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사람

골프선수 신지애

하마사 2009. 11. 25. 10:01

"지애 엄마는 따뜻하고 심성이 고왔어요. 다른 골프 학부모들이 지애 엄마를 '천사'라고 불렀어요. 지애가 웃는 모습이 꼭 그 ... /조선일보
 

스물한살 신지애의 위대한 도전 "美LPGA 역사 새로 쓴다" 1
딸의 세계제패 꿈꾼 아빠 일찍이 운동 시키려 작정
사고로 숨진 어머니 대신 동생들 돌보며 골프까지…

신지애(21)가 한국, 나아가 세계의 골프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24일 '골프 여제'로 불리는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에 단 1점차로 미 LPGA '올해의 선수상'은 뺏겼지만, 데뷔 첫해 신인상·상금왕과 다승 공동 선두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스물한 살의 신지애가 LPGA 투어의 새 역사를 써 갈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신지애의 골프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신지애는 초등학교 6학년 때 154cm로 키가 반에서 두 번째로 컸다고 한다. 아버지 신제섭씨는 "그때 이후로 2cm밖에 크지 않은 게 어렸을 때 체력훈련을 심하게 한 탓이 아닌가 싶어 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고 했다.

신지애가 골프를 시작한 계기는 좀 엉뚱하다. 학생 시절 배드민턴과 볼링 선수였던 아버지 신씨는 "아들이건 딸이건 첫 아이를 낳으면 운동선수를 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종목도 정해 놓았다. 한국 여자가 세계를 제패한 양궁과 골프 가운데 하나를 시킬 작정이었다고 한다.

신지애는 광주 두암초등학교 4학년 때 잠깐 양궁을 배웠다. 하지만 개척교회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전남 영광의 홍농서초등학교로 5학년 때 전학 가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목사가 되기 전 그의 아버지는 골프 마니아였다. 박세리가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맨발의 기적'을 일군 뒤, 전국에 숱한 '골프 대디'와 '세리키즈'가 생겨나던 때였다.

신지애는 아쉽게 올해의 선수상을 놓친 뒤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85타 치고 예선 탈락해서 울고 난 뒤 골프 때문에 울어보기는 두 번째”라고 한다. 3라운드 18번홀에서 버디를 놓친 후 아쉬워하는 신지애./뉴시스

"못해요"를 몰랐던 아이

작은 신지애의 손은 온통 굳은살이고, 마디가 울퉁불퉁하다. 골프를 시작한 중학 시절 매일 완력기를 한 손마다 400번씩 조였고, 아령을 400번씩 들었다. 타이어를 100번씩 내려쳤고, 연습장 모래더미도 아이언으로 20번씩 내려쳤다. 이건 몸 풀기에 불과했다. 연습장 앞의 20층 아파트를 매일 뛰어 오르내렸다. 하루에 7차례 왕복하면 꼬박 1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신제섭씨는 "다른 아이 같으면 요령을 부렸을 텐데 지애는 '못해요'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신지애는 또 박세리가 무덤 옆에서 '담력 훈련'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중학교 시절 한밤에 공동묘지를 오르내리기도 했다.

요령을 모르는 신지애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중학교 2학년 때 무안 CC에서 몇 시간이고 퍼팅 연습을 하던 신지애를 지켜본 골프장 사장이 무료로 연습 라운드를 할 수 있게 해줬다. 돈이 없어 라운딩이 부담스러웠던 그에게는 엄청난 도움이었다.

동생들을 위해서

신지애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장타로 알려졌다. 한 일간지가 "한국에 로라 데이비스가 탄생했다"는 기사를 실을 정도였다. 지방대회에선 스타였지만, 전국대회에선 중학교 2학년 때 3위 한 차례, 3학년 때 준우승이 전부였다.

신지애(왼쪽)는 어머니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은 여동생 지원(오른쪽)과 남동생 지훈이를 간병하면서 운동을 계속했다. 병실에서 남동생의 생일 축하 파티를 하고 있다. 지원이는 서울대 물리학과에 수시합격했고, 목소리가 좋은 지훈이는 학교 합창반으로 활동하고 있다./신지애 선수 가족 제공

2003년 11월 어머니와 두 동생을 태우고 목포로 가던 승용차가 트럭과 충돌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신제섭씨가 "지애 엄마 장례를 치르고 나니 남은 돈은 1900만원이 전부였다"고 말할 정도로 경제 형편도 어려웠다. 신지애의 여동생 지원(18)과 남동생 지훈(13)은 어머니가 돌아간 후 1년 이상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신지애는 엄마 역할까지 아빠와 나눠 맡아야 했다. 두 동생을 간병하면서 골프 연습도 했고 대회에도 나갔다. 어머니와 두 동생을 위해 한 타 한 타에 모든 걸 걸면서 그의 골프는 만들어져갔다. '독종 승부사'는 이렇게 탄생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4개월 만에 신지애는 전국대회 첫 우승을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신지애의 여동생 지원은 올해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수시 합격했다. "경기가 없을 때 동생들을 차에 태워 학교에 보내주고 함께 외식하고 노래방에 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신지애이다.

 

-조선일보, 2009/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