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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3년 맞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하마사 2009. 12. 14. 13:20

취임 3년 맞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고도의 국제정치 전념… 大選관심없어"

 

토요일 오전, 미국 뉴욕의 관저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만났다. 관저는 도로변에 붙어 있는 평범한 4층 건물이었다. 정원도 없었다. 1층 현관문 안에서 경찰이 보안검사를 했다.

반 총장은 "에티오피아 총리와의 통화가 길어졌다"며 3층 서재에서 2층 응접실로 내려왔다. 인터뷰가 토요일로 잡힌 것은 평일에는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말에도 결코 쉬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장과 흰 와이셔츠, 빨간 넥타이 차림으로 응대하는 인터뷰도 분명 일인 셈이다.

―일을 집으로 갖고 들어오는 모양이죠?

"업무량이 절대적으로 많아요. 낮에 처리하지 못한 것을 들고 와 서재에서 자정까지 자료를 보고, 시차에 맞춰 외국 정상들과 통화를 합니다. 가족과는 대화할 시간이 없어요. 새벽에 일어나서도 출근할 때까지 2~3시간씩 일을 하고 나갑니다. 안 그러면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없어요. (상의 포켓에서 스케줄 표를 꺼내) 어제는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통화를 했어요. 늘 긴장해야 하지요."

―반 총장께서는 꼼꼼한 성품이지요?

"꼼꼼하죠. 완벽하게 하려고 하니까요."

―어떻게 그 스트레스를 감당합니까?

"주어진 임무가 이렇고 또 제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여기에는 세상의 모든 일이 있죠. 경제위기, 인권, 여성, 질병, 지역분쟁, 식량, 에너지, 그리고 기후변화도요.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죠. 하지만 낙천적으로 살려고 해요. 언짢거나 불쾌한 일은 깊이 생각 안 하려고 하죠."

―얼마 전 유엔출입기자단 송년 만찬에서, 지구온난화가 가장 심한 장소를 얘기하면서 영상(映像)으로 '기자회견장'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기자들에게도 많이 시달리는 모양이지요?

"기자들의 관심도 출신 나라별로 다 달라요. 아프리카 출신은 아프리카 문제, 동유럽 출신은 동유럽 문제, 동북아는 한반도의 핵 문제를 질문해요. 어떨 때는 국한된 지역 이슈까지 물어요. 전 세계 문제를 숙지하지 않으면 답변하기 어려워요. 특히 지역분쟁과 관련된 문제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지요. 묻는 기자도 출신 나라에 따라 어느 한쪽의 시각을 갖고 있어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미국 신문에서 나를‘유엔에서 안 보이는 사람’이라고 비판했을 때 나는‘겸허하게 일한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박종세 뉴욕특파원 jspark@chosun.com

◆ 유엔총장은 오너 아닌 'CEO'

내 역할은 지역분쟁 '중개자' 한쪽만 비판해선 안돼…
하지만 강한 발언도 많았다

―반 총장께서 지역분쟁이나 인권 문제에서 보다 강한 메시지를 내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더군요.

"보는 시각에 따라 그렇게 비판할 수 있어요. 강한 메시지를 전하면 어느 한쪽 입장에서는 그걸 좋아하겠지만, 다른 당사국으로부터는 비판과 항의가 들어오지요. 저는 민주주의·인권·여성 지위 향상 등 인류보편적 가치에서는 소신 있게 말합니다. 기후변화·식량·빈곤 등 지구적인 문제에서도 제 운신의 폭이 넓습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얽힌 지역분쟁 같은 이슈에서는 '중개자'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분쟁을 해결하려면 제가 정직한 중개자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유엔은 국가 정부처럼 확실한 입장을 낼 수가 없습니다."

―특히 유엔 안보리상임이사국(미·영·중·러·프)이 관련된 문제에서는 발언권의 제약이 많다고 했지요?

"제가 그런 말을 한 게 아니고 남들이 그렇게 말하지요(웃음)."

―현실적으로 그런 제약이 있지요?

