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고 일어났다.
점심식사 할 시간이 없을정도로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씻고 잠을 청했다.
두 가정에서 동시에 장례가 나서 살아있는 사람들이 바쁘게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70세되신 권사님과 24살된 청년의 장례이다.
권사님은 살만큼 사셨다고 하지만 평균연령에 비하면 10년 먼저 가신 것이고,
청년은 그보다 훨씬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암으로 투병중이던 권사님께 마지막 심방을 갔을 때 "더 살고 싶다며 살 수 있는 거지요?"라고 질문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이렇듯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면 살고 싶은 애착이 생긴다.
더 살고 싶어했지만 하나님의 정한 시간이 되어 돌아가신 권사님의 죽음 앞에서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를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청년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깝다.
어머님은 건강이 좋지않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아버님은 그런 아내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살고
오빠는 자기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가정이다.
그런 가정에 뜻밖의 슬픔이 찾아왔다.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렇게 예쁘고 착한 아가씨가 순간의 실수로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윤권사님이 그토록 연장하고 싶어했던 고귀한 생명이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게 소중하지 않을 수도 있는 모양이다.
생명의 값은 똑 같은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값을 지니지만
하찮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보잘 것 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는듯 하다.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그만큼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보잘것 없는 물건처럼 생각하는 순간이 불행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