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설교

낙심 중에 소망

하마사 2009. 8. 12. 12:18

본문: 애 3:19-36

제목: 낙심 중에 소망

목표: 낙심 중에 소망을 갖게 한다.

 

 

474장 찬송가 가사입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이 세상에 죄악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근심되고 곤고하고 죄악된 일이 많은 세상을 살면서 죽을 일이 쌓여갈 때 우리는 낙심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아 낙심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낙심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헌신했지만 성공한 자녀들이 그것을 몰라주고 무시할 때 부모로서 낙심할 수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했는데 오해를 받아 낙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교회의 현재 상황을 보고 낙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교회가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또한 교회재판을 위해 열심히 기도했지만 패소했으니 낙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살다보면 우리가 원하는 뜻대로 되지 않아 낙심할 일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낙심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낙심 중에도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죽을 일이 닥쳐도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 예레미야가 낙심 가운데서 소망을 품는 모습입니다.

낙심 중에 소망을 가지기 위해서

 

1. 중심에 회상해야 합니다.(19-22)

19-22절,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바벨론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정복되고 성전마저 파괴된 당시의 상황은 예레미야에게 크나큰 낙심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의 고초와 재난 즉 쓴 쑥과 쓸개즙과 같은 고통을 기억하면 낙심과 절망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심에 회상하였더니 오히려 소망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중심에 회상했다’는 말은 ‘정결한 마음으로 깊이 묵상했다’는 의미로 예레미야의 신앙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고난과 현실의 고통을 생각하면 그리고 앞으로 닥칠 더 큰 어려움을 생각하면 낙심되지만 마음 속 깊이 묵상해보니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에 소망을 품을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 현실만 바라보면 낙심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나쁜 기억만 떠올리면 낙심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 닥칠 고난을 생각하면 불안하고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심을 마음 속 깊이 묵상하면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마음과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상황만 바라보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낙심과 소망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낙심할 일이 생기면 중심에 회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진멸되지 않고 선한 길로 인도하실 줄 믿고 소망을 품고 이겨나가야 합니다.

(고후 4:8-10)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2.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24-26)

24-26절,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낙심 중에 기도하며 기다리면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라고 고백합니다. 기업이란 상속받은 토지 등의 재산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고대사회에서 이 기업은 사람이 생존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생계의 수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기업이라고 한 예레미야의 고백은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이 소유한 최고의 가치요 소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잠잠히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선을 베풀어주실 줄 믿었습니다.

소망에는 인내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소망이 있다고 하면서 인내하지 못하면 그 소망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수없이 많은 낙심된 상황을 경험했던 다윗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시 37: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낙심되더라도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끝까지 기도하며 소망을 품고 인내하며 기다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선을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3. 하나님의 본심을 믿어야 합니다.(27-33)

27-33절,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 입을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하나님의 본심이 어떨까요? 부모가 자녀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잘못했을 때 매를 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식에게 매를 때리고 마음아파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에게 고통을 주고 아프게 하는 것이 부모의 본심은 아닙니다.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부모님의 본심입니다.

어릴 때 형제들끼리 서로 싸우다가 아버님으로부터 혼이 난적이 있습니다. 화가 나신 아버님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셔서 볏짚을 쌓아놓은 짚가리에서 동생들과 함께 숨어있을 때 엄마가 오셔서 못 이기는척하고 집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아버지가 야속하기만 했었는데 커가면서 아버지의 본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여 포로로 끌려가 고생하며 사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런 고통과 아픔이 있습니까? 선택하셔서 자녀로 삼아주시고 천국을 상속해주신 하나님이 교회문제로, 가정문제로, 건강문제로, 경제적인 문제로 고통받고 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생하며 근심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본마음이 아니시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본심을 오해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패배하고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며 악행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승리하는 모습을 볼 때 과연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일까? 의심하고 오해합니다.

성경은 대답합니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의인이 당분간 근심하지만 영원토록 버림당하지 않도록 하시고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으로 불쌍히 여기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본심을 믿는다면 낙심 중에도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본심이 우리를 고생하고 근심케 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한 사랑과 긍휼임을 믿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명도소송 재판에 패소하여 낙심할 수 있습니다. 세상법정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우리의 선한 뜻과 열정이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생하고 근심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과 긍휼이 반드시 우리에게 임할 것을 믿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낙심 중에도 소망을 품기 위해서는 마음깊이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기도하며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고 풍성한 사랑으로 불쌍히 여겨주시는 마음이 하나님의 본심임을 믿고 끝까지 소망을 잃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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