"그렇지요. 상임이사국 중 어느 한 나라가 비토(veto)권을 행사해도 논의가 죽어버리니까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섯 나라가 다 합의하는 상황으로 끌고 가는 게 중요하죠. 그런 과정이 길어지면 저에 대한 불만이 나올 수 있지요."

―사실 그런 강대국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게 아닌가요?

"그건 아닙니다. 전임 사무총장(코피 아난)보다 제 목소리가 낮았다는 것에 대해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 더 강하게 발언한 게 참 많습니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왜 사무총장께서 중요 이슈에서 대담한 연설이나 성명을 못 내는 걸로 볼까요?

"어느 한쪽 시각에서 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중동 평화 문제가 있었을 때, 제가 아랍이나 이스라엘 어느 한쪽을 강하게 비판한다면 결과적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럼에도 금년 1월 레바논과 가자지역(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이 있었을 때 저는 현장에 가서 폭격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건 당시 가자 지역의 유엔사무소가 폭격당해서 그랬던 게 아닙니까?

"그 직전에 중동의 여러 나라를 방문해 종전(終戰)을 끌어낸 게 저였습니다. 당시 세계 지도자들 중에는 가자를 방문한 이도 없었습니다. 또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저만큼 강하게 이야기한 이도 없었습니다."

지난 9월 30일 여성 및 평화·안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유엔회의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논의를 경청하고 있다. 반 총장의 오른쪽 옆은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AFP연합뉴스

◆ 코펜하겐 기후 정상회의 주재

3년 전 이슈화시켜 성공…
이번에도 내가 개회 선언 구속력 있는 합의 이뤄질 것

―이번 코펜하겐 기후총회 개최는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2007년 말 '발리 기후변화 총회'에서 반 총장께서 결렬될 뻔했던 의제를 폐막 시한을 넘겨 되살려낸 결과였으니까요.

"저는 제 공을 주장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기후변화 문제는 저 혼자 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 코펜하겐 총회에서는 제가 협상 주체도 아닙니다. 각 나라가 협상 주체입니다. 저는 회의를 열고 잘 협상할 수 있도록 할 뿐입니다."

―반 총장께서는 '기후변화 문제 하나만 해결해도 충분한 업적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지요?

"기후변화는 전 인류의 문제이니까 역점을 둔 게 사실입니다. 3년 전 사무총장이 됐을 때 기후문제를 불 지펴 이슈화했습니다. 그건 성공했습니다. 두 차례 정상회의까지 주재했으니까요. 미국은 지난 '교토의정서'에 참여하지 않았지요. 제가 부시 대통령의 마음을 돌리게 하려고 많이 애썼습니다. 다행히 오바마 대통령이 들어와서 정부 차원에서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미국은 늦게 참여하는 바람에 국내의 복잡한 상황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이 기후문제에 동참하게 된 것은 국제 정치 역학에서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30% 감축안을 결정한 것도 제게는 큰 도움이 됐습니다."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대의'에는 찬성하지만 자국의 경제적 이해득실로 인해 이번 코펜하겐 총회에서 최종합의가 나오기는 힘들지 않을까요?

"조약 형태로 하는 게 최종 목표인데, 이번 총회에서는 그 직전 단계로 정치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는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이번 주 코펜하겐으로 떠나겠군요.

"15일 고위급 회의를 개회하고, 18일 특별정상회의에서도 제가 개회선언을 합니다. 다시 각국 지도자들과 만나는 자리가 되겠지요."

◆ 전 세계 지도자 만나보니

스타일·집권과정 다 달라… 비타협적 지도자 만나보면 '이러니 문제해결 안돼' 생각


―세계 정상들 중 누구에게 가장 친밀감을 느낍니까?

"(웃음) 그런 얘기는 안 하는 게 낫습니다. 저는 1년에 400~500명을 공식적으로 만나죠. 저만큼 각국 지도자들을 많이 만나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만나 본 각국의 지도자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까? 가령 공통적으로 자신감이 있다거나.

