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로 산다는 것은 설교와 함께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늘 설교의 부담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어떤 목사님은 설교를 부담없이 쉽게 하시는듯 하여 부러울 때가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설교를 하면 할수록 쉬워지고 준비시간도 짧아지면 좋을텐데 그렇지 못하니 문제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믿기에 소망을 가지기도 한다.
원고를 쓰면서 수없이 많은 부분을 수정하며 첨가와 삭제를 반복해간다.
주석과 타인의 설교를 참고하기도 하고 묵상한 내용을 정리하여 적당한 부분에 넣기도 한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컴퓨터가 없던 시대보다는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수정이 쉽고 복사하거나 잘라내고 붙여넣기를 할 수 있으니 너무나 감사하다.
그리고 인터넷에 들어가면 많은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이렇듯 설교준비하는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편리해졌지만 설교한대로 살기란 더욱 힘들고 어려워졌다.
그만큼 설교자를 유혹하고 나태하게 만드는 주변환경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설교자의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그 설교가 힘이 있고 감동이 있다.
힘을 주어 말은 하지만 삶이 따르지 않을 때 그 설교는 감동과 변화를 줄 수 없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설교는 정말 힘들다.
강단에서 선포하는 몇 십분의 설교를 위해 살아온 시간과 살아갈 시간의 수십, 수백배에 해당되는 시간을 살아야 하는 부담감이 있는 것이다.
설교자의 고민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때로는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런 말씀을 전할 때 듣는 성도들의 마음은 어떨까?
기도와 묵상으로 본문을 연구하며 준비하여 연기자처럼 말과 제스쳐를 잘 전달하고
전한 말씀대로 살아가는 감동적인 삶이 배경이 될 때 그 설교는 은혜를 끼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설교를 준비하다가 힘들어 머리를 식힐겸 하여 이 글을 쓰는데 오히려 머리가 더 복잡해진듯 하다.
이렇듯 설교는 힘들게 준비되지만 모든 설교가 은혜를 끼치지는 못하니 이래저래 설교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