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르비딤의 다툼

하마사 2010. 2. 13. 19:46

본문: 출 17:1-7

찬송: 342장

제목: 르비딤의 다툼

목표: 다툼의 원인을 알고 믿음으로 극복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광야에서 떠나 르비딤에서 장막을 쳤지만 마실 물이 없자 모세에게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며 소리쳤습니다. 성경은 모세와 다투었다고 기록하였는데 목소리를 높여 싸웠다는 뜻입니다. 물을 달라고 모세와 싸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였습니다.

왜 르비딤의 다툼이 생겼습니까? 결핍 때문입니다. ‘결핍’이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이란 의미입니다. 어떤 결핍일까요?

 

1. 생수의 결핍입니다.(1-2)

1-2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르비딤’이란 '원기 회복'이란 뜻입니다. 원기를 회복해야 할 장소에서 다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르비딤이 시내산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던 것만은 분명하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던 과거의 정도를 넘어 이제는 모세와 다투기까지 했으며, 모세에게 직접 물을 달라고 항의하였습니다. 백성들은 모든 책임을 모세에게 돌려 곤경에 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어려운 일에 봉착할 때마다 무턱대고 지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왜입니까? 마실 물이 없어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름기둥으로 태양을 가리기는 했지만 신광야를 지나면서 땀이 나고 먼지가 일면서 갈증이 심했을 것입니다. 몽골이나 카자흐스탄에 갔을 때도 물이 얼마나 귀했는지 실감했습니다.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충분히 불평과 원망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생수는 곧 생명입니다. 여기서 생수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일 수도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입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 6:25)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먹고 마시고 입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결핍될 때 다툼이 생기고 나라 간에 분쟁이 일어나고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맹수들이 배가 부르면 먹이감이 앞을 지나다녀도 사냥을 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가 고프면 잡은 먹이를 서로 먹겠다고 자기들끼리도 치열하게 싸웁니다. 이처럼 다툼은 결핍에서 비롯됩니다. 르비딤에서 물이 충분했다면 다투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생명과 직결되는 생수의 결핍과 더불어 생활의 결핍으로 인해 다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애굽에서 인도하신 백성들이지만 그들의 삶에도 결핍이 있었듯이 우리들의 삶속에도 결핍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그 때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감사의 결핍입니다.(3)

3절,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근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말입니다. 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을 통하여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물을 마실 수 없어 목마르게 되자 현실의 모든 책임을 모세에게 돌려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매일 만나를 주시고 한달간 메추라기를 주실 때는 감사하다는 말이 없습니다. 광야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으로 살았지만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으니 가나안땅까지 인도하는 것은 당연하였으며 먹고 마시고 입는 것까지도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어떤 것을 주어도 감사가 없습니다. 자식이 부모에 대해서 감사하지 못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스승과 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봉급을 받는 것만큼만 일하고 학생은 수업료를 냈으니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사랑과 존경심이 생길 수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과 성도들 사이에 이런 생각들이 생기게 되면 감사가 없고 메마른 관계가 되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애굽을 생각하면서 현실과 비교하며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종으로 살았지만 물은 마음대로 마셨다고 하며 불평했습니다. 잠시 물이 없어 목마르다고 우리를 죽이려고 인도하여 내었느냐고 모세에게 생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불평과 원망도 습관입니다. 습관적으로 불평거리를 찾아 불평합니다. 그 불평과 원망이 결국 다툼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반대로 감사도 습관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감사거리가 됩니다. 하나님이 왜 죽이려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셨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광야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고 원망했다는 말은 많지만 감사했다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감사해야할 것을 감사하지 못하면 감사가 자꾸 말라갑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 웃음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풍성해집니다. 샘물은 퍼내면 퍼낼수록 고이듯이 감사도 하면할수록 감사의 조건들이 고이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가 결핍되면 불평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다툼이 일어나게 되므로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다툼을 없애고 행복을 쌓아가는 비결입니다.

 

3. 믿음의 결핍입니다.(7)

7절,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여기에서 '맛사'란 '시험' 또는 '유혹'을 의미하고 '므리바'란 '다툼' 또는 '논쟁'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여 대적하였기 때문에 모세는 이런 이름을 지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불신앙과 패역함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이름입니까? 물이 없어 다투었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의심했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입니다. 믿음이 없을 때 싸움이 일어납니다. 사람사이에도 상대방을 믿지 못하고 서로를 의심하면 싸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고 홍해를 갈라 길을 여시고 수르광야를 지나 마라의 쓴물을 달게 만드셨던 하나님, 신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게 하셨던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물로서 시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놀라운 기적들을 수없이 경험했지만 당장의 갈증이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의심은 관계를 파괴하고 다툼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르비딤의 다툼은 오늘날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생수의 결핍, 감사의 결핍, 믿음의 결핍으로 인해 생길 수 있습니다. 생수의 결핍 즉 생활의 결핍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합니다. 이 다툼을 해결 할 수 있는 길은 감사하며 사는 것이고 하나님이 해결해주실 줄 믿고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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