"이들은 그 자리까지 올라온 과정이 다 다릅니다. 스타일도 다 달라요. 다만 저는 지도자가 과신(過信)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봅니다. 그런 분들일수록 비타협적이고 오만합니다. 일국의 지도자로서 긍지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가끔은 어떤 지도자들을 대하면 '이러니 세상이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구나'며 비판적인 시각도 갖게 됩니다."

―이들과 본인을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저는 '휴밀리티(humility·겸손)'를 강조합니다. 사실 각국 지도자와 유엔사무총장의 처지는 많이 다릅니다. 각국 지도자는 자기 입장을 남이 지지하든 안 하든 똑바로 얘기할 수 있습니다. 가령 한국 대통령이라면 국익에 맞는 범위 안에서 강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엔사무총장은 한국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거나 어느 한 나라 입장에 서게 되면 처지가 어려워집니다. 192개 회원국들이 절대 용납을 안 합니다."

―기업으로 치면 오너와 CEO(전문경영인)의 차이입니까?

"그럴 수도 있죠. 저는 회원국들이 선출해 뽑은 사무총장이지, '오너'는 아니지요. 오너는 돈을 마음대로 쓰고 인력과 회사 운영을 결정할 수 있지만, 저는 192개 오너들의 이해를 조화롭게 절충하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트뤼그베 리 초대 사무총장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직업은 유엔사무총장'이라고 했지요."

―그것은 협상과 중재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렇지요. 끊임없이 협상과 설득, 대화를 해야 하는 게 유엔사무총장이지요."

―반 총장께서는 스리랑카미얀마, 수단의 '독재자들'과 일대일로 협상했지 않습니까?

"예."

―그런 독재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유용했을지는 모르나, 유엔의 도덕적 권위는 실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지요?.

"극소수가 그렇게 얘기하고 또 그것만 보도됐을 뿐입니다. 당시 제가 스리랑카에 간 것은 유엔 회원국 대부분이 지지했고, 이들의 요청으로 간 것입니다. 미얀마의 경우에는 민주화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제게로 온 겁니다."

유엔사무총장 관저에서 반기문 총장(오른쪽)과 최보식 선임기자../박종세 뉴욕특파원 jspark@chosun.com

―현실적인 문제 해결이 도덕적 권위보다 중요하다고 봅니까?

“유엔의 도덕적 권위가 더 중요하죠. 그러나 유엔도 현실적인 것을 무시할 수 없죠. 도덕적 권위만으로 문제 해결이 안 되니, 필요한 외교적 역량을 동원해야 합니다. 저보고 ‘조용한 외교’를 한다고 비판하지만, 그것도 한 면만 보는 것이죠. 어떻게 조용한 외교만 합니까. 사람이 밥 먹을 때 이것저것 반찬을 다 먹지 하나만 먹지는 않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강한 공개성명, 공개적인 면담과 함께 비공개적인 조용한 외교도 필요한 거죠.

말씀대로 제가 미얀마의 군부를 만난 뒤 비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 뒤 정치범을 포함해 1300여명이 석방됐습니다. 이는 유엔사무총장의 강력한 요청을 반영한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런 발표는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국제 사회의 불만은 ‘왜 모든 문제를 금방 못 해결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나 이는 저를 비판하는 사람이나 국가도 해결을 못 합니다. 그들이 저를 도와야 해결이 가능합니다.”

―어쩌면 한국인들은 세계적인 자리에 있는 반 총장께서 지금보다 강한 개성과 카리스마를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겁니다.

“카리스마를 어떤 정형으로만 보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큰소리를 치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만이 카리스마가 아니라 조용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카리스마입니다. 지난 6월 타임지(誌)에서 카리스마 관련 특집기사를 실었는데, 저를 전형적인 ‘뷰로크래틱(bureaucratic·관료적) 카리스마’로 분류했고, ‘에이스 컨센서스 빌더(ace consensus builder·합의를 잘 이끌어내는 사람)’로 평가했습니다.”

―반 총장께서는 ‘관료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는 평을 받을 때 느낌이 어떻습니까?

