하여 교회를 위해 작정헌금을 하려고 하는데 빨리 심방을 와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오셔서 헌금하면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때까지 기다리면 마음이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에 감동이 올 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심방하였더니 거액의 헌금을 주시면서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올 때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때 즉시 봉사해야 합니다. 나중에 한가할 때 여건이 되면 봉사해야지 하면서 미루면 많은 시간이 흘러갑니다. 새벽기도 해야지, 성경읽어야지 하는 마음의 감동이 오면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내일로 미루면 내일이 한주가 되고, 한 달이 되고, 또 일 년이 지나갑니다.
또한 핑계하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즉시 순종하려고 할 때 발목을 잡는 것이 핑계거리입니다. 눅 14장에는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종을 보내어 사람을 초청했는데 한 사람은 밭을 샀다고 하며 핑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다고 핑계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장가를 들었다고 핑계하고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주인이 이 이야기를 듣고 화를 내면서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하면서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하였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도 핑계거리가 있습니다. 불효자도 핑계거리가 있습니다.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도 핑계거리가 있습니다. 모임 때마다 지각하는 사람도 핑계거리가 있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핑계거리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핑계거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은혜받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이 부르시고 초청하실 때 핑계하지 말고 즉시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올바른 순종은
2. 버려두고 순종(18, 20)
18절, “곧 그물을 버려두고 좇으니라.”
20절,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은 생계의 수단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아비와 삯군들을 버려두고 순종했다는 말은 인간관계를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렇듯이 순종은 버림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가질 것을 다 가지고 누릴 것을 다 누리면서 희생과 포기없이 순종할 수는 없습니다.
요즘에 법정스님이 돌아가셔서 그분의 삶을 소개하는 내용의 글들이 많은데 그분의 삶을 요약하여 무소유로 표현한 글을 보았습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것을 버리고 자기의 것을 소유하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었지요.
성경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를 버린 인물들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바울과 같은 인물들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위해 일생을 헌신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순종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고 하실 때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나이가 들면 정든 고향을 떠나기가 더욱 힘이 듭니다. 나이가 들수록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묻히기를 원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습니다. 조상대대로 살던 정든 고향을 등지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버려두고 떠났기에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는 부자청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청년이 있었는데 예수님께 와서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고 청년은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자 그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흥회가 21일부터 시작됩니다. 해야 할 일과 바쁜 일도 많습니다. 그러나 은혜받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던 시간을 버리고 은혜 받는데 투자해야 합니다.
이번 부흥회가 버릴 것을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께 투자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올바른 순종은
3. 함께 순종(16, 19-20)
16절,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9-20절,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순종할 때 즉시 순종하고 버려두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순종해야 합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예수님의 초청을 받았을 때 한 사람은 순종하고 한 사람은 불순종하면 서로가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함께 순종하는 것이 은혜이고 복입니다.
오늘 아침 3대가 함께하는 특별새벽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워서 데려오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밤늦게 자고 일어날 때는 짜증내고 늑장을 부릴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두 아들이 비교적 쉽게 일어났고 짜증도 내지않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함께 순종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사했습니다. 둘 중에 한명이 순종하지 않고 집에 있었다면 얼마나 제 마음이 불편했겠습니까? 함께 순종할 때 은혜가 있습니다.
고기를 잡고 있는 두 형제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두 형제를 부르실 때 모두가 함께 순종하였습니다. 만약에 형제들을 부르실 때 한 명만 순종했다면 불순종한 형제가 얼마나 불평하고 제자의 길을 막으려 했겠습니까? 함께 순종하여 예수님을 따르며 사역하는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구역장 권찰님들이 함께 순종할 때 교구장 마음이 기쁘고 하나님의 마음이 기쁩니다. 구역식구들이 함께 순종할 때 구역장 마음이 기쁩니다. 부흥회 때 구역식구들이 함께 순종하여 참석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모두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순종은 함께 순종했기에 더욱 귀합니다. 본토 친척집을 떠났던 아브라함,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할 때 순종했던 아브라함, 그리고 그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번제물이 되려고 했던 이삭이 함께 순종했으니 하나님이 감동받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함께 순종하는 것이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잔치에 온 성도들이 함께 순종할 때 하나님이 감동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우리를 천국잔치에 초청하실 때 그리고 제자로 부르실 때 핑계하지 말고 즉시 순종하고, 버릴 것을 버려두고 순종하고, 모두 함께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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