“관료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는 부정적이죠. 저는 ‘뷰로크래틱’을 관료라기보다 ‘제도적’인 것으로 해석합니다. 실제 저는 원칙과 틀, 제도를 상당히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정치인들은 속된 말로 튀지 않습니까. 저는 튀는 사람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저와 비교하는 것입니다. 튀는 게 카리스마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유엔사무총장은 정치적인 자리 아닙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정치를 하는 거죠?

“맞습니다. 고도의 국제정치를 하는 겁니다. 하지만 국내의 정치 시각과 틀로서 보면 이해하기 어렵죠.”

―지난 6월 월스트리트저널은 반 총장에 대해 ‘유엔의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비판적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 신문이 내가 ‘인비저블(invisible· 안 보이는)하다’고 했는데, 이에 대해 저는 ‘겸허하게 일한다’고 답변했지요. 서양의 내세우는 문화로는 저를 잘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지도자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강한 개성과 스타성이 요구되고, ‘이미지’도 중요합니다. 본인의 스타일을 좀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습니까?

“사람마다 각자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유엔사무총장의 전형(典型)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당초 그런 인물을 사무총장으로 뽑아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유엔 회원국들이 만장일치로 저를 뽑았습니다. 시대 상황에 따라 리더십은 달라지는 겁니다. 얼마 전 지구온난화 문제로 북극에 가면서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나의 리더십에 대해 보고 있는 것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빙산(氷山)의 일각을 보는 것과 같다. 빙산 아래에 있는 9할의 얼음 덩어리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 아래를 못 보고 배가 지나가면 파손된다’고 했지요.”

―이런 말씀을 하는 것을 보면 리더십 논란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본인이 너무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군요.

“사람의 진심을 알아줘야 하는데 부당하게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지요…. 많이 속상해한 것은 사실이에요.”

―유엔사무총장이 된 직후 “그동안 내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 실감했다. 이 지구촌에 이렇게 많은 문제와 이렇게 많은 분쟁이 있다는 데 놀라고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지요?

“그전에 외무장관을 해서 세상을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 시야가 좁았어요.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시야도 좀 더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한반도 중심으로, 한국 문제 중심으로 생각해요. 그러면서 세계의 식량, 난민문제에는 신경을 안 쓰죠. 우리 국력에 걸맞지 않게 국제적인 문제에는 너무 소홀합니다. 한국 출신의 유엔사무총장으로서 겸연쩍을 때가 있어요.”

◆ 한국에 하고 싶은 말

식량정상회의서 기금 걷는데 日1억5000만, 한국 150만弗 정말 낯이 뜨거웠습니다


―지난 3월 미국 의회 연설에서 유엔 분담금과 평화유지군 부담금을 체납한 미국에 대해 ‘게으른 기부자(deadbeat donor)’라고 해 화제가 됐지요?

“어떻게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느냐며 미국측 인사들이 불만을 많이 표시했어요. 하지만 그 뒤 미국은 체납액을 다 냈어요.”

―연설의 효과가 있었군요. 한국 정부는 체납하지 않고 있나요?
“제가 유엔사무총장에 출마할 때 1억2000만달러가 밀려 있었어요. 분담금도 안 낸 나라 출신이 어떻게 출마하느냐고들 했어요. 그래서 기획예산처 장관이 3년에 걸쳐 다 내겠다고 발표해 진화했습니다. 이제는 분담금 고지서를 제 명의로 발부하는데 제 친정에서 안 내면 곤란한 것이 아니냐, 그게 제 설득의 논리입니다. 분담금은 해결되어 가는 것 같고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이 좀 더 국제적인 시각에서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로마에서 열린 세계 식량정상회의에서 많은 정상들이 굶어 죽는 지구촌 사람들을 위해 기금을 냈습니다. 일본이 1억5000만달러를 그 자리에서 냈는데, 한국은 150만달러를 기약했어요. 정말 낯이 뜨거웠습니다. 공적개발원조자금(ODA)에서 아직까지 우리는 국민총소득(GNI)의 0.07%에 불과하고, 2015년에는 0.3%가 됩니다. 그때까지 다른 OECD 국가들의 목표는 0.7%인데 그 절반을 하겠다는 것이지요.”

지난 9월 1일 기후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북극권인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제도를 방문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시추한 얼음 기둥을 살펴보고 있다./AP뉴시스

―전 지구적 문제를 다루는 반 총장에게서 북한문제는 비중이 얼마나 됩니까?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유엔도 관심을 갖고 봅니다.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관련국들과 얘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에 대한 국민의 기대나 책임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 대선출마 바라는 사람 있는데…

출마설 자체가 총장일에 타격… 성공한 유엔총장 바라신다면 제발 그런 말좀 만들지 말라

 ―국내에서는 반 총장이 차기 대선에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요만큼도 생각해 보거나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럴 만한 자질을 갖고 있지도 않아요.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제가 사무총장으로 일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사무총장은 통상 연임을 하는 게 관례이지요.

“차기 대선 소문이 잘못 나가면 유엔사무총장을 내다보는 사람들에게 다른 생각을 갖게 만들죠. 우리 국민들이 제가 성공한 사무총장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런 말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유엔사무총장은 늘 세계 각국으로 출장을 다녀야 하지요?

“지구 한 바퀴가 4만㎞인데 지난 6월 지났을 때만 지구를 13번 돈 걸로 되어 있어요.”

―시차 적응은요?

“시차는 별로 느끼지 않고, 저는 비행기 안에서 두세 시간만 자도 20~30시간은 버팁니다.”

―지금 연세에 대단한 체력입니다. 그 비결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많이 받지만 특별히 말씀드릴 게 없어요. 제가 다른 일에는 다 부지런한데 운동만은 게을러요. 관저 안에 트레드 밀(tread mill)과 자전거가 있어도 시간이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기보다는 일을 챙겨야 하니까요.”

―반 총장께서는 무엇보다 우리 청소년들의 ‘롤모델’입니다.

“저 자신이 더욱 책임감을 느낍니다. 젊은이들이 꼭 특정 분야에 가야만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요즘 지구촌 어디를 돌아다녀도 정말 놀랍게도 한국의 젊은 블론티어(자원봉사자)들이 있어요. 이들이 ‘사무총장님’ 하고 부르면 ‘너희는 나보다 넓구나. 나보다 더 용감하고 더 비전이 있구나’ 하는 감정에 눈물이 핑 돕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일에 관해서만 말을 나눴습니다. 취미는요?

“이는 제가 살아온 배경과 관련되는데 상당히 후회되는 게 많아요. 되돌아보면 쓸데없이 시간을 허송했어요. 그 시간에 이걸 했으면 좀 더 삶이 풍요로웠을 텐데 하지만 이제는 늦었죠.”

◆ 개인적으로 아쉬운 일

"나도 저렇게 운동 잘했으면…" 액션영화 보며 주인공 동경
주말마다 佛語개인교습 받죠


―그때 했더라면 하는 게 무엇인가요?

“가끔 액션 영화를 볼 때 저는 그 주인공을 동경해요. 나도 저렇게 운동을 잘했으면 하고, 영화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죠. 어릴 때 아버님이 제게 유도를 시키려고 했는데 핑계를 대고 빠졌죠. 또 한문 공부를 위해 서당에 보내려고 했는데 그것도 안 했어요. 다 지나간 거죠. 후회를 해 봐야 세월이 갈수록 일이 쌓이니까 점점 시간은 없죠.”

―반 총장께서 후회될 일이 있다고 하면 우리 같은 사람은 과거 시간 전체가 후회 덩어리겠군요.

“젊어서는 그냥 시간을 허송하고,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못 합니다. 그렇게 버린 시간에 외국어를 하나 더 배울 수도 있었을 텐데.”
주어진 1시간 반의 인터뷰가 끝났다. 그의 다음 스케줄을 위해 현관에서 젊은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65세의 반 총장은 주말마다 이 여성으로부터 불어 개인 교습을 받고 있었다.

 

-2009/12/14